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프면 뇌도 작아진다
어릴 때 겪은 힘든 일들도 어른이 되면 흐릿해지고, 결국엔 다 지나간 일이 될 거라고 우리는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뇌과학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어린 시절 감당하기 힘들었던 스트레스와 학대는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뇌 구조 그 자체에 지워지지 않는 물리적인 흔적을 남깁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우리 뇌의 기억 저장소인 '해마(Hippocampus)'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심스럽게 들여다봅시다.
우리 뇌 속 깊은 곳에는 해마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감정을 조절하며,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아주 중요한 곳이죠. 그런데 이 해마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글루코코르티코이드'에 유난히 취약합니다. 동물 실험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장기간의 스트레스 호르몬 노출은 해마의 신경 세포 수를 감소시키고(Sapolsky et al., 1985), 뇌의 노화 과정을 가속화합니다(McEwen, 2002).
그렇다면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요? 어린 시절 학대나 방임을 겪은 사람들의 뇌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요? 실제로 다양한 신경정신 질환 환자들의 MRI를 분석해보면, 해마의 부피가 줄어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Geuze et al., 2005). 하버드 의대 마틴 타이처(Martin H. Teicher) 교수팀은 이 질문에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 193명의 성인 남녀의 뇌를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최신 MRI 기술과 자동화된 해마 분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해마를 아주 세밀한 하위 영역(Subfields)으로 나누어 분석했습니다(Van Leemput et al., 2009). 그리고 어린 시절 겪은 학대(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 및 방임)의 정도와 해마 각 부위의 부피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결과는 마음 아프게도 명확했습니다. 어린 시절 학대를 많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해마의 특정 부위들이 눈에 띄게 작아져 있었습니다(Teicher et al., 2012).
치상회(Dentate Gyrus) & CA3
스트레스에 가장 민감하다고 알려진 부위로, 학대 경험이 많은 그룹에서 평균 6% 이상 부피가 작았습니다. 이곳은 새로운 신경 세포가 생성되고 기억이 통합되는, 말하자면 '기억'의 핵심 구역입니다.
능선이랑(Subiculum)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고 도파민 시스템과 관련된 이 부위 또한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훗날 약물 남용이나 조현병 같은 정신 질환에 취약해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Grace, 2010).
이는 단순히 "학대를 받으면 뇌가 손상된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뇌는 생존을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과도하게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은 역설적으로 뇌의 발달을 억제합니다. 특히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해마의 성장을 멈추게 함으로써, 고통스러운 기억을 덜 저장하거나 감정을 무디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성인이 되어서도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성격 장애와 같은 마음의 병을 앓을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학대는 비유컨대 잠깐의 흉년이 아니라, 토양 자체를 바꿔버리는 긴 가뭄과 같습니다. 물론 우리 뇌는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놀라운 회복 능력을 갖고 있기에, 이것이 뇌의 영구적인 손상을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린 시절의 학대와 같은 강한 스트레스는 평생 아이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Geuze, E., et al. (2005). MR-based in vivo hippocampal volumetrics: 2. Findings in neuropsychiatric disorders. Molecular Psychiatry, 10, 160-184.
Grace, A. A. (2010). Dopamine system dysregulation by the ventral subiculum as the common pathophysiological basis for schizophrenia psychosis, psychostimulant abuse, and stress. Neurotoxicity Research, 18, 367-376.
McEwen, B. S. (2002). Sex, stress and the hippocampus: Allostasis, allostatic load and the aging process. Neurobiology of Aging, 23, 921-939.
Sapolsky, R. M., et al. (1985). Prolonged glucocorticoid exposure reduces hippocampal neuron number: Implications for aging. Journal of Neuroscience, 5, 1222-1227.
Teicher, M. H., Anderson, C. M., & Polcari, A. (2012). Childhood maltreatment is associated with reduced volume in the hippocampal subfields CA3, dentate gyrus, and subiculum.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9(9), 3209-3210.
Van Leemput, K., et al. (2009). Automated segmentation of hippocampal subfields from ultra-high resolution in vivo MRI. Hippocampus, 19, 549-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