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by. 한강
한 번만, 단 한 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본문 중)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살면서 불가항력적인 삶의 고통과 문제들을 맞닥뜨리곤 한다. 그중 어떤 고통은 훌훌 털어 버리고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고통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평생토록 쫓아다니며 괴롭히기도 한다. 고통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고통에서 자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소설은 악몽을 계기로 극단적인 채식주의자가 된 주인공 영혜와,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욕망, 폭력들을 탐구한다.
1부 [채식주의자]는 남편의 시선이다. 갑자기 극한 채식주의자가 된 아내 영혜는 날이 갈수록 야위어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남편은 점차 그녀를 버겁게 느낀다. 가족마저 무력을 동원해 그녀의 채식을 막고자 하지만, 영혜는 거부의 표시로 손목까지 그으며 더 완강하게 거부한다.
2부 [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선이다. 비디오아티스트인 그는, 우연히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그녀의 몸을 탐하게 된다. 결국 그는 그녀에게 연락하여 자신이 촬영하는 작업의 모델이 되어주길 요청하게 되고, 그 둘은 온몸에 꽃을 칠한 뒤 비디오 앞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영혜의 친언니이자 그의 아내인 인혜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3부 [나무 불꽃]은 친언니의 시선이다. 그녀는 정신병동에 입원한 영혜를 돌보게 된다. 생사가 오갈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가는 영혜의 몸을 지켜보며 음식을 권한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거부하며, 왜 죽으면 안 되느냐는 말과 함께 자신은 곧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고통.
소설 초반에는 음식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며, 상식을 넘는 행동을 보이는 영혜의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폭력과 이기심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처절할 정도로 무해한 나무가 되길 간절히 원하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시렸다. 그동안 그녀가 겪었던 인고의 시간은 과연 어떤 종류의 고통이었을까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책에서는 영혜의 고통을 부분적으로만 전달할 뿐,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극단적인 채식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계속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자세히 서술하지 않은 것이 결국엔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고통은 오롯이 그녀의 것이며, 그 결단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았다 해도 머리로만 잠시 끄덕이게 될 뿐, 그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 합리성을 찾으려는 이유도 그녀의 고통을 저울질해 보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단 차라리 그저 무해한 나무가 되어 버리고 싶었던 그녀의 숭고한 바람 앞에, 잠시라도 그녀의 행동을 비정상이라 여기며, 이해해 보고자 판단을 시도했던 자신의 나약함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을 수 있음을, 결국 고통이란 공유의 대상이 아닌 체험의 대상일 수 있음을, 누군가에겐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아픔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