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늑대] by. 마크 롤랜
힘들고, 차갑고,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바로 이 순간들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든다. 결국 우리의 담대한 도전만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이다. (본문 중)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게 더 특별하며,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뚜렷한 이유가 있을까? 혹시 그 이유들도 모두 인간의 관점에 근거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늑대가 가지고 있고, 늑대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우리가 갖고 있듯,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삶을 좀 더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기 위해, 인간이 가장 뛰어난 존재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늑대와 함께 11년을 살아온 한 철학자의 이야기로, 반려 늑대 브레닌을 통해 깨달은 저자의 철학적 통찰을 담아냈다. 저자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늑대에게서 배웠다.’는 말과 함께, 인간이 가장 뛰어난 영장류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브레닌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던 인간의 본질과,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하여 서술한다.
저자는 브레닌을 통해 깨달은 인간의 본질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거짓말과 계략, 속임수에 훨씬 더 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늑대는 거짓말을 모른다. 반면 인간은 고도의 지능이 필요한 속임수와 거짓말에 매우 탁월한 재능을 보임으로써, 이로 인해 정교화 및 복잡화된 지능을 지속적으로 발달시켰고, 이 지능을 바탕으로 모든 예술과 과학,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인간의 본질로는 ‘시간의 개념’을 꼽았다. 늑대의 시간은 영원처럼 느껴지는 ‘원’인 반면, 인간의 시간은 끝이 있는 ‘직선’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개념의 차이로 늑대가 인간보다 ‘순간’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계속해서 돌고 도는 늑대와 달리,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는 인간에게 순간이란, 그저 과거와 미래가 융합되어 스쳐가 없어져 버리는 개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어떤 숭고한 목적이나 희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인간의 시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그 끝에서는 결국 목적이나 의미나 희망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과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목적과 목표가 모두 사라진, 희망도 행복도 없는, 모든 것이 멈춰 버린 ‘순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순간에 있는 인간만이 직선의 시간에 갇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향해 반항하며 담대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낙담할 바엔, 대담할 것.
끝이 있는 인간의 시간에선 그 어떤 의미 있는 삶의 목표나 목적, 그리고 희망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저자의 주장에 위안을 얻는다. 사실 조금은 허망해질 수도 있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의 원동력을 위해 살면서 수많은 목표와 목적을 설정한다. 하지만 그 목표와 목적은 달성과 동시에 사라지고 만다. 우리의 손을 벗어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목표를 세워야만 한다. 언제까지 이 것을 반복해야 하는 것인가, 삶이 다 할 때까지? 이것은 우리가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게 하기에 옳지 못하다. 우리는 삶을 ‘살기’ 위해 목표를 세우는 것이지, 목표를 ‘세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정말 모든 목적과 목표, 희망이 사라져 버린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낙담하기 마련인 이러한 순간에, 낙담할 에너지로 차라리 대담하게 반항해야 함을 느낀다. 낙담은 자신만을 파괴할 뿐, 우리를 가둔 직선의 시간과 이 부조리한 세상을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낙담에 빠져있다면 이제는 서서히 기운을 차려 일어나 세상을 향해 소리쳐보자, 그리고 반항해 보자, ‘다 X까라!!’ 외쳐보자. 물론 반항한다고 세상이 한순간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자신감 하나는 얻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