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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누크 May 01. 2023

가드닝이라 쓰고 중노동이라 읽는다.

가드닝 얼마나 고급진 단어인가.


전원주택으로 이사 후 나는 우아하게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쓰고 화단에 물 주는 나를 꿈꾸었다. 파아란 맑은 하늘에 초록초록한 잔디밭에 가지각색의 꽃들이 있고 새가 노래를 부르고 오늘은 무슨 꽃이 또 폈을까~궁금해하며 물을 주는 그런 장면. 주중에는 영락없는 월급쟁이지만 주말엔 전원생활을 즐기는 그리고 가드닝을 즐기는 내 모습.


뉴질랜드 시댁에 가서 보는 우리 시아버지의 모습은 한량처럼(죄송합니다) 가드닝을 하는 그런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고 정원에 물을 주고 낮에 해수욕장 가시는 시아버지. 유유자적한 삶. 평화로운 삶.


하지만 워킹맘 나에게 전원생활의 꽃 가드닝이란 곧 중노동인 것. 잔디밭에 잡초제거제를 뿌리자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비 온 김에 잡초를 좀 뽑아보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고 시장서 산 꽃무늬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잔디밭에 나간다. 내가 상상한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잡초를 뽑는 것은 택도 없는 노릇이다. 송곳을 들고 민들레 명아주 돌나물을 뽑아내본다. 아니 우리가 뿌린 씨앗은 잔디인데 수가지 잡초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넓지도 않은 잔디밭이지만 쪼그려 앉아 뿌리째 뽑아보려 하니 너무 많아 도대체 능률이 오르질 않는다.


잔디는 지극정성으로 돌봐도 자리 잡기가 어려운데 근본 모를 잡초는 빠르게 그리고 넓게 영역을 확보해 나간다. 얼마 하지도 못했는데 수레에 벌써 잡초가 한가득이다. 벌써 지친다. 남편은 여기에는 무슨 나무를 여기에는 무슨 꽃을 심자 한다. 몇 시간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벌써 속된 말로 정원을 확 다 콘크리트를 쳐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의 노동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내일이면 또다시 존재감을 뿜뿜 뽐낼 잡초 너희 덕분에 나에게 가드닝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사치인 것. 가드닝? 너는 나에게 막노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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