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기만하며 살아간다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

by 어투독

김애란 작가는 2002년<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달려라, 아비>, <비행운>, <바깥은 여름> 등에서 섬세한 감성과 현실적인 묘사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와 개인의 갈등, 청춘의 아픔을 따뜻하게 그려내며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김애란 작가의 최신작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주인공들이 있는 반에는 특별한 자기소개 방법이 있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네 가지는 진실을 말하고 한 가지는 거짓을 말해야 한다. 지우, 소리, 채운은 거짓으로 자신의 비밀을 말했다. 세 사람은 모두 비밀이 있다. 아빠를 죽이려고 했던 지우. 아빠를 죽였지만 자기 대신 엄마가 교도소에 가게 된 채운. 손을 잡으면 곧 죽을 사람을 알 수 있는 소리. 이 세 사람의 비밀이 얽힌 이야기다. 책의 전반부에는 눈앞에 보이는 비밀에 관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서로의 비밀로 인해서 의도치 않게 위로를 받고, 또 의도적으로 도와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들은 보이지 않는 비밀에 관해 진실을 알게 된다.


<스포일러 포함>


보이는 비밀 : 끝나지 않는 이야기.

그날도 역시 채운의 아빠는 술을 먹고 들어와 엄마를 위협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정말로 엄마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칼을 뺏어 아빠를 찔렀다. 경찰들은 엄마를 채운 대신 데려갔다.

지우는 엄마가 혹시 보험금을 위해 일부러 바다에 몸을 던진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가난이 지긋지긋했고 아들만큼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가난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죽은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은 아빠 때문이다. 어느 날 지우는 아빠를 찾아갔고 행복하게 새 가족과 사는 모습을 보곤 순간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올라와 바닥에 있던 송곳을 손에 쥐었다. 그때 지우는 우연히 경찰차 앞의 채운을 봤다. 채운이 아버지를 찔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우는 채운이 부러웠다. 채운이 숨기고 싶었던 비밀을 지우는 부러웠던 것이다.

소리는 지우가 좋다. 지우가 인터넷에 연재하는 ‘용식일기’라는 만화도 좋았고, 작문시간에 발표한 글도 좋았다. 그래서 지우가 일하러 간동안 지우의 도마뱀인 용식을 돌봐준 것이다. 지우도 엄마가 죽고 나서는 어디 기댈 곳이 없어 소리에게 의지했다. 엄마의 애인이었던 선호아저씨가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남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아저씨집을 나와 공사장 기숙사로 들어갔다. 소리와 용식이 지우가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갈 곳이었어서 지우는 힘든 공사장 일을 견뎌낼 수 있었다.

채운이 소리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채운은 의식불명에 빠진 자신의 아빠가 깨어나길 원하지 않아서, 비밀이 밝혀질까 두려워서 소리에게 아빠 손을 한번 잡아 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가 깨어날까 두려워서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죽을까 봐 두려워서 그런다고 말했다.

소리는 엄마가 암에 걸린 뒤에 매일같이 소리는 엄마손을 잡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엄마손을 잡고 눈앞이 흐려지지 않아야 안도가 되었다. 매일 아침 엄마 손을 잡았고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엄마는 죽었다. 소리는 엄마가 죽고 나서 더 이상 그 능력을 사용하길 원치 않았다. 그래도 소리는 채운을 도와주고 싶다. 채운이가 얼마나 간절한지, 자기가 어떤 심정으로 매일아침 엄마의 손을 잡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가장 무서워질 때는 언제인가?’
소리가 슬픈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때.’
그런데 채운은 지금 무서운 이야기 속에 갇혀 있는 모양이라고, 거기서 잘 빠져나오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리는 곧 채운과 만날 예정이었고, 그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뜻이었다.

처음에 소리는 이야기가 끝나길 원하지 않았다. 엄마손을 잡았을 때 눈앞에 흐려질까,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매일 손을 잡았다. 이야기가 끝날까 두려웠던 것이다. 지금 채운도 그때의 소리와 마음일까? 이야기가 끝날까 봐 아빠가 죽을까 봐 두려울까? 사실 소리에게는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매일 엄마를 간호하던 소리는 엄마 손을 잡았을 때 눈앞이 흐릿하기 보이기를 원한적이 있었다. 끔찍한 바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는 지쳤고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 채운도 사실 이야기가 끝날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끝나길 원해서 소리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소리의 비밀이, 같은 두려움을 가진 다른 비밀, 채운의 비밀을 도운 것이다.


보이지 않는 비밀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 비밀을 아이들에게 밝히는 모습이 연달아 나온다. 묵묵하게 진실을 전하는 어른의 모습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감정을 느끼면서 독자의 감정이 극에 치닫는다. 어른들은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진실들을 아이들에게 서서히 밝힌다.

