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거의 유산 시리즈 1편. '격자 틀 모형'. '찰리멍거 바이블'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최근 우리 곁을 떠난 찰리 멍거를 다룬 '찰리 멍거 바이블'입니다. 이번에는 멍거가 남긴 유산이 무엇이며, 우리가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멍거가 남긴 유산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격자모형틀 사고법’, 둘째, ‘오판의 심리학’, 셋째, ‘투자에 대한 교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생에 대한 교훈’입니다. 각각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찰리 멍거가 어떤 사람인지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멍거는 워런 버핏과 같은 미국 오마하 출신으로, 버핏보다 6살 많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버핏의 조부가 운영하던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인연도 있습니다. 그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투자자의 길에 들어섰고, 이후 버핏을 만나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을 맡았습니다.
흔히들 버핏이 벤저민 그레이엄의 ‘담배꽁초 투자법’을 쓰다가, 멍거를 만나면서 그 방법에서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르침에 따라 극도로 저평가된 기업을 사들이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이를 버려진 담배꽁초에 비유한 것인데, 이미 버려진 꽁초라도 한 모금 정도는 더 빨 수 있듯이, 망해가는 기업을 저렴하게 사들인 뒤 자산을 정리해 투자 수익을 얻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멍거를 만나면서 버핏은 “좋은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투자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멍거는 “설령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버핏은 잘했을 것”이라 말했지만, 그의 조언이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본격적으로 멍거가 남긴 유산을 살펴보기 전, 먼저 그의 투자 단계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보통 멍거의 투자 프로세스를 네 단계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잘 아는 분야에 집중하기”입니다. 멍거와 버핏은 ‘능력 범위라는 개념을 늘 강조했습니다. 즉,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고 자주 말합니다. 멍거는 투자 관련 분석에 착수할 때, 먼저 “이 대상이 내가 정말 잘 아는 것인지”부터 판단합니다. 이를 위해 대상을 세 가지 바구니로 구분합니다. 아는 것, 모르는 것,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 ‘아는 것’만을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는 것이 멍거와 버핏의 방식입니다. 버핏이 “우리는 2미터 높이 장애물은 피하고, 30센티미터 높이 장애물만 골라서 넘는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정성적·정량적 분석과 경영진 평가입니다.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가 기업의 보고서와 재무제표를 살펴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영진을 평가하는 일입니다. 경영진의 능력, 신뢰도, 그리고 ‘주인 의식’을 살핍니다. 특히 현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주주를 대신해 현금을 현명하게 배분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과도한 보상을 하는 것은 아닌지에 주목합니다. 멍거와 버핏은 이를 ‘자본 배분 능력’이라고 부릅니다. 경영진 평가가 합격점을 받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세 번째 단계는 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일입니다. “경쟁자 대비 우위가 있는가?” “파괴적 경쟁으로 인해 시장 지위가 흔들릴 위험은 없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버핏과 멍거가 늘 언급하는 “경제적 해자”가 있는지 살피는 것이 이 단계의 핵심입니다. 이상적인 기업이란 넓고 견고한 해자와 정직하고 유능한 경영진(영주)을 보유한 ‘튼튼한 성’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해자는 낮은 원가, 브랜드 파워, 규모의 이점, 기술 우위 등 경쟁자의 진입을 어렵게 하는 요소들을 말합니다. 또한 이 해자가 지속 가능한지(낡은 해자는 사라지고 새로운 해자가 등장할 가능성 등)도 검토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적정 가격을 평가하는 일입니다. 전 단계에서 기업의 가치(내재가치)를 분석했다면, 이번에는 실제 시장 가격과 비교해 가며 싸거나 적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비싸면 매수하지 않고, 저렴하거나 합리적이라면 투자를 실행합니다.
이제 멍거가 남긴 첫 번째 유산, “격자틀모형사고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개념은 멍거가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멍거는 “누구나 머릿속에 격자모형틀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문제에 맞는 도구를 그 격자에서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를 쉽게 비유하자면, ‘도구상자’나 ‘공구상자’와 같은 개념입니다. 못을 박아야 한다면 망치를 꺼내고, 나사를 풀어야 한다면 드라이버를 찾아 쓰는 것처럼, 우리 머릿속에도 다양한 학문적·실천적 도구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멍거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심리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공학, 회계, 경제학 등 각 분야에서 핵심 개념들을 익혀두면, 문제 상황에 맞춰 얼마든지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멍거는 “가장 유용한 개념이 80~90개 정도 있다”라고 말하며, 이것만 제대로 익혀도 거의 모든 문제 상황에 대응 가능하다고 봅니다. 반면, 머릿속에 특정 학문의 개념 하나(예컨대 거시경제 모델)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거시경제적 관점에서만 해석하려 하게 됩니다. 멍거는 이를 두고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어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라고 합니다. 문제에 따른 해결책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머릿속 도구가 망치 하나뿐이라면 부적절한 방식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멍거는 수학, 경제학, 심리학, 공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회계 등 여러 분야의 핵심 법칙을 예로 듭니다. 예컨대 수학의 복리, 확률, 조합, 정규분포, 기하학적 개념들은 투자뿐 아니라 일반적인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공학의 ‘품질관리 모형’, 물리학의 ‘임계질량’, 생물학의 ‘현대 다윈주의’, 심리학의 ‘사회적 증거’ 등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특히 멍거가 강조하는 분야는 심리학입니다. 우리의 결정이 다양한 인지 편향과 사회적 압력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오판의 심리학”으로, 다음에 이어질 두 번째 유산에서 자세히 다루게 될 내용입니다.
이처럼 멍거가 제안하는 격자모형틀 사고방식은, 사람마다 습득하는 개념들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 총체적인 수준이 올라갈수록 ‘도구상자’가 풍부해진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구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독서라고 멍거는 누차 강조합니다. 예컨대 하워드 막스의 ‘사이클 이론’이나 조지 소로스의 ‘재귀성 이론’처럼, 다른 투자 대가들이 제시한 핵심 개념들 역시 하나하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방법을 따라 유용한 개념을 평생에 걸쳐 하나씩 늘려가고,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멍거의 두 번째 유산인 “오판의 심리학”을 다뤄 보겠습니다.
https://youtu.be/LHN8omKBHDg?si=q8eVE6-NbSrGoWz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