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무겁고 높은(김기태)'을 읽고

by 책 읽는 소방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선택의 기로에 선다. 작은 것이라면 당장 오늘 점심 메뉴부터 고민할 테고 큰 것이라면 장래 진로를 정하는 것, 배우자를 정하는 것, 부동산을 사고파는 것 따위도 있겠다. 그러나 때로 인생은 나의 선택권이 완전히 배제된 영역에서 오롯이 결정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출생 그 자체일 것이다. 가령 나는 나의 국적, 부모, 성별, 외모, 능력 등 그 어떤 것도 선택한 바 없다. 인간의 주체성은 역사 이래 수많은 사상가, 철학자들의 예찬을 받아왔지만 모순적이게도 인간은 출생 그 순간만은 어떠한 주체성도 가질 수 없다. 즉 출생이란 비주체에서 주체로 넘어가는 최초의 관문인 것이다.


쇠락한 탄광 마을. 소싯적엔 이 동네에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설명을 덧붙여봐야 별 감흥도 없다. 막장.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일컫는 말. 땅 속 깊은 곳 더 이상 이어진 길이 없는 그곳에서라도 어떻게든 벌어먹을 길을 찾아야만 했던 사람들. 그마저도 그것이 유효한 생계수단에서 탈락한 지도 이미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왜 하필 그 대안이 카지노여야만 했냐고 따지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이미 석탄 검댕이는 씻겨 나간 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카지노의 현란한 불빛과 전자음이 감각을 사로잡을지언정 그 마을에는 묘한 잿빛만이 더 짙어져 간다. 그러니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고등학생에게 넌 왜 하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니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곳이지만 사물이 천천히 녹슬며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예리하게 감각을 파고든다. 침잠하고 있는 시간 속이라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인생들까지도 함께 낡아져 버릴 수야 없는 노릇. 태어날 것을 선택한 적 없지만 이미 태어난 이상 주어진 삶 안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며 의미를 찾아 나가야 한다는 과업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닌, 쇠락한 탄광마을에서 태어난 고등학생에게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다. 이제 그 아이는 무엇을 향해, 무엇에 대해 투쟁해야 할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석탄을 캐고 날랐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광부로서 석탄을 캐고 날랐으며 어머니와 딸을 품에 안았다. 그러나 그는 유능한 광부였을지언정 시대의 흐름 앞에 미력한 한 인간에 불과했고, 어느새 더 이상 광부도 아니게 되었다. 세상의 변화에 쓸려나갈 수밖에 없었던 유능했던 광부는 더더욱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한다. 돈, 인맥, 정보 따위. 한편 그의 딸은 더 이상 석탄을 캘 수도 나를 수도 없지만 대신 바벨을 들어 올린다. 왜냐하면 적어도 역도는 돈도, 인맥도, 정보도 필요 없고 심지어 이기고 지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들어 올렸냐 아니냐만 있을 뿐. 게다가 일단 바벨을 들어 올리면 버릴 수도 있으니.


더도 덜도 말고 100kg을 들어 올리고 싶은 그 아이의 몸무게는 59kg 남짓. 그러나 애초에 100kg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하필 왜 100kg이냐면 그건 그 아이가 그렇게 정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의 개입 없이 그 아이가 그저 그렇게 정한 것은 그 자체로 실존적 결단이다. 그 아이가 들어 올리고 싶었던 것. 그리고 막바로 버리고 싶었던 것. 이미 폐광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탄광촌을 정체성 삼고 있는 마을. 유능한 광부였던 아버지. 신의 영광을 찾아 떠난 어머니. 뽀얗게 먼지 앉은 자동차. 막장이 닫히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온 카지노가 만들어낸 또 다른 막장. 미래 진로와는 상관없는 운동. 입상과는 거리가 먼 무게. 그럼에도 그 아이가 선택한 무게 100kg. 굳은살 박인 손으로 바벨을 단단히 감아쥐던 그 아이. 정돈된 호흡. 온몸 근육의 긴장. 그 아이가 100kg을 들어 올리든 말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야 말로 스스로의 삶에 대한 조용하고, 뜨거우며, 단단한 결단이 아닐까. 나는 그 결단을 사랑한다. 그 아이의 미래에 축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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