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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Feb 10. 2023

우리에게 빨래는 사랑이고 인생이다.

공연읽기: 뮤지컬 빨래

빨래는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중인 뮤지컬 작품이다. 고향을 떠나와 서울에서 정착하고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온 사람들뿐 아니라, 몽고, 필리핀 등 해외에서 온 외국인들까지 등장했다.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은 경제적 여유가 없고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점이었다. 경제적 이유로 웰세가 적지만 이동이 불편한 동네에 모여 든 사람들은 꿈과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80-90년대 국내 방송 드라마에서는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에, 뮤지컬의 배경은 낯설지 않았다. 드라마와 차이점은 감정을 주고 받는 방식이 대화보다 노래로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국내의 뮤지컬 공연은 대체로 해외 유명 작품을 번역, 한국 배우들이 춤과 노래로 연기한 경향이 강했다. 관객은 유명한 곡을 듣고자, 어색한 말하기식 노래를 참고 듣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순수 국내 창작으로 올렸던 공연들도 있었다. 한국인의 정서와 자연스러운 발성이 듣기 편했지만, 유명한 곡이 없어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유명 가수의 히트곡을 모아  뮤지컬 형식으로 창작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뮤지컬 빨래는 기존 뮤지컬의 아쉬운 점들을 제대로 보완한 작품이라 할 만 했다. 국내 창작 작품이라 한국인의 삶과 정서가 녹아 있었다. 히트곡이라 할 만큼 듣기 좋은 곡도 많았다.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의 전달도 능숙하게 연출되었다. 장기간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해외 유명 뮤지컬이 좋은 곡으로 사랑 받고 있듯, 빨래도 해외 뮤지컬 못지 않게 좋은 곡이 관객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할 때 불렀던 곡, ‘참 예뻐요’는 매혹적이었다. 관객들이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특히, 솔롱고 역의 배우 이주순의 독특한 음성은 가녀리며 섬세하게 감정을 제대로 전달했다. 배우의 음색이 사랑에 빠진 순수한 몽골 청년의 감정과 잘 어울렸다.

또한 주인 할머니가 부르는 ‘슬플 땐 빨래를 해’는 작품의 메시지를 솔직하게 전달해주는 곡이었다. 힘겹고 거친 삶을 살아온 탓에 인색한 듯 보이는 캐릭터였지만, 홀로 아픈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사연 많은 엄마가 불러서 잘 어울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모습을 아련하게 대변해 주는 곡이었다.  

뮤지컬의 이야기 흐름은 기승전결이 명확한 만큼, 관객의 반응을 정확히 예측하며 전개되었다. 한국 특유의 감정 표현이 다채롭게 다루어졌다. 설레임, 웃음, 긴장, 슬픔, 위로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 관객들은 풍부한 경험을 했다.

빨래는 누구나 하는 가사 노동이지만,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차라리 즐기듯, 감정의 빨래로 승화시켜주고 있었다. 시집살이의 서운함과 답답한 마음을 다듬질 방망이로 터뜨렸던 할머니 세대처럼, 현대의 여인들도 빨래로 복받치는 감정과 아픈 사연을 씻어냈다. 이 작품에서 빨래는 가장 일반적인 행위이면서 가장 특별한 의미를 지닌 예식이었다.

빨래를 하다가 사랑도 이루어지고, 빨래로 회환을 씻어내고, 서운한 감정을 풀어내며 화해를 하기도 했다. 등장 인물들이 각자 가진 사연과 감정을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순간이면 언제나 빨래가 등장하고 사용되었다. 제목, 소재, 실마리 등 빨래는 이 작품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없어서 안 되는 행위였다.


빨래, 인간이 인간다움을 입증하는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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