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선 핵개인, 서로의 이름의 부르다. 송길영 작가의 새로운 예보.
송길영 작가가 또다시 시대를 예보해 왔습니다. 이전에는 홀로 서는 핵개인의 등장을 예보했고 이번에는 그런 핵개인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시대를 예보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낯섭니다. 어려서는 어디 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누구로, 성인이 되어서는 어느 회사의 김대리로, 결혼 후에는 누구 아빠, 누구 엄마 이렇게 말이지요. 작가는 이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런 시대가 오고 있음을 예보합니다. 어떤 배경에서 호명사회가 온다고 말하는 걸까?
호명사회의 배경으로 첫 번째는 시뮬레이션 과잉을 들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과잉이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과도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기 위해선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정보를 찾아보고 유치원부터 준비를 시작하는 거죠. 여행지를 선택할 때에도 많은 유튜브 후기를 보고 정하기도 합니다. 결혼 전에는 180일 전부터 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리스트까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시뮬레이션 과잉입니다. 이런 시뮬레이션 과잉의 원인으로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다 알게 되고 그로 인해서 오는 ‘불안’때문입니다. 실패에서 오는 불안도 있지만 남들보다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는 말이죠.
시뮬레이션 과잉은 몇 가지 형태의 행동을 낳습니다. 첫 번째는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하는 결혼 준비리스트를 보고는 엄두가 나지 않으니 그냥 결혼을 포기해 버리는 거죠. 두 번째, 해야는겠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행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노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매일 글로 쓰는 것입니다. 목표와 해결방안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이, 뭐라도 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정말로 아무것이나 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이 정한 목표를 정확히 파악하고 시뮬레이션을 해서 필요한 행동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시뮬레이션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의미 없는 시뮬레이션은 버리고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의미 없는 시뮬레이션이 나쁘다고 했지만 정확이 무엇이 안 좋은 것일까요? 사화적 비용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비효율이 증가하죠. 시뮬레이션 결과, 의사는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모든 젊은 엄마들이 아는 내용입니다. 때문에 유치원 의대반이 나오는 거죠. 내비게이션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빠른 길을 알려준다면 결국 그 길은 차들이 몰려 막히게 되고 정체현상이 발생할 것입니다. 효율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모두가 아는 해답은 이제 더 이상 해답이 아니게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런 결정과정에서 아이의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영을 잘하는 아이, 수학을 잘하는 아이, 음악을 잘하는 아이 모두가 의대를 준비한다면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아이가 슬퍼집니다. 부모의 불안 탓에 많은 독수리와 거북이들이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닙니다. 어차피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시뮬레이션해 볼 수는 없습니다. 해답은 경쟁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 결과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호명사회의 배경, 두 번째는 경쟁의 인플레이션입니다. 시뮬레이션은 최적의 경로를 인간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모두가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문제를 발생했습니다. 최적의 경로를 향해 달리는 이들이 많이 지면서 상대보다 더 많은 노력, 투자를 감행하는 상태를 경쟁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 의대반이 경쟁이 심해지면서 유치원 의대반까지 내려것이 경쟁 인플레이션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쟁 인플레의 기저에는 ‘선발 시스템’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선발을 통해 뽑힌 소수가 막대한 이익을 누리게 되니 그 좁은 구멍을 어떻게 해서든 통과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각자의 시간과 열정이라는 자원이 가치가 폭락하게 됩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내 돈, 자산의 가치는 하락하게 되죠. 인플레가 발생하면 빅맥 하나를 사 먹는데 드는 비용이 증가합니다. 경쟁의 인플레도 마찬가지로 경쟁이 점점 심해지면서 내 노력의 가치가 하락하는 겁니다. 성공의 비용이 너무 증가하는 것입니다.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발시스템은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유튜브, 웹툰 같은 대형 플랫폼들이 생기면서 이제 더 이상 선발시스템을 통과하지 않고도 성공하는 사례가 많이 지고 있죠. 심지어 이전에 선발시스템을 통해서 성공한 이들마저도 조직에서 나와 스스로 ‘자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튜버로 성공한 슈카가 퇴사를 해서 회사를 차리거나, 나영석 피디가 더 이상 방송국이 소속으로서가 아니라, 직접 스튜디오를 만들어 제작을 하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를 시사합니다. 조직의 규모가 작아지며, 또한 개인의 힘이 커지는 것입니다.
