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by. 김사업

by 북구리








내가 심은 종자대로 세상은 보인다. 내게 괴로움의 종자가 없었다면 괴로움은 없었다. 세상 자체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공이다. (본문 중)












불교에 관심이 있어도 막상 알아보고자 하면 너무나 어렵고 방대한 교리 때문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불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연기, 공, 유식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풀이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생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에 대하여 성찰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책 내용을 토대로 각 사상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연기


연기는 여러 조건에 의해 생겨난 것을 의미한다. 연기에 의하면 ‘나’라는 사람은 ‘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존재하는 데에는 공기와 산소, 그리고 몸속 장기들의 운동이 있어야 가능하듯, ‘나’라는 존재도 이러한 여러 조건이 결합한 결과물일 뿐이다. 이것은 인간을 넘어 모든 생명체와 물질에도 해당된다.


2) 공


공은 연기에 따라 불변하는 것은 없음을 의미한다. 즉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생겼다가, 그 조건이 다하면 소멸함을 뜻한다. ‘나’를 예로 들면, 우리는 불변하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변화가 없어 보이나 사실 우리 몸속에 있는 세포들은 매 순간 죽고 다시 태어나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며 이를 반복하고 있다. 즉 ‘나’는 매 순간 연기하며 불변하지 않는 ‘공’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3) 유식


앞서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 잠시 존재할 뿐, 불변하는 실체는 없다는 것을 연기와 공을 통해 설명했다. 여기서 더 확장된 사상이 유식이다. 유식이란 모든 것은 마음(식)에 따른 허상일 뿐이며, 외부 세계는 실체가 없음을 의미한다. 나무를 볼 때 우리는 나무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나무는 우리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불변하는 그 자체로의 나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쉬운 예로, 우리는 살면서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미운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우리의 미워하는 마음이 그 대상에게 반영되어 나타난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이 모든 대상은 우리 마음의 작용일 뿐이라는 사상이 유식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인간에게 가장 큰 괴로움을 주는 집착은 돈이나 명예, 인정,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인식에 있음을 깨달았다. ‘나’라는 존재가 있기에 우리는 돈을 탐하고 사람 사귀기를 열망하고 인정받기를 원하게 된다. 아마 ‘나’라는 인식 자체가 없으면 이와 같은 것들을 몸에 걸치고 소유하기를 간절하게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 내가 있고 네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너는 그저 여러 조건이 부합하여 잠시 존재할 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세포들의 생멸로 계속해서 변화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어제의 나는 이미 사라졌고, 지금의 나 또한 곧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불변하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집착의 대상이 곧 변하고 사라져 없어질 것이라면, 그만큼 허무한 게 어디 있을까. 더 나아가 ‘나’라는 아집은 고정되어 있다는 착각을 일으킴으로써 모든 욕망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나’라는 집착부터 천천히 내려놓아야 한다.


무언가를 이룬 나도, 그렇지 못한 나도 곧 사라진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그저 그때그때 마주한 조건에 충실히 임하여 살아가는 것임을 느낀다. 곧 사라질 것에 집착하지 말자. 불변할 것 같은 나도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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