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제도의 임계점과 인식론적 전환

현대 민주주의의 정체와 ‘제2세대 제도 혁명’에 관한 고찰

by 책 읽는 소방관

1. 들어가며: 애쓰모글루 패러다임의 유산과 그 이후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통해 현대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분석 틀을 제시했다. 그들에 따르면 권력이 분산되고 사유재산권과 법치가 보장되는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는 혁신과 장기 성장을 촉진하는 반면, 소수 엘리트가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하는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는 필연적으로 빈곤과 정체를 낳는다. 이 이분법은 산업혁명 이후 국가 간 성장 격차를 설명하는 데 강력한 설명력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2020년대에 접어든 오늘날, 우리는 이 패러다임이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모순과 마주하고 있다. 포용적 제도의 모범으로 여겨졌던 영국, 미국, 서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침체, 사회적 분열, 그리고 정책 결정의 만성적 무능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제도가 포용적이기만 하면 번영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명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본 글의 핵심 주장은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는 포용성의 결핍이 아니라, 포용적 제도가 더 이상 집합적 합리성을 생산하지 못하는 ‘인식론적 한계’에서 비롯되며, 이는 ‘제2세대 포용적 제도’라는 질적 전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애쓰모글루의 이론이 '누가 결정하는가(Who decides)'의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였다면, 현대 국가가 직면한 것은 '어떻게 잘 결정하는가(How to decide well)'의 문제인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를 ‘제도의 노화’와 ‘인지적 실패’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작동 방식을 진일보할 수 있는 제도적 진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2. 제도적 경직화와 베토크라시: 포용성의 역설

애쓰모글루가 옹호한 포용적 제도는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정치적 경쟁을 보장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에 의한 역설적 부작용을 낳았다. 맹커 올슨(Mancur Olson)의 제도적 경직화(institutional sclerosis) 이론에 따르면, 안정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특수 이익 집단이 누적적으로 형성된다. 이들은 제도 내부에 자리 잡은 채,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와 법적 장치를 촘촘히 구축한다. 가령 영국의 계획허가제(Planning Permission System)가 대표적이다. 1947년 도시농촌계획법 이후 누적된 수천 개의 규제와 지역 이해관계자들의 거부권은 주택 공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런던의 주택 가격을 천문학적 수준으로 만들었다. 이는 시장 실패가 아니라 제도 내부에 축적된 거부권 구조의 산물이다.


그 결과 포용적 제도가 보장하려 했던 ‘창조적 파괴’는 점차 봉쇄된다. 이 현상은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명명한 베토크라시(vetocracy), 즉 거부권 정치로 귀결된다. 다수의 행위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만큼 많은 거부권 포인트(veto points)가 생성되면서 실질적 결정 능력은 오히려 약화된다. 앞서 말한 영국의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이나 주요 선진국의 에너지 전환 지연은 기술이나 자본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적 절차 내부에 축적된 거부권 구조가 사회적 합의를 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제도적 인지 마비의 결과다. 요컨대 포용적 제도는 권력 독점을 막는 데는 성공했으나,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이 역설이 유권자와 정치인 간 불일치로 이어지는 대리인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3. 민주주의의 인식론적 취약성: 대리인 문제와 제한된 합리성

이러한 제도적 경직화의 근저에는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로 설명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주인(principal)’이지만, 복잡한 정책의 인과관계를 모두 이해하기에는 정보와 시간, 인지 자원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즉 유권자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상태에 놓여 있다. 반면 정치인과 관료라는 대리인(agent)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지만, 그들의 핵심 유인은 국가의 장기적 최적화가 아니라 단기적 정치 생존, 즉 재선과 권력 유지에 맞춰져 있다. 이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것이 '잔여 손실(residual loss)'이다.


즉 정치권력은 장기적으로는 사회에 해롭지만 단기적으로는 유권자의 환심을 살 수 있는 포퓰리즘 정책이나, 특정 집단의 표를 확보하기 위한 지대 추구(rent-seeking) 행위에 유혹된다. 이러한 선택이 누적될수록 국가는 형식적으로는 포용적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경제적·정책적 실패에 빠지게 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참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참여가 집합적 합리성으로 전환되는 기전이 붕괴되었다는 것에 기인한다. 이러한 취약성은 브렉시트처럼 실제 위기가 폭발하는 사례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4. 브렉시트: 인식론적 민주주의 붕괴의 전형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콩도르세(Condorcet)는 배심원 정리(jury theorem)를 통해 각 배심원이 진실을 맞힐 확률이 50%를 넘는다면 배심원 수가 증가할수록 집단적 결정이 진실일 확률은 100%에 수렴한다는 점을 증명했고, 이는 "민주적 의사결정이 평균적으로 진리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한다"는 '인식론적 민주주의(epistemic democracy)'에 대한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2016년 영국의 EU탈퇴 국민투표(브렉시트, Brexit)는 인식론적 민주주의의 전제가 무너졌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이는 단지 영국이라는 특수한 국가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가 반복적으로 직면하는 '저인지 민주주의 결정(low-cognition decision)'의 전형이다.


브렉시트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동시에 충족했다.

첫째, 경제·외교·법률이 복합적으로 얽힌 고난도 정책 문제였고,

둘째, 국민투표라는 이분법적 선택지로 단순화되었으며,

셋째, 감정적 동원과 허위 정보가 난무했고,

넷째, 대리인들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지지 않는 구조였다.