선발시스템의 문제점을 몇 가지 이야기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에서 내가 배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내의사와 상관없는 노력을 했는데 그 노력의 가치마저 떨어진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심지어 그렇게 해서 조직에 들어갔는데 이 조직은 예전처럼 나를 은퇴까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태라면 개인은 ‘번아웃’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제야 나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죠. 시뮬레이션 과잉과 경쟁 인플레의 굴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시뮬레이션 과잉과 경쟁 인플레, 선발 시스템의 사회적 문제는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작가는 각자 잘하는 영역에서 잘하는 것을 하면 낭비가 줄고 효율성이 올라간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책의 내용은 아니지만 이대목에 반세계화라는 키워드가 생각이 나서 잠깐 말해보려고 합니다. 세계화는 각자 잘 만드는 것을 가장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곳에서 생산하자는 것입니다. 그 결과 비용이 감소해 세계는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만들고 미국에서 소비하는 것이 세계화의 한 모습이지요. 근데 그런 세계화의 모습이 거꾸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해 미국은 자국에서 반도체, 자동차 등을 생산하라고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주요 제품의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다시 되돌리는 리쇼어링을 하고 있는 것이죠. 중국 역시 첨단기술을 미국에 의존하지 않으려 스스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쟁 인플레가 핵개인의 등장과 호명사회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반대로 돌리면 각 국가들의 단절과 갈등이 진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지요. 중국에서 만들던 것을 미국에서 만들면 비쌉니다. 개인단에서 조직은 작아지고 개인은 커지면서 효율을 추구하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국가 단에서는 단절과 장벽을 세우면서 오히려 비효율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작은 개인의 호오, 즉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어떤 곳을 본진으로 할지 정해야 합니다. 어떤 분야에 조예와 취향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작업을 꾸준히 한다면, 알아봐 주는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유튜버 육식맨은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요리하는 것을 인스타에 계속 올렸습니다. 그러자 그 열정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계속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생긴 겁니다. 결국 100만 유튜버가 되었고 자립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골의 여부입니다. 시장이 크지 않아도 됩니다. 매니악한 취향이라도 지속적으로 찾아와 주는 사람이 있다면 먹고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것입니다. 큰돈을 벌려고 하는 일을 벌이는 순간 대기업의 ai와 경쟁을 해야 되며 그러면 더 이상 개인의 고유성은 사라지고 단골 역시 등을 돌릴 것입니다. 1인 오마카세로 혼자 모든 일을 하며 손님을 접대하던 식당이 큰돈을 벌기 위해 기계를 들이고 알바를 써서 본인은 뒤로 물러난다면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단골들은 정갈한 옷차림을 하고 깔끔하게 초밥을 쥐는 셰프를 보기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찾아갑니다. ai시대에 강점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런 핵개인들의 연대도 말하고 있습니다. 핵개인의 연대는 새로운 관계입니다. 그들은 본인의 무대를 직접 선택했듯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직접 선택합니다. 진짜 가족은 대신, 같은 취향을 가진 대안가족의 등장이 이런 새로운 관계의 한 예입니다. 또 이전에는 도제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어서, 음식을 만드는 일, 또는 도자기를 만드는 일 같이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 무급으로 일을 배우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노동력과 기술을 교환한 것이죠. 핵개인들은 그런 도제 시스템보다는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배우겠다고 말합니다. 가족 같은 회사, 선후배의 관계는 적절한 거리를 둔 느슨한 연대를 바뀌고 있습니다.
ai로 자동화, 무인화가 더욱 심해지면서 조직은 점차 작아질 것이고 개인들은 조직을 뼈를 묻는 곳이 아닌, 거쳐가는 곳으로 생각하게 될 겁니다. 조직은 작아지고 개인은 커지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떙떙회사의 김대리 같은 호칭은 사라지게 되죠. 이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이름을 내걸면 책임감을 가지고 하게 됩니다. 조직과 개인모두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거죠.
앞서 개인의 호오를 아는 것을 솔루션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본진에서 불릴 내 이름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플랫폼을 선택해 단골을 만드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매일 러닝 한 기록을 인스타에 올릴 수도 있고, 매일 한 요리를 블로그에 게시할 수도 있습니다. 매일 쓴 글을 웹소설 플랫폼에 올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고 인정받을 때까지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기에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꾸준할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는 자신을 위한 것이지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중요한 것은 성장 과정을 기록한 흔적을 남기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간 유명세를 탈것이고 업계에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호명사회가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