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언제나 전통의 적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생산 체계가 구축해 놓은 독점적 이익과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며, 효율과 평등을 대의로 내세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왔다. 위스키도 그 흐름 앞에 서 있다. 이 술은 오랫동안 오크통과 시간, 장인의 손길이라는 비가시적 가치를 통해 높은 가격과 희소성을 정당화해 왔지만, 과학은 이제 그 본질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말 이 방식만이 위스키인가?"
만약 고농도의 주정에 특정 향미 성분을 조합해 위스키와 동일한 향과 맛을 구현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과학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구별이 불가능하다면, 과연 전통 위스키는 무엇으로서 존재 의미를 지킬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아우라'라는 개념과 마주하게 된다.
20세기 초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라는 개념을 꺼내 들었다. 아우라란 단지 예술작품이 지닌 물리적 형상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유일성, 시간성과 장소성,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전통의 총체적 맥락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복제 가능한 시대에 들어선 예술은 아우라를 상실하며, 그 결과 감상의 깊이와 예술의 진정성 또한 희미해진다. 전통 위스키 역시 그러한 아우라를 지닌 소비 대상이다. 그 제작 과정, 지역성, 시간성, 그리고 그것에 부여된 문화적 서사들이 그 자체로 상품을 구성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아우라가 '비용'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시간, 자원, 공간, 그리고 인간 노동이라는 고비용의 요소들은 결국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며, 이는 곧 대중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한다. 과학은 바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향미의 재현, 숙성의 시뮬레이션, 효율적 생산을 통해 본질을 보존하면서도 외형과 감각에서의 차이를 제거한다. 위스키를 '재현'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그 전통적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다. 그저 선택일 뿐이다.
물론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기계식 시계가 쿼츠 시계에 자리를 내주고도 살아남았듯, 아날로그 음반이 디지털 음원 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하듯, 위스키 역시 고유한 정체성을 내세우며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기능이 아닌 기호로서의 생존이다. 위스키는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라, 어떤 이들에게는 역사이고, 서사이며, 자신이 소비하는 취향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생존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기호의 힘은 강하나, 그 기호를 유지시키는 '소비자 집단'의 존속 가능성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 환경적 지속가능성, 윤리적 소비가 대중의 기준이 되는 시대에, 전통 위스키는 점차 좁은 공간에 자신을 가둬야 할지도 모른다. 아우라는 결국 감각의 차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비용의 차이로부터 비롯된 문화적 허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래의 위스키는 무엇일까? 우리는 두 갈래의 흐름을 예견할 수 있다. 하나는 과학이 만들어낸 완벽한 대체물, 즉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환경 친화적이며, 저렴한 향미의 재현품으로서의 위스키. 또 하나는 살아남은 아우라의 섬,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위스키가 '예술작품'처럼 전시되고 소비되는 고급 기호로의 진화다.
과학은 결국 전통을 대체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의 지위를 상대화시킨다. 그리고 그 상대화는 지대 이윤을 축소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게 만든다. 위스키 역시 그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하여 미래의 위스키는 더 이상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로 정의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의미화되었는가'로 이해될 것이다.
이제 위스키는 한 잔의 술이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한 사유의 흔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