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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May 25. 2024

이 영화 SF였어?

영화 읽기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제목에서 짐작했어야 했다. 방점을 ‘막걸리’가 아닌 ‘알려줄거야’에 찍었더라면, 이 영화의 장르를 쉽게 알아챘을 것이다. 음주 습관이 사람의 판단에 이 같은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영화는 담백하고 조금은 지루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시나리오의 짜임새가 너무 좋아 재미있었다. 다만 영화의 엔딩이 예상치 못한 결말이어서 당황했을 뿐이다. 사실 김다민 감독은 결말을 위한 단서를 하나씩 풀어놓았는데, 이야기 전개에 빠져 그것들을 놓쳤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SF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중학생의 색다른 성장 드라마로 보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화의 결말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영화가 SF란 것을 알게 된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이해가 안 되던 결말에 의문도 풀렸다. 내가 지금까지 뭘 본 거지 자문하며, 영화를 복기했다. 복기하며 감독이 전달하려는 영화의 메시지를 비로소 선명하게 보았다.

찰스 다윈이 적응과 유전의 개념으로 세상을 뒤집 듯, 리처드 도킨스가 유전자로 그 세상을 또 뒤집는 충격을 경험한 적 있다. 이 영화는 유전자가 아닌, 미생물이야말로 우리 세계를 건설한 놀라운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감독은 과학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했고, 전혀 새로운 유형의 SF 영화를 탄생시켰다. 자칫 어렵고 지루한 과학 다큐가 될 수 있는 주장이 독특한 경험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흥미진진한 영화가 되었다.

미생물을 영화 소재로 다루는 일은 어렵다. 우선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감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존재를 인식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감독은 그 어려운 일을 해 낸 것이다. 우리의 전통 술, 막걸리로 말이다. 막걸리는 미생물의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특유의 탄산이 생성되고, 기포가 수면에 올라와 대기로 흡수될 때 소리가 난다. 이러한 과학적 현상을 이용해 미생물 SF를 완성했다. 감독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렇다고 난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중학생이다. 막걸리를 여중학생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접점을 주인공의 성격에서 찾았다. 막걸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평범해도 안 어울리고, 불량해도 안 어울린다. 그래서 엉뚱해야 했다. 사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엉뚱한 구석을 갖고 있다. 감독은 그 점을 조금 과장했을 뿐이다. 주인공의 엉뚱함을 가장 먼저 엿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잊기 어려운 주인공의 이름이다.

동춘.  

십 대 소녀의 이름을 ‘동춘’으로 설정했을 때부터 이 어려운 난제는 실마리를 찾았을 것이다. 동춘은 앱 설치가 안 되는 스마트 폰을 사용하고 있어 친구와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할머니가 마시는 음료수를 즐겨 마시는 동춘을,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동춘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독특한 성향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주는 묘한 이름이었다. 감독은 이 이름을 막걸리 양조장이 있는 마을에서 얻었다고 했다.

그에 비해 엄마는 혜진, 외삼촌은 영진이다. 주변에서 자주 보고 들을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독의 위트를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이름을 가진 엄마와 삼촌을 오히려 비범한 사람으로 설정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을 인생이란 스펙트럼 위에 나열할 때, 혜진과 영진은 양 극단에 서있는 사람이다. 남매지만 다른 성격을 지닌 채, 다른 선택을 하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엄마는 중학생 딸을 열 개가 넘는 학원에 보내면서 학습과 적응을 가르친다. 경력 단절의 상실감을 딸의 교육으로 보상하듯 현실에 집중했다. 반면 삼촌은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을 다녔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며 산다. 그의 자유로운 삶은 현실을 벗어났다.

특이한 이름의 소녀에게는 양극단의 인물이 지닌 특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동춘은 그 스펙트럼 양극단의 면모를 모두 경험하게 된다. 그 경험의 과정이 유쾌하고 재미있어, 동춘의 행보를 무작정 따라가고 응원하게 된다. 그래서 장르가 SF란 것을 쉽게 알아 채지 못했다. 특히 동춘 역을 맡은 박나은 배우의 연기가 한몫을 했다. 밤 열시면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학생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감정이 배제된 얼굴이다. 그래서 동춘도 무심한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박나은 배우는 그 무심함에 미묘한 감정을 살짝만 드러냈다. 그런 연기가 오히려 자연스럽고 현실적이었다.

틀에 갇힌 채 버티듯 살아가는 동춘에게는 마음을 채워줄 친구가 필요했다. 그런 갈증과 본인의 엉뚱함이 발효 중인 막걸리와 친구가 되고 우정을 쌓아가게 만들었다. 미생물의 거대한 프로젝트와 동춘의 선택이란 관점에서 복기해 보니, 엔딩을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평범하고 뻔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춘이란 인물을 통해, 전혀 무관한 과학과 소통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한 편의 SF영화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영화 엔딩에 대한 가치판단은 주인공 동춘의 입장에서 보면 좋을 것이다. 감독은 전작 ‘살인자 ㅇ난감’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탄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 능력이 이 영화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화려한 블록버스터 SF영화에 식상한 사람이라면, 이 발랄하고 엉뚱한 영화에서 새로운 SF 세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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