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y. 리사 펠드먼 배럿
오늘 당신의 경험을 바꿈으로써 내일의 당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본문 중)
우리는 감정에 있어 능동자인가, 수동자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수동자인 것만 같다. 먼저 사건이 발발한 뒤에 감정을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실제로 구성하는 설계자이다. 감정에 있어 수동적인 것만 같은 우리가 어떻게 능동자일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감정은 우리의 밖에 실재하는가? 세상은 그렇다고 말한다. 슬플 때 눈물짓고 기쁠 때 미소 짓듯, 감정엔 지문 같은 표정과 뇌의 특정 부위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본질주의를 ‘신화’라고 명명하며, 다양성이 표준임을 주장한다.
우리는 뇌 속에 이미 존재하는 감정을 느끼는 수동자가 아닌, 감정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설계자이다. 미소가 행복뿐 아니라 경멸을 나타낼 수도 있듯, 어떤 행위도 감정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뇌는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개인의 지식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그 예측을 수정하며 감정을 만들어낸다. 즉,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며 ‘이것은 분노다. 저것은 사랑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감정에 고정된 실체가 있다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 안에서 구성되기에, 언제든 변화하며 나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본질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각 개인이 감정의 창조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
책을 통해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아닌, 창조자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세상의 정보를 예측하여 감정을 부여한다. 이 과정은 의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기에, 우리로 하여금 감정을 ‘당한다’고 오해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세상에 감정의 실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물리적인 실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실재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당연한 것은 없다. 흔히 감정은 먼저 어떠한 사건이 촉발되어 자동 반사적으로 뒤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상대의 말투가 공격적이었기 때문에 짜증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실제는 우리가 그 상대를 특정 감정으로 예측한 뒤, 자신의 감정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 상대가 정말 공격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감정의 창조자’라는 말에는 불편함이 따른다. 모든 감정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이 말은 희망적이다. 고정된 감정의 실체가 없다는 건, 언제든 우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뇌가 세상을 예측하고 감정을 선택하는 데 활용하는 원자료는 바로 우리의 문화, 그리고 개인의 지식과 경험이다. 이 말은 즉, 올바른 지식과 경험, 그리고 학습이 더 나은 개인과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가 된다.
오늘의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내가 달라질 수 있다. 당장 유의미한 결론이 없을지라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뇌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많은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의 풍부한 감정을, 더 나아가 밝은 시야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니 멈추지 말자.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