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찬미(讚美)

by 책 읽는 소방관

고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날씨마저 우중충하던 어 아침, 유난히 아이들이 졸았다. 0교시니 야간 자율 학습이니 하는 것들이 당연하던 시절이라 피곤해하는 아이들 마음 나라고 모를 리 없고, 나도 덩달아 지루하여 아이들도 깨울 겸 이런저런 잡담을 함께 했다.


그때 나는 기간제 교사였다. 그날따라 정규 교사가 되지 못한 나의 불안한 미래, 같은 일을 영원히 반복해야만 할 것 같은 갑갑함, 무엇보다 나름대로 성실했던 과거에 비해 매섭도록 초라하기 짝이 없는 현실 따위가 유독 더 쓰게 느껴졌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침부터 책상에 쪼그려 꾸벅꾸벅 졸고 있을지언정 이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취지에서 '나에 비하면 너희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과 미래를 얼마든지 가졌으니 너희 팔자가 나보다 낫다.'라고 했다. 물론, 내 말에 동의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자신의 청춘이 이미 지나갔다고 믿는 이는 쉽게 타인의 청춘을 찬미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나의 청춘 또한 당신만큼이나 아름다웠노라고. 물론 나 역시 그대의 청춘이 아름다웠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아름답기'만' 했었냐고. 나부터 고백하자면, 앞서 말했듯 내 청춘은 나름대로 막막했고 나름대로 두려웠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성급히 발걸음을 내딛지만 십리 안갯속에 갇힌 것 같고, 발 밑은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았다. 아무리 달려보아도 길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 안개숲과 늪이 나를 영원히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지금은 안다. 지금 내 발 밑이 꽃길은 아니라도 적어도 진창은 아니고, 짙던 안개도 이제는 많이 옅어졌다는 것을. 행운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었다는 것을 겨우 알아채고 나서야 짐짓 잰 체하며, 뻔뻔하게 말하는 것이다. 안개도 진창도, 나름대로 낭만 아니냐며.


걸어보지 못한 길, 살아보지 못한 삶은 언제나 욕망을 자극한다. 양갈래 갈림길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그 길이 세상에 다시없을 험한 가시밭길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길이 꽃잎 겹겹이 수 놓인 비단길 아니었다는 보장 또한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게다. 그런데 멀어질수록 가시밭길에 대한 두려움은 차차 옅어지는데 비단길에 대한 아쉬움은 도리어 점점 커지니, 그저 입맛만 쩝쩝 다신다. 사실 고백하자면 갈림길 앞에서는 간절히 빌었더랬다. 비단길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가시밭길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내 마음은, 참 간사했다.


내가 혼란했던 나의 청춘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이유 또한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불확실성과 두려움이라는 맹독은 잘 도려낸 후, 남아 있는 달콤한 부분만을 곱씹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는 그 달콤함만을 입 속에 되새기며, 지금의 청춘에게는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아름다움이라는 따위의 궤변은 비겁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청춘이여, 그대의 청춘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나의 비겁함과 간사함은 이미 청춘을 잃어버린 또는 잊어버린 이의 유치한 질투에 불과하다. 당신의 청춘은 안개를 걷어내고 진창을 굳혀내며 나의 유치한 질투마저 뚫고 나와, 종래 그 찬란한 빛을 세상에 발할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비겁한 이들이여. 타인의 청춘을 얼마든지 사랑하되, 지금 당장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두려움과 고통을 결코 함부로 평가절하하지 말자. 그들의 살아있는 청춘은 우리 기억 속에서 입맛대로 되살려내 재구성한 청춘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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