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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Apr 27. 2023

인상주의 시대를 열다

전시 읽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큐레이터는 화가 혹은 소장자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가장 좋은 전시회를 기획한다. 큐레이터의 전문성과 창의성이 기획한 전시회의 성공을 좌우한다. 이번 전시회는 기획력이 돋보였다. 고 이건희 회장이 소장한 다수의 작가 작품들 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작가의 활동시기, 작품의 시대적 배경, 작가들의 인연과 교류라는 구슬들을 잘 꿰어서 목걸이로 만들었다. 마치 소장자와 대화를 나누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 및 작품 소장의 계기를 확인하며 기획한 것 같았다.

미술 작품에 애정을 갖고 수많은 작품을 수집한 소장가들은 작품을 수집할 때에도 구상한 컬렉션의 가이드를 따르고, 그 컬렉션에서 빠진 부분을 하나씩 채워가는 경향이 있다. 큐레이터는 소장가의 이러한 컬렉션 구상을 관람객에게 쉽게 전달하는 전시를 준비했던 것이다.

이번 전시는 20세기에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20세기 미술과 세계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그림과 도예품을 공개했다. 그들 중에는 인상주의의 시대를 열고 다른 화가들에게 인상주의 미술을 안내해 준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도 포함되었다.

인상주의 시대에는 미술 애호가들이 열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유명 화가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의 명성에 묻혀서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작가가 카미유 피사로였다. 소장가가 컬렉션을 얼마나 신중하고 성심껏 만들어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카미유 피사로, 퐁투와즈 곡물시장

파리 근교에 있는 퐁투와즈는 2천 년 이상된 로마 제국의 유적과 중세의 가톨릭 유적과 문화를 간직한 도시이다. 도시의 광장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다양한 상품을 들고 나온 상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피사로에게 시장은 상품을 매매하는 매장을 넘어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삶의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상품을 사고파는 활동을 했지만, 화가의 눈에는 그 활동마저 만남과 대화가 오고 가는 의식이자 작은 축제였다. 상인들 뒤편 광장에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선 채 만남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팬데믹을 거치며 잃었던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삶, 일상이었다. 이 작품에는 일상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작가는 점묘법으로 소중한 일상을 표현했다. 한 점씩 찍으며 정성껏 그린 시장의 풍경은 그 어떤 작품들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피사로는 폴 고갱의 스승이었다. 그는 금융권에 종사하던 고갱이 화가의 꿈을 꾸고, 인생을 바꾸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고갱의 극적인 삶은 서머셋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깊이 있는 주제의식으로 다루어진 바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평가받는 고갱의 초기 작품이 소개되었다.   


폴 고갱, 센강변의 크레인

20세기 젊은 화가들이 경험한 일상의 변화는 기계 문명이었다. 늘 보던 자연 풍경이 아닌, 새로운 풍경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지금까지 겪은 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임을 깨우치게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도 자연도 아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등장한 기계문명이었다. 기계가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고갱이 젊은 시절 기계문명을 주제로 그리며 인상주의 화가로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를 알게 해 준 대표작들은 타히티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삶이었다. 자연과 생명의 경험이 담긴 그림들이었다. 고갱의 관심사가 극적으로 돌아선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낯설고 놀라운 기계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방식은 자연의 울타리에서 사는 삶이라는 그의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그가 자신의 화풍을 찾았다는 의미이다.


다음은 인상주의 대표 화가 중 한 사람인 끌로드 모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수련을 그린 작품이었다.

끌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연못에 비친 하늘의 풍경

작은 연못 앞에 서있으면, 맑은 물속이 보이기보다 수면에 비친 하늘이 보일 때가 있다. 연못 어디에도 하늘과 구름은 없지만 눈에는 보이는 착시적 상황이다.

모네는 그 순간의 묘한 인상을 이 작품으로 표현했다. 수면에 수련이 떠 있고, 그 옆에는 하늘의 구름이 비쳐, 마치 둘이 같은 곳에 있는 것처럼 그렸다. 구름가에 핀 연꽃처럼 보인다.

그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대상을 여러 번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수련도 그가 즐겨 그린 대상 중 하나였다.

그가 그린 다수의 수련 작품은 선명한 꽃의 이미지를 부각하지는 않았다. 대체로 안개에 싸인 듯, 몽환적 분위기가 감도는 이미지였다. 수련이 연못, 연못에 비친 하늘, 연못 주변의 사물들과 묘하게 어우러진 인상이 강했다.

백내장을 앓고 있는 작가의 신체적 문제로 화면이 뿌옇게 표현되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눈에 이상이 있기 전부터 그렸던 실험작들을 보면 그런 화풍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모네의 화풍을 단지 신체적 불편함으로 만들어진 우연으로 간주하고 싶지는 않다.


인상주의 시대를 열었던 화가와 주요 작가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전시된 회화 작품 수가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인상주의의 시작 카미유 피사로를 보았다는 즐거움으로 아쉬움은 충분히 달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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