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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Mar 27. 2023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다.

전시 읽기: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이중섭 특별전은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중에서 이중섭 작가의 작품 90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0점을 모아서 100여 점으로 구성한 전시였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연필화, 엽서화, 은지화, 편지화 등으로 소형 작품들이었다. 그의 작품 활동 시기에 따른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고, 그의 활동 기간 동안 근거에 자리 잡고 있는 중심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전시 작품들은 시대별로 40년대와 50년대로 구분했는데, 40년대는 그가 20대이며 유학생활과 아내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을 만나 사랑에 빠진 시기였다. 50년대는 한국 전쟁으로 피난을 내려와 가난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처자식을 일본에 보낸 뒤 홀로 지낸 기간이었다. 장인의 별세로 일본으로 간 아내와 헤어져 살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풀었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아이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두 아들과 같이 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품을 그릴 수 있는 재료를 구입할 수 없어서, 작은 종이와 엽서, 심지어 담배 속 은박지를 사용했기에 그는 극도로 가난한 화가였다고 알려졌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 대부분도 그가 가진 그림에 대한 열정의 크기만큼이나 빈곤했던 재료들로 가득 차있었다. 사실 그는 매우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왔다.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내려오면서 생활이 궁핍해졌다. 아내가 생계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지만, 작품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은 마련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4편의 연필화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시선이 간 작품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년을 그린 것이었다. 바랜 듯 누런 빛이 감도는 종이 색상은 한국의 전통적인 황토를 연상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소년은 작은 길 한가운데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얼굴을 한 편으로 돌려 잠을 자듯 무릎에 기대고 있었다. 주변에는 메마른 가지의 나무 한그루와 잘려 나간 나무 밑동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추운 계절에 황량한 곳에 홀로 있는 소년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할까? 화가는 물리적 장소의 공허감이 심리적 공간의 허전함과 공명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소년의 모습을 통해 어떤 심상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중섭 화백은 1939년 일본 도쿄의 문화학원에서 아내를 만났고, 그녀에게 다수의 엽서를 보냈다. 관제엽서 앞면에 그림을 그려서 보낸 작품들 중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이 88점이다. 그 당시 그의 그림은 추상적이고 초현실주의 경향이 강했다. 그의 화풍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표작과 비교하면, 매우 다른 경향이었다. 마치 다른 화가의 작품처럼 느낄 수도 있었다. 세계적인 화가들이 그렇듯, 그도 수많은 실험과 도전의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갔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낚시하는 여인을 그린 9x14cm 크기의 엽서화였다. 웅크리고 앉은 소년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에 그의 정체성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실적 요소와 비현실적 요소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년의 상상 속에서는 이처럼 재미있고 신기한 일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는 호감을 갖기 시작한 여인에게 자신이 가진 재능과 도전을 엽서로 전달하며 표현했고, 그 여인의 공감과 응원을 얻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가 1950년대에 그린 작품들 중에는 큰 종이에 채색을 한 것도 있었다. 그 중에서 두 마리의 닭을 그린 작품은 그의 화풍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푸른빛과 누런 빛의 교차적 수평선은 그만의 배경을 만들었다. 몇 획의 선으로 닭의 형체를 만들면서, 수탁과 암탁의 주요 특징을 포착해서 재현했다. 이런 화풍은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소를 그린 작품들에도 사용되었다.

관객 시선의 중심점에서 두 마리의 닭이 입맞춤을 하듯 머리를 마주하게 만들어 화가는 자신에게 내재된 사랑과 본능을 담았다. 한국과 일본에서 헤어진 채 살아야 했던 남편과 아내의 안타까운 상황이 역설적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변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전시회를 알리는 공식 포스터에 등장하는 작품도 주목을 끌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화가는 전쟁 피난 중, 온 가족이 잠시 제주에서 지냈다고 했다. 그 시절 아이들과 바닷가에서 함께 했던 추억이 그에게 각인된 행복의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물고기와 게를 잡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독특한 구도와 배치로 표현했다. 전쟁 중이지만 근심 걱정 없는 동심의 단면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었다. 아빠로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유쾌한 웃음처럼 화폭에 새겨 넣었다. 수묵화를 먹으로 채색하듯, 여백을 남긴 채 종이에 스며들게 채색한 방식도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한국적 화법과 서구적 구도가 너무도 쉽게 조화를 이루었다.     


끝으로 그의 작품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은지화를 볼 수 있었다. 작품의 손상을 막기 위해, 전시장 내부를 다른 곳보다 어둡게 세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 보존과 전시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방안으로 선택한 것 같았다.

담배각에 들어있는 은박지에 그린 작품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형체를 알 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가족, 아이들이 주제였다. 한국에서 혼자 지내야 했던 화가에게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은 해소를 하려고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았던 것일까? 아이들이 뒹굴며 서로의 몸이 엉켜있는 듯 보이는 구도는 화가가 가족의 체온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가늠하게 했다. 표정 없는 듯한 부모의 얼굴은 아이러니하게 일상의 행복이 주는 편안함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옅은 미소를 표현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그 순간에는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그 순간이 되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했을 때, 그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좋았으며 외롭고 힘든 삶을 버텨나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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