정치 엘리트는 EU 탈퇴의 장기적 비용을 투명하게 설명하기보다, 단기적 정치 이익을 위해 정보 비대칭을 의도적으로 확대했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구조적 파급 효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투표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인식론적 민주주의, 즉 “다수의 참여가 더 나은 결정을 낳는다”는 전제는 붕괴되었다. 실제로 2025년 기준, 브렉시트는 영국 GDP를 약 6-8% 감소시켰고(영국 예산책임청 추산), 무역 마찰 증가, 노동력 부족, 금융 서비스의 유럽 이탈 등 구조적 손실을 야기했다. 형식적으로는 가장 직접적이고 포용적인 민주적 절차(국민투표)를 거쳤으나, 실질적으로는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반하는 결정이었다. 브렉시트의 교훈은 명확하다. 포용성이 합리성과 결합하지 못할 때, 민주적 절차는 집단적 자기 파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 보완적 제도 실험과 그 한계

이러한 민주주의의 오작동을 수정하기 위해 학계와 정책 현장에서는 다양한 제도적 실험이 제안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다. 이는 추첨으로 선정된 시민들에게 전문가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한 토론을 거치게 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기구들이 선출 권력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자문 장치로 전락하거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무력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차 투표(quadratic voting)'는 선호의 강도를 반영하려는 정교한 메커니즘이다. 투표 비용(credit)을 투표수의 제곱으로 설정함으로써, 다수의 미온적 선호보다 소수의 강한 선호를 포착하려 한다. 달리 말해 1인 1표 방식의 전통적 투표는 미온적으로 찬성하는 다수와 절실하게 반대하는 소수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므로, QV는 소수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에는 더 많은 표를 쓸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적 후생(social welfare)을 더 정확히 반영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자본력과 정보력이 집중된 집단이 전략적으로 투표 비용을 투입할 경우,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정치적 평등이 훼손될 위험 역시 존재한다. 이들 실험의 문제의식은 옳지만, 민주주의의 구조적 유인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기에는 아직 불충분하다.


6. 기술 엘리트주의의 유혹과 위험

포용적 제도의 한계를 지적할 때 가장 흔히 등장하는 대안은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다. 데이터, 알고리즘, 독립 전문가 기구에 권한을 위임하면 비합리적 대중 결정을 회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또 다른 위험을 내포한다. 정치적 결정이 인간의 숙의와 책임에서 분리될 때,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으나 민주주의의 본질인 자율성과 책임성은 약화된다.


1920-30년대 유럽의 기술관료주의 운동은 "비효율적인 민주주의를 과학적 관리로 대체하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소련의 고스플란(국가계획위원회)은 수학적 모델로 경제를 설계했고, 나치 독일은 우생학과 인종과학이라는 '전문 지식'에 기반해 정책을 펼쳤다. 이탈리아 파시즘은 스스로를 '코포라티즘(Corporatism)', 즉 전문가와 산업 지도자들이 효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체제라고 선전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제도는 인간의 존엄을 '도구화(instrumentalization)'했다. 사람들은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그 목표를 누가, 왜 설정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논쟁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억압되었다.


20세기 전반 기술관료주의가 전체주의와 결합했던 역사적 경험은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설계된 제도가 얼마나 쉽게 인간을 수단화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따라서 미래의 제도 혁신은 기술이 정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의 '질적 수준'을 높여주는 보조적 장치로 머물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정책 옵션의 예상 결과를 시뮬레이션하고, 전문가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설명하되, 최종 결정은 여전히 민주적 절차를 거친 책임 있는 주체가 내려야 한다.


7. 맺으며: 제2세대 포용적 제도와 ‘인지적 국가’

애쓰모글루의 포용적 제도가 성장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1차 혁명이었다면, 오늘날 필요한 것은 의사결정의 품질을 높이는 2차 혁명이다. 이는 권력 분배라는 외형적 민주화를 넘어, 국가의 '인지 역량(cognitive capacity)'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단계다.


이 글에서 말하는 '인지적 국가(cognitive state)'란

첫째, 사회적 복잡성과 정책 효과를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둘째, 잘못된 결정을 조기에 수정할 수 있으며,

셋째, 대리인의 유인을 구조적으로 교정하는 학습 메커니즘을 갖춘 국가다.


이를 위해 미래의 성공하는 국가는

첫째, 모든 법과 규제에 상시적 일몰제를 도입해 제도의 노화를 방지하고,

둘째, 투표 방식의 다변화를 통해 선호의 강도와 전문성을 결합하며,

셋째, 독립적 전문가 기구와 시민 숙의를 제도적으로 결합해 대리인 문제를 억제하는 국가다.


윈스턴 처칠이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 형태다. 단, 인류가 시도한 다른 모든 형태를 제외하면"이라고 말했듯, 민주주의는 최선의 결정을 보장하는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최악의 결정을 수정할 수 있는 유일한 복원력(resilence) 시스템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즉 민주주의는 '시행착오를 허용하는 체제'를 넘어 '첫 시도부터 올바른 방향을 찾을 확률을 높이는 체제'로 진화해야 한다. 포용적 정치 구조를 넘어선 인식론적 전환은 이 복원력을 현대 사회의 복잡성에 맞게 재설계하려는 필연적인 진화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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