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읽기: 운보의 집
아내와 사별한 후, 운보 김기창 화백은 어머니의 고향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은 삶을 보내며, 작품 활동을 했다. 깊은 상심과 예술에 대한 고뇌를 위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에는 ‘운보의 집’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열린 대문 너머로 중문과 반대편 대문이 일직선 상에 보였다. 깊이감이 느껴지는 구조였으며 담으로 구분되어 있는 공간들은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니고 구성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의 집은 현대적 이점을 가미한 한옥이며, 안채와 행랑채, 정자와 돌담, 연못과 나무 등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동양화 같은 집이었다. 문화예술공간으로 보존되는 다른 집들과 달리, 그의 고택은 출입이 가능해서 좋았다. 무릇 집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생기를 간직한 채 보존되기 마련이다. 보존의 이유로 사람의 손길을 닿지 못하게 관리하는 방식은 집의 생기를 빼앗는 일이다.
비록 그는 없지만, 그의 집은 그가 보낸 마지막 순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가 떠난 뒤, 시간이 멈춤 듯이 남겨진 공간이기보다, 방금 전에 그가 있다가 자리를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집의 특이한 점은 마루 뒤편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밖에서 보면 단층 한옥이지만, 내부에 지하 전시공간을 품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가 한국전쟁 당시 군산에 피난 가서 그렸던 예수의 생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신앙심을 물려받아, 30여 편의 성화를 그렸다.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의 짧은 인생에서 주요한 사건과 순간만을 선별하여 화폭에 담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의 내용이 아닌, 형식이었다.
서양에서 유래한 가톨릭이란 종교에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 해석과 표현은 자주 경험했다. 그러나 운보 화백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천재 화가로 불리는 이유가 있듯, 그는 서양과 동양의 경계 자체를 허물어 버렸다. 조선 시대에 예수라는 인물이 살았던 역사가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그의 발상이 파격적인데 비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적어도 예수를 신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신에게 국적이 어디 있으며, 인종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들은 자기를 닮은 신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종교적 성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적으로도 큰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본다.
화풍은 다르지만, 훗날 그렸던 바보 산수화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고 동화처럼 자신의 화폭에 담듯이, 종교에 대해서도 본질적 순수함으로 예수를 마주한 것이다.
한옥의 가장 큰 매력은 집 밖에서 보는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과 같은 조형적 건축 요소들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집 안에서 바라보는 집 밖의 풍경이 진정한 한옥의 아름다움이다. 고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의 표현처럼, ‘눈 맛을 아는 민족’의 후손답게 운보의 집도 눈 맛 좋은 멋진 풍경을 안고 있었다. 정자와 연못, 소나무와 하늘은 그 자체가 그림이었다. 그가 떠나간 집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잠시나마 그가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느껴보면 좋을 것이다.
운보의 가슴 켠에 있던 사람의 빈자리에 그림같은 자연이 대신 들어와 앉았다가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