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읽기 무빙
히어로물의 유행은 미국이 주도했다. 베트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DC와 마블 코믹은 수많은 히어로를 탄생시켰다. 만화의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제작한 시리즈물은 흥행에도 성공했다. 만화를 통해 시장성을 이미 검증받은 콘텐츠였기에,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으로 제작될 수 있었다. 한국도 미국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히어로가 인기를 얻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사실 히어로, 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미국보다 동양이 더 풍부하고 역사도 길다.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 등 고전 영웅담은 그 역사도 깊고 문화적 저변도 넓다. 현대에도 그 이야기는 살아서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도 중국 고전 영웅물의 문화를 수용한 지 오래되었다. 최근에도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을 통해 살아있는 존재처럼 환생했다. 동양의 고전 영웅들은 게임 유저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캐릭터가 될 만큼 친숙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드라마 무빙을 고찰해 보았다. 한마디로 무빙은 동서양 영웅물의 조화로 정의할 수 있다. 다양한 능력을 지닌 수많은 영웅이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수십 명의 인물이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점은 수호지를 닮았다. 그리고 미국의 히어로와 유사한 초능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미국 요소를 벤치마킹했다. 따라서 무빙은 동서양의 영웅이야기가 갖는 장점을 흡수해서 탄생한 작품이며 흥행의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되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구독자 증가에도 큰 기여를 했다. 무빙이 인기를 얻고, 구독자를 끌어들인 이유는 여러 가지였고, 복합적인 작용이 있었다.
우선 원작자의 시나리오 참여 이슈는 드라마의 매력을 배가했다. 강풀 작가의 만화가 갖는 탄탄한 스토리가 드라마에도 제대로 살아있었다. 무빙이 독자와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재미의 포인트는 초능력자의 종류와 초능력을 사용하는 상황이었다. 시청자는 누가 어떤 초능력을 갖고 있는지 호기심을 갖고 보게 된다. 등장하는 배우진이 화려했고, 각 배우가 맡은 인물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능력,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재생능력, 엄청난 괴력, 멀리 있는 사물을 보고 듣는 능력, 전기를 다루는 능력 등이었다.
다양한 초능력자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확장되었다. 새로운 초능력을 발견하면 또 하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빙이 속편을 만들 거라는 암시를 주는 장면도 있었다. 예를 들면 핑거 스냅으로 시간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소유한 인물이 등장할 거란 암시였다.
새로운 능력자의 등장은 이야기에 신선함을 주었다. 무엇보다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초능력자가 더 강할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어린 시절 영웅물을 보면서 누구랑 누구가 싸우면, 누가 이긴다는 류의 이야기에 흠뻑 빠졌던 적이 있었다. 친구와 만나서 자기가 좋아하는 영웅이 이기는 근거를 나름 논리적으로 어필하며 논쟁했다.
무빙이 갖는 이야기의 몰입감은 한반도 현실을 끌고 들어오면서 증폭되었다. 한국에 초능력자가 있다면, 북한에도 있다는 발상은 어쩌면 당연한데, 신선했다. 그 발상으로 이야기는 확장되었다. 남북문제, 김일성 사망, 잠수함 사건의 의문 등 너무도 많은 이슈가 이야기로 흡수되었고,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남북간 대결의 구도는 자연스럽게 비슷한 능력자의 대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남한에서 날아다니는 초능력자가 있듯, 북한에도 같은 능력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대결은 어떻게 될까? 스토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무빙의 특징은 20편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독립적 이야기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서사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20편의 시리즈를 보려면,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힘이 필요하다. 만일 독립된 이야기 20편을 옴니버스로 구성했다면 새로운 인물에 적응하느라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앞 편에서 소개하고 마무리하지 않는 사건을 별도 이야기로 구성해서 독립된 한편으로 보여주었다. 시청자는 개별 에피소드를 보면서 전체 이야기와 인물 간 관계를 퍼즐 맞추기처럼 이어가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이런 구성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가 있어 구현이 가능했다. 출연 배우는 저마다 초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표현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몇십 년의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라서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을 변화 있게 연기해야 했다. 초능력이란 가상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상상력과 섬세한 감정 연기에 능한, 연기력이 있는 배우가 기본 조건이었다. 더구나 초능력을 사용하는 액션 능력까지 필요했다는 점에서 배우 선정은 주요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류승룡과 한효주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류승범, 조인성, 문성근, 김희원 같은 중견 배우진의 탄탄한 연기력과 이정하, 고윤정, 김도훈 같은 신진 배우들의 조화도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고 재미에 오래도록 빠지게 했다.
무빙은 끝이 없는 이야기의 시작일 수 있다. 앞으로 등장할 능력자의 활약, 기존 캐릭터의 풀리지 않은 의문 등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후속 편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