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인생이 끝나는 순간에 대하여

[우체국 아가씨] by. 슈테판 츠바이크

by 북구리










이곳에선 꽃이 시들지도, 피지도 않는 삶이 계속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끝없는 죽음의 연속이다. (본문 중)













1차 세계 대전 후, 황폐해진 시골 마을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 크리스티네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부유한 이모로부터 초대 편지를 받은 뒤 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크리스티네는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호화로운 삶을 체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 짧은 경험은 자신의 삶을 더욱 비관하게 만드는 덫이 되고 만다. 이후 그녀는 자신과 닮은 한 남자를 만나며 점점 더 불안정한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데..!


이 소설은 한 젊은 남녀의 관계를 통해 가난으로 병든 결핍과 사랑이 남기는 상처를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약 100년이 지났음에도 공감이 되는 이 이야기는, 시대가 변해도 인간이 겪는 문제와 고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진정으로 인생이 끝나는 순간에 대하여


책을 덮으며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생물학적 죽음과는 상관없이, 인생이 정말로 끝나는 때는 어쩌면 너무나도 안전해졌을 때가 아닐까.


크리스티네는 어제와 오늘, 내일을 구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꽉 막혀 버린 인생을 무표정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전혀 나아질 기미 없이 반복되기만 하는 가난 속에서, 살아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멈춘 듯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삶이었다. 불안이라곤 하나 없는, 완전한 사이클. 그러나, 바로 이러한 안전함이 크리스티네를 숨 막히게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녀가 살아있음을 느낀 순간은 미국 여행에서 미지의 세계를 체험했을 때와, 결말을 알 수 없는 파트너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뿐이었다.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는, 불안이 넘치는 세상을 마주할 때였다.


다시 한번 불안이 하나 없는 안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멈추는 데는 빈곤이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슬픈 사실도 함께 떠올린다. 무언가를 시도하게 만들 수 있는 자원의 부재는 인간의 두 발을 묶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해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숨 막히는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금은 도전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도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그리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내가 될 수 있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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