채운이 아빠를 찌른 그날, 아빠는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왔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채운은 그것이 단지 아빠의 술주정으로 여겼는데, 사실이었음을 엄마에게 듣는다. 지우는 선호아저씨한테 엄마는 실족사한 것이 맞다는 사실을 들었고, 소리는 엄마가 사실을 존엄사를 원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지우는 엄마가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살고 싶었는데도 죽은 엄마가 불쌍해 더 큰 슬픔에 빠졌을까? 소리는 엄마가 죽길 바랐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사실은 스스로 죽고 싶어 했다는 진실을 들었을 때, 소리는 죄책감을 덜어내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아니면 죽지 못해 살다가 끝내 병이 아닌 사고로 사망한 엄마가 더 불쌍해져서 슬퍼졌을까?

"그런데 엄마, 나 엄마가 흐릿하게 보이기를 원한 적이 있었어."
"어느 날 엄마 병실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다 오늘은 엄마가 뿌옇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이 있었어."
"끔찍하지?"
그 순간 소리는 엄마가 속삭이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누군가를 잡은 손과 놓친 손이 같을 수 있다고’. 소리의 두 눈에 어느새 물기가 어렸다.
정오의 햇빛이 공원묘지 안 수백 개의 봉분 위에서 차분하게 빛났다. 먼 데서 온 그 빛은 사방의 묘석뿐 아니라 소리의 모리통도 따뜻이 데웠다. 아직 자라는 중인 여전히 자랄 것이 남은 한 여자아이의 정수리를.

어른들은 모두 아이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진실을 말해준다. 채운의 엄마는 채운이 죄책감을 가질까 걱정이 되어 편지를 썼다. 아무 잘못이 없는 엄마가 채운을 대신해 희생한 것이 아니라고. 엄마는 채운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선택의 결과로 현재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말이다.

‘보이는 비밀’ 속에서의 감정은 비교적 확실한 대상과 원인이 있는 감정이다. 채운은 엄마에게 미안했고 아빠는 미웠다. 엄마가 죽길 바란 적이 있었던 소리는 그때 자신의 감정 때문에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엄마가 본인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하는 지우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인과가 분명한 감정이다. 그러나 그 뒤에 숨은 진실을 알게 되면서 감정들이 더 복잡해진다. 채운의 엄마는 사실 바람을 폈고, 소리의 엄마는 죽기를 원했다. 지우의 엄마는 지우를 위해 죽은 게 아니라 정말 실수로 죽은 것이다. 마냥 좋아할 수만도 슬퍼할 수 만도 없게 만드는 진실이다. 세상 일이 전부 확실한 단일사건이며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힘들지 않을 것이다. 단순하게 힘들고 싶지만 세상 모든 일은 단순한 인과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건들이 얽혀서 발생한다.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기만하며 살아간다.

기만. ‘남을 속여 넘김’, 진실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행위. '너 때문이 아니야'라는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속인 것이라면 그것도 기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선한 의도로 한 거짓말일지라도 누군가는 기만으로 느낄 수 있다. 소리가 채운의 아빠 손을 잡았을 때, 눈앞이 흐려졌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채운에 대한 기만일까? 엄마가 사실은 죽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말해준 소리의 아빠는 소리를 기만한 것일까? 사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조금씩 기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진실을 숨기는 법을, 서로를 기만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것은 아닐까? 서로 기만하고 또 기만당하면서도 덤덤히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재작년 축구 훈련 중 채운은 일부러 부상을 유도했다. 그러고 담당의로부터 더 이상 운동선구로 살기 어려울 거란 진단을 받은 뒤 남몰래 안도했다. 적어도 내가 그만둔 게 아니니까. 내가 의지가 약해서, 실력이 안 돼서 못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겉으로는 모든 걸 잃은 양 어두운 표정을 짓고 다녔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해줬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 삶에는 또 얼마나 많은 기만이 있을까?’

읽는 내내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감정이 요동쳤다. 용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는 지우. 자신도 힘든 일을 겪었으면서 지우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채운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소리. 자신을 학대한 아빠의 장례식에서 벌 받는 기분으로 있는 채운.

아버지를 찌른 사람은 난데 사람들이 나를 위로합니다.
나는 무릎 꿇고 고개 숙여 그들에게 절합니다.
이곳은 내가 벌 받는 자리입니다.
위로가 벌이 됩니다.

위로가 벌이 된다는 말이 아이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 준다. 타인을 탓하는 방법을 모르는 어린 마음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을 자신의 탓으로 느꼈다. 그들은 엄마 또는 아빠를 잃었고, 반려동물인 뭉치와 용식을 잃었다. 자신들을 돌봐야 할 대상과 자신들이 돌보던 대상을 모두 잃은 것이다. 그런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잘 견뎌냈고 진실을 잘 받아들였다.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가진 세 주인공이 각자 자신의 비밀로 서로를 위로했다. 긴 감정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모든 진실을 이해했을 때, 독자는 조금 더 성장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두려울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한번 거치면 아이는 성장하게 된다. 주인공들은 앞으로도 그런 과정을 몇 번 더 겪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주인공들이 어떤 아이의 마음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진실을 말해주는 어른이 될 테다. 이 소설은 성장하는 이야기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도 같이.

여러 번 허물을 벗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인 채 존재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부분은 간직하는지, 눈동자에 허물이 덮여 세상이 뿌옇게 보일 때면 무섭지 않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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