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어떤 문장이 지닌 강력한 힘에 미혹(迷惑)되어 정신이 얼떨떨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 힘을 처음 마주한 것이 아닌, 마치 언젠가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나는 분명히 이 책을 처음 읽는다. 다시 곰곰이 생각을 되짚어 보면 이 책 아닌 다른 책에서 같은 함의(含意)를 지닌 구절을 읽은 적이 있고, 그때에도 그 힘에 흠뻑 취해본 적이 있는 것이다. 결국 판연히 다른 작가, 다른 책, 다른 글일지언정 그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같거나 적어도 유사한 것이라면 동일하게 강렬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이를테면 나는 하루는, 한 작가가 정성스레 안내한 비원(祕苑)에 들어 그 아름다움의 황홀경에 깊게 취하였던 것이고, 다른 어떤 날에는 다른 작가의 다른 안내로 다른 길, 다른 입구를 지나 마침내 예전에 들렀던 그 비원에 다시 발 들이게 된 것이다. 예기치 않게 다시 만나게 된 비원이 몹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