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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를 좋아하신다고요, 그러면 정신분석은 어때요?

MBTI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알고 싶다면

by 이준유

개요

정신분석은 MBTI보다 더 개별적이고 세밀하게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MBTI가 갑자기 열풍입니다. 이 정도의 뜨거운 관심은 확실히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인데요, 덩달아 신기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말이죠.


이유를 찾아보니, 약간은 세대론 같긴 하지만, MZ세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 MBTI라고 합니다. MZ세대가 뭐 대단한 거냐 싶긴 하지만, 확실히 이전 세대보다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세대예요. 흔히 X세대라 불리는 80년대생만 해도, '그래도 조직에서/공동체에서 결정된 사안이니 따라야지'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는데, MZ세대는 아예 그런 부분이 없다시피 한 것 같습니다. 밀레니얼 시대이자 한평생 교회에서 자라며 공동체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저조차도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라는 명제에는 동의할 수 없거든요.


우리는 수많은 '낯선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며 판단하고 싶어합니다.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죠. 헌데 최근에는 '개인'이 강조되면서 '균질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낯선 사람을 파악하기가 무척 힘들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MZ세대 이전에는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에 속해 있단 사실만으로 누군가를 가늠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게 많이 무색해졌죠. 입고 있는 교복만으로 ‘저 친구는 공부를 잘하겠구나’하고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한 시대인 거죠.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게, 아니 재발견된 게 MBTI입니다. MBTI는 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잘 맞아떨어지거든요. 게다가 범용성도 넓어서, '대통령 테스트', '어울리는 전공', '연애 유형' 테스트 모두 MBTI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기본 검사 결과만 해도 16가지 유형으로 꽤 많은 편인데, 여기에 변형까지 더해지니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것이죠. 이처럼 MBTI는 사람을 일괄적으로 판단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파악은 하고 싶어하는(!) MZ세대의 정서에 딱 맞아떨어져서 이렇게 유행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아직은 열기가 식진 않았지만, 저는 올 겨울이 오기 전에 MBTI의 유행이 끝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류의 검사는 제가 대학 다닐 시절에도 유행했었거든요. (그땐 vonvon이 유명했죠) 아마 이전 세대, 부모님 세대에도 비슷한 건 있었을 겁니다. 아무리 MBTI가 열풍이라고 해도 결국엔 일시적 유행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유행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질 자체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MBTI를 통해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저 친구가 그래서 저렇게 행동했구나'를 간략하게 맛봤을 텐데, 한편으로는 뭔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애초에 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시도인 셈이죠.



저는 MBTI를 통해 심리학이나 인간의 정신에 관심이 생긴 분들을 위해 '정신분석학'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MBTI는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나누지만 정신분석학은 개개인에 초점을 맞춥니다. "어떤 유형은 이렇고 어떤 유형은 저렇고…"가 아니라, 한 사람 자체의 의식과 무의식을 다룹니다. 따라서 MBTI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심원하며, 균질화될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정말로 '단점'일까요? 아니, 애초에 누군가를 빠르고 간단하게 이해하는 게 좋기만 한 걸까요? 저는 MBTI가 '사람들'을 빠르게 파악하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다보면 나 자신의 오래된 상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깊은 상처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MBTI라는 '유형화된 이해'와는 차원이 다르죠. 이런 이유로 MBTI에 관심이 있는데 사람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정신분석학'을 공부해보는 게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정신분석학자 또는 정신분석가가 되려면 미국 또는 유럽에서 학교를 나와야 합니다. 한국에는 정신분석학과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이죠.* 교양 차원에서 배우려고 해도, 관련 세미나나 강연회, 스터디 등이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대학에서도 ‘정신분석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강의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대학 다닐 때 딱 한 개인가 보았습니다.


검색을 해보면, 대부분 학계나 학회와 관련된 내용이 1순위로 뜹니다. 유명하나, 대중적이진 않죠.


전문적인 세미나나 강의는 (열심히 찾으면) 찾아볼 수 있는데, 이건 또 난이도가 너무 높습니다. 100년 남짓 역사를 갖고 있는 정신분석학은 현대심리학을 비롯하여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뤘는데, 그러다 보니 일반인이 교양 삼아 공부하기엔 전문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저는 정신분석학이 이 모든 한계를 감내해가며 공부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가능하면 MBTI로 정신분석과 심리학에 관심이 생긴 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쉽게 정신분석학을 공부할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쓰는 ‘정신분석학 강의’의 기획의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쯤에서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정신분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사랑과 우울함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사랑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고, 이와 유사하게 우울이 어디서 찾아오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사실, 둘 다 제가 겪고 있는 문제기도 했죠.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다루는 학문은 정신분석학이 유일했습니다.


처음에는 쟈크 라캉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무렵, 학부생 수준에서도 라캉은 이미 철 지난 학자 취급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죠. 그렇지만 라캉을 이해하는 학부생은 아무도 없었다고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라캉은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거대한 벽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쟈크 라캉(1901~1981)


당연히 제게도 라캉은 크고 높은 벽이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전환하여, 라캉이 기둥으로 삼고 있는 프로이트를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죠. 프로이트 전집부터 한 권씩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동시에 프로이트의 각종 해설서를 탐독했습니다. 깜지마냥 사진 한 장 없이 글로만 가득한 책들을 읽는 과정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정말로 재밌게 공부하던 시절이었죠. 때문에 한때는 독일에서 정신분석가 트레이닝 과정을 밟겠다고 준비한 적도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사정 때문에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정신분석가도 정신분석학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제 한계이자 동시에 장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깊게 공부했다고 자부하지만, 전문가만큼 깊은 건 아닙니다. 제가 공부한 수준은 정신분석가가 어렵게 쓴 글을 조금 더 쉬운 언어로 풀어 설명할 수 있는 수준, 딱 그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는, 정신분석학의 ‘개요’를 소개하는 데에는 충분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본론’을 가르치는 역할은, 전문적인 정신분석가나 정신분석학자들의 몫이겠지요.


요리에서도 메인 요리가 있으면 그 전에 애피타이저가 나와서 입맛을 돋우죠. 제가 쓰는 정신분석에 관한 글도, ‘애피타이저’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MBTI의 열풍과 제 짧은 글들로 말미암아,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이해를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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