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황홀한 거야.

[자크 라캉] by. 김용수

by 북구리










진정한 새로움은 '무'로 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공백은 창조의 시작이다. (본문 중)












이 책은 자크 라캉의 철학 개념을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쉽게 설명한 도서다. 철학 입문서를 여러 권 살펴보다가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의 생각과 의견에 이끌려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실은 서평을 남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읽은 부분에 대하여 정리할 겸, 많이 부족한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



책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한 내용에 따라 정리한 정보이기에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언급하고 싶다.


그는 기표의 세계(언어화 혹은 문명화된 사회)에 사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결핍과 욕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언어로 공유하는 인간의 문명사회에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에 공백이 생기게 되는데, 바로 이 공백이 결핍의 근원이므로, 인간은 자신의 욕망조차 파악할 수 없으며, 결국 타인의 욕망만을 욕망하게 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명화된 질서와 구조에서 벗어나, 이 사회가 배제시키고 있는 '실재'들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물(언어와 문명에서 배제된 대상)'의 지위로 끌어올리고, 그 대상의 공백(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무[無]의 상태)을 인정하여 새롭게 창조하는 '승화'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한다.


승화는 세상의 질서를 거슬러 올라 욕망의 대상을 찾는 것으로, 자칫 이상화나 도착처럼 비칠 수 있으나, 승화는 병리적인 이상화나 도착과는 다르다고 한다. 이상화와 도착은 욕망의 대상이 지닌 공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환상으로 가득 채움으로써 그 대상을 파괴하는 반면, 승화는 욕망의 대상이 지니고 있는 공백을 인정하며 새롭게 창조해 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음에 답답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 감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황홀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우리는 모든 것을 언어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언어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만큼 언어화되지 못한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소외시킨다. 실제로 우리는 살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느끼곤 하는데, 그 감정들은 우리의 분명한 느낌과 체험과는 별개로, 언어화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조차 불분명해지고 만다. 이와 동시에 그 감정들은 모두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우리가 그 누구로도 채우지 못하는 외로움과 그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속 사정을 하나씩 갖고 사는 이유는 라캉이 주장한 바, 그리고 또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결핍과 욕망이 문명 및 언어화되지 못함으로써 그 욕망과 추구의 대상이 어떠한 것인지 조차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진정한 결핍과 갈망은 어쩌면 '말로 표현하지 못함'에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어에서 배제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과 감정들은 우리에게 말 그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그만큼 황홀하며 강렬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이제는 더 이상 알 수도 없고, 존재하는지 조차 모를 복잡한 마음과 감정들에 굳이 이름을 붙여주고자 하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그저 말 없음에서 오는 경이로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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