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학문
개요
정신분석의 가장 큰 유익은 나 자신에 대한 용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인문학을 공부하거나 타인의 심리를 추측할 때, 창의력이 필요한 순간에 많은 도움을 준다.
오늘은 본격적인 정신분석학 공부에 앞서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이 주는 유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앞서 프롤로그에서 간단하게 정신분석학에 대해 소개를 했으니, 이번에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제가 대학교 새내기 시절에 꿨던 꿈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상당히 좋은 사례라는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정신분석을 설명할 때 드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남학교였던 나의 중학 모교가 그때를 기점으로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줄거리는 상당히 짧습니다. 하지만 꿈은 내용보다도 감정과 정서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딱 세 문장으로 요약했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꿈에서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안타까움’입니다. 즉, 남학교-남학교를 졸업한 저는 꿈 속에서 중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뀐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나중에 다룰 주제긴 합니다만, 꿈은 ‘소원성취’의 성격이 강합니다. 마음 속에서 원하는 걸 꿈에서 이뤄준다는 말인데요. 만약 제가 ‘진심으로’ 남녀공학 학교를 다니길 바랐다면, 꿈 속에서는 제가 다닐 ‘고등학교’가 공학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꿈 내용은 어떤가요? 실제로는 ‘졸업한’ ‘중학교’가 공학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꿈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남학교를 다닌 것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남녀공학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남학교를 졸업했지만(=남학교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 졸업한 남학교가 공학이 되는 소식(=남녀공학을 경험하고 싶었던 마음을 표현)을 들은 것이다.
꿈을 꾼 시점은, 대학교 생활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남학교에서 갑자기 여초 학과로 진학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리고 제 무의식은 그 탓을, ‘남녀공학을 경험하지 못함’에 돌리고 있던 것이죠.
‘만약 공학을 경험했더라면 학과생활에 좀 더 잘 적응할 텐데...’
정신분석을 통해 꿈을 해석하고나니, 꿈을 꾼 이유는 물론, 대학생활에 느끼던 불안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관계’에 대한 고민과 불안이었죠.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여전히 ‘꿈’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겁니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통해 꿈에 관해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제시했는데, 그 중 몇 가지는 현대에 들어서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죠.
그럼에도 프로이트가 제시한 ‘꿈 해석’은 여전히 유용합니다. 꿈을 통해 우리는 (결코 의식할 수 없었던) 나의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차마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소원과 욕망을 알아챌 수 있죠. 왜곡된 사랑, 이상심리, 특이한 정신현상, 특유의 버릇 등에 관해서도 정신분석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물론 정신분석이 100% 정답인 것은 아닙니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할 때, ‘너무 끼어맞추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자주 들긴 했습니다. 이미 나는 답을 알고 있는데 거기에 맞춰 해석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 말도 맞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신분석이 밝히려는 것은 ‘알지 못하는 앎’이거든요.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줄 모르는 것, 무의식을 다루는 게 바로 정신분석이니까요.
전문적인 정신분석가들은 이 ‘알지 못하는 앎’을 더욱 깊이 다룹니다. ‘끼어맞춘다’고 생각조차 못 하는, 정말로 잊고 있었던, 그러나 사실은 무의식 속에 꽁꽁 숨어있었던 여러 기억이나 정동을 끄집어내는 것이 정신분석가의 역할입니다. 스스로 하는 정신분석은 그 정도 경지까지는 못 갑니다(흔히 무의식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전의식까지만 가도 성공한 분석이죠). 애초에 정신분석 자체가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왠지 알고 있었지만 확신하지 못했던’ 혹은 ‘의식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었던’ 것들을 알게 되거나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이 주는 유익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인정, 그리고 용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죄책감과 불안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동의하긴 어렵지만, 가해자들마저 ‘나도 고통 받고 있다!’고 주장하죠.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든 혹은 나이가 들고 저지른 잘못 때문이든,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인정할 수 없는 면모를 무시하며 살거나,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삽니다. 그런 게 쌓이고 쌓여 신경증 또는 강박증으로 나타나거나 극심한 불안감과 우울함을 느끼는 것이죠.
정신분석학은 자신의 무의식을 탐구함으로써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알게 해주고, 인정하게 해줍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왜 이런 성격과 버릇과 유형을 갖게 되었는지 말이죠. 마침내 그런 자신을 용서하게 되고, 타인을 향해서도 동일한 과정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어떻게 보면 정신분석은 종교와도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신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오랫동안 있어온 까닭이죠.
이외에도 정신분석을 배우면 얻을 수 있는 유익에 대해서도 나열해볼까 합니다.
1. 상당히 강력하고도 범용성이 좋은 인문학 렌즈다.
거의 모든 비평 교재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비평방법 중 하나가 ‘정신분석 비평’입니다. 정신분석학은 단순히 심리치료 외에도 문학, 영화, 미술, 사진 등을 비평하는 데 응용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을 철학으로 승화한 라캉이나 리쾨르를 참고하면, “정신분석학적 비평”을 거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2. 사회 및 종교에 대한 전반적인 통찰을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이 ‘개인’에 초점을 맞추긴 하지만, 때에 따라선 ‘사회’로까지 저변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김태형 교수님께서 한국 사회를 정신분석학적(심리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했죠. 종교인에게 불편한 이야기긴 하지만, ‘종교 현상’에 대해서도 정신분석학은 강력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3. 타인의 심리를 이해하고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왜 사람들은 MBTI를 좋아할까요?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겠죠. 정신분석학은 MBTI보다 타인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왜 그 사람은 알콜중독자만 만나는 걸까요? 왜 어떤 사람은 학대 받는 걸 즐길까요? 왜 그 사람은 모든 걸 가졌음에도 항상 불안해 하는 걸까요? 정신분석학은 이에 대해 나름의 답을 내놓습니다.
4. 창의력과 연상력을 증진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문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정신분석학은 창의력과 연상력을 요하는 학문입니다. 프로이트의 초기 논문들을 읽어 보세요. 무슨 소설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는 스스로 의사 또는 과학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의 글을 쓸 때 자주 ‘발견’했다는 투로 썼습니다. 논리적이고 확고하게 정해둔 뒤 쓴 게 아니라 뭔가를 발견할 때마다 조금씩 수정하고 고쳐나갔죠. 그래서 그의 사고를 따라가면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창시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자, 이번 시간에는 정신분석학이 주는 유익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유익해도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 전부 소용 없는 일이겠죠. 저는 그저 제가 쓰는 글들이 부디 여러분께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