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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의사 Jun 07. 2020

의사가 보는 의드는 무엇이 다른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중년의 위기 아닌 우아함이라는 희망

+ 대망의 첫 시즌 종영을 맞이한 슬의의 애청자 리뷰를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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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의 종영 스페셜 방송에서 모 교수님의 인터뷰로도 간접 언급되지만 실제 환자를 매일같이 보는 임상 의사일수록 대체로 국내 의학드라마, 메디컬 드라마(이하 의드)를 편안한 마음으로 흥미로워하기 어려웠다. 2016년을 뒤흔든 #태양의후예 를 드라마에 비친 의료진이라는 칼럼 작성의 목적으로 고속재생하며 완파한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까닭을 꼽아보자면,


- 비열한 권력다툼의 핵심이거나 걸쳐진 구도; 이것은 다른 소재의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이나, 병원은 입신양명보다는 환자 치료가 근본 기능인 곳이다


- 상투적인 캐릭터의 의사들; 이미 실력이 뛰어난 주인공은 성깔(?)을 부리다가 착한 본성을 드러내고, 원래 희생과 인간애의 아이콘인 의사는 당연히(!) 실력에서도 권위자다


- 언제나 선한 약자인 환자; 비극적인 상황인데 착하기까지 한 환자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면 쓰레기다


- 비현실적 외양의 괴리감; 금사빠 로맨스가 형성되기에 적합하지만 현실을 떠올릴 때의 상대적 박탈감은 차치하더라도 복부지방 대신 복근과 당직과는 멀어 보이는 화사한 안색은 SF적이다


- 아쉬운 의학적 고증;  의료진의 의학적 역량과 의료기술로서 한국의 위상은 이미 G7 이상이라 볼 수 있음에도 의학적 고증은 심도 있는 인터뷰와 전문적 자문보다는 기존의 레퍼런스(소설, 영화, 드라마)에 기댄 수준일 때, 급격한 몰입도 저하가 찾아온다




  때문에 흡사 탐정물을 보는 듯한 괴짜 의사 #닥터하우스 의 인물로서의 매력이나 교과서를 넘어서는 의학 정보,  본격 로맨스물을 표방했음에도  #그레이아나토미 가 구현한 의료현장의 각종 극 현실적인 씬들에 길들여진 미드 시청자로서도 현저히 만족하지 못하거나, 관심을 갖기 어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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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응답하라'시리즈로 회상 내러티브의 장인으로 등극한 제작진이 '슬기로운 감빵생활' 이후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휴머니즘의 한 복판에서 순애보를 외치다'가 될 거라는 예상을 해볼 수 있을지언대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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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들은 약관 40세에 유수의 대학병원에 전임교수로 초빙될 정도의 인재들이면서 한국의 학력주의적 기대를 부족함 없이 메꾸는 서울대학교 99학번 동기들이다. 완벽한 세팅의 인물들로 보이지만 이 작품의 첫 장면은 병원 안에서 활약하는 그들의 가운 샷이 아니라 사복 차림으로 왠 낡은 주택에서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슬기로운 의사들이 '의사 이전에 각자의 심연이 있는 인간'들임을 강조하는 첫 발이다. 병원 밖 응급상황이 벌어지고 이에 비일상적으로 침착히 대처하는 송화는 여전히 흰 가운(white coat)을 입고 있지 않지만, 신뢰 가는 의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렇게 슬의는 말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은 피상적인 가운에만 있지 않다고.




  한국의 시청자들은 각종 전문직 드라마의 공식에 익숙한데, 그 비중은 굳이 따지자면 일터의 이야기 80% 이상, 그 밖의 캐릭터 형성 배경 20% 정도의 일중독자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의사 주인공의 경우 실력이 뛰어날수록 병원 밖의 삶은 거의 전무하며 그의 삶은 병원 안에 다 있어 왔다(우정/연애/결혼/자아실현). 실제로 자칫하면 그렇게 되기가 아주 쉬운 직업이 의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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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의학적 역량이 평균 이하로 부족하거나(의업의 본질에 관심이 없다면 가능하다) 인격장애 수준의 성격이 아니라면(의사에서도 보편 인구 비율의 포진을 보인다)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생을 상당히 단순화시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장점과, 동일한 이유로 협소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을 평생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다수인 이들의 삶은 타인이 보기에 재미가 없다. 드라마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제작진은 뻔한 공식을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 현장성에 발붙인 인물들을 촘촘하게 구조화하되, 전작의 유산들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성공했다. 밀레니얼들에게 학창 시절의 향수를 제공하면서 각 인물들이 서로에게 갖는 신뢰와 애정의 깊이와 크기에 기여한 시간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방식이 자연스럽게 구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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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과 익준의 헌신을 보는 내내 우리는 어색함과 압도됨을 느끼기보다는 수긍하게 된다. 이는 현직 의사인 시청자의 진입 장벽(손발의 오그라듬)도 허무는 기능을 하는 장치다. 업무적 역량에서 월등하면서도 주위의 인간들에게 온정적이고 자신의 삶(밴드, 캠핑 등)을 챙기는 a.k.a 귀신, 송화마저도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현실감을 준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잘하는 모범생들이 아니고, 결핍과 실수를 가진 가장 보편의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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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입감의 또 다른 기여 요소는 매 회차에 걸쳐 묘사된 의료 현장의 사건들에도 있다. 장기이식에 있어 첨예한 가치 충돌을 다룬다거나, 업무분장과 같은 의료진 간의 실제적 갈등 요소를 피하지 않고, 이기적인 의료 소비자의 모습을 취하기도 하는 환자를 다루는 씬 등은 이전 의드들에서 외면했던 소재들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의사에게서도, 환자에게서도 발견하는 슬의가 내내 따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단 이들이 순수한 과거를 공유하는 가족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친구가 정서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과보호에 가까운 입장을 취한다) 본분에 대한 명확한 책임의식을 강력하게 유지하는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돈이나 직위나 유명세가 아닌 환자 곁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것이 오직 하나의 본질이라는 것을 잃어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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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슬의가 멋진 느낌은 어디에서 올까. 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부모가 구축한 세속의 유산을 물려받기보다 내면에 귀를 기울여 종교에 귀의하려고 하는 정원이나, 불륜과 불화로 깨어진 가정의 아버지를 꾸준하게 부정하는 석형, 외국으로 장기 유학을 떠나는 여자 친구를 지지하는 준완의 모습 등은 이들의 마흔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충분한 신호로 읽힌다.


   구구즈(99학번, 99's)는 중년의 위기가 아닌 우아함을 말한다. 이 우아함은 시간과 노력이 성실히 응축되어 온 책무의식의 전문성, 사적 관계에서부터 형성된 깨뜨릴 수 없을 듯한 인간애, 과거의 가치와 이별을 고하는 단호함으로 형성된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이

육체도, 물질도 아닌 데에서

움튼다


이어진 리뷰에서는 3시즌까지 제작 확정된 슬의에 기대하는 바를 다루어봅니다.

책 읽는 의사  :::  s i n c e   2 0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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