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참 괜찮은 태도(박지현 작가)'를 읽고

by 책 읽는 소방관


그러고 보면, 난 어려서부터 냉소적인 아이였다. 밤톨만 한 것이 씹어 뱉듯 톡톡 던지는 바른말이 어른들 눈엔 꽤나 신기하고 즐거웠던 모양이고, 난 그 반응을 칭찬이라 생각하고 즐겼던 것 같다. 조금씩 머리가 굵어지며, 냉소적이란 것은 전혀 칭찬이 아니고 그 누구도 즐겁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도 여지까지 그 태도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 난 후에도 여전한 것을 보면, 어린 시절 어른들이 날 더욱 되바라진 아이로 만들었다는 것도 그저 핑계일지 모른다.


인터넷 뉴스 첫 페이지는 오만가지 속보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만 같던 화젯거리도 오늘의 뉴스에는 속절없이 그 자리를 물려주고 초라하게 퇴장한다. 이렇듯 바쁘게 팽팽 돌아가는 세상이니 현기증마저 느낀다는 사람들의 푸념도 얼핏 알법하다. 그럼에도 아무개에게는 어제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이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어쩌면 똑같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의 눈과 귀를 통해 인식되어 종래 뇌에서 분석되는 그 세상은 그렇다. 색깔도 향기도 없는 회색 빛깔 세상.


그러나 작가가 만난 사람들은 그 잘 난 아무개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산다. 그곳에는 무뚝뚝한 아버지의 사랑을 비로소 발견한 아들이 살고, 그 순간 아들의 마음속에서 아버지이기 이전 한 인간일 뿐이었던 그 모습 그때로 다시 태어난 운 좋은 아버지가 산다. 한 번쯤은 속상한 티를 낼 법한 일에도 그날 하루의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가볍게 웃어넘기며 자신의 행복한 하루를 지켜낼 줄 아는 멋쟁이가 산다. 세상에 즐비하게 널린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하며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행복을 새겨 넣는가 하면, 역경의 순간에도 언젠가 다시 돌아올 행복을 그릴 줄 아는 승부사가 산다. 무엇보다, 긍정도 부정도 달리 없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세상 위에 우뚝 선 스스로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특히 타인과 세상을 자신보다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는 현자(賢者)도 산다.


나는 어찌하여 저리 아름다운 세상 안에는 들지 못하고 이 무미건조한 세상에 홀로 남겨졌나. 아무리 눈과 귀를 틀어막고 모른 척 외면해 보려 해도 뻔한 사실을 직시하려는 스스로의 사고작용까지 정지시켜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뚜렷이 내 인격이 스스로 선택한 것 일게다. 대다수 인간은 자신의 인식 내에서 사고하므로 한 인간의 인식은 그 사고의 한계선을 이룬다. 실로 세상은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정작 천편일률적인 것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자 시각이요, 그에 덧붙는 사고이자 해석이다. 지극히 단순한 진리이니만큼 아무리 멀어지려 애를 써도 그 거리는 늘어나지 않고, 아무리 도망쳐도 숨을 그늘을 찾을 수 없다. 오랫동안 눈 감아온 만큼, 다시 목도한 그 진리에 눈이 시리다.


결국은 못난 나 스스로의 모습을 다시 마주할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나는 이 다채로운 세상의 모습에 얼마나 열려있는가. 얄팍하고 알량한 지식으로, 마치 우주 삼라만상 진리의 얼마쯤이나 깨달은 듯 거만하게 굴고 있지나 않은가.


모두들 ‘진짜 너’의 모습을 찾으라 조언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인가. 당연하게도 그 모습은 나도, 그리고 너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찾을 것인가. 그것 또한 알 수 없다. 그런데 잘 모른다 하여 내 모습을 찾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궁색하나마 일단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라도 찾고 싶고, 하여 다른 이들의 시선에 얼마쯤 전전긍긍하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 의해 형성된 내 모습이 진짜 나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판별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애초에 ‘진짜 나’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타인에 의해 희미하게 형성된 이미지를 가지고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봐도 그게 진짜 나와 닮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분간이 제대로 설리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잠깐만이라도 타인을 떠나 온전히 나만의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말을 건네보아야겠다. 그 대화에 끼어들 수 있는 타인은 없다. 그러니 다른 이들의 시선이니 평가니 하는 걱정거리들은 잠시 미루어두고, 온전한 나에게 관심을 주어야겠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삶은 유한하다. 그러므로 사랑하자. 대충대충, 건성으로 사랑을 꾸며대지 말고,

내 진심과 영혼을 모두 담아, 다시 못 올 순간을 마주한 것처럼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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