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내가 지금 뭐 같아?"
백조의 호수 바리에이션을 연습 중인 언니를 보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렇게 답을 했다.
"독수리요"
내가 발레무대에 섰던 날. 그날 나는 백조들의 호수에 잠깐 놀러 온 독수리 같았다.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은 나의 베프가 된 발레를 같이 하는 언니의 일화가 떠오른다. 언젠가 공연을 위해 열심히 ‘백조의 호수' 바리에이션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를 본 아이들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독수리 같다고.
처음엔 그 소리를 듣고는 얼마나 우습던지, 남일 같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발레학원 거울에 비친 나의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면 황새와 뱁새 이야기의 뱁새가 생각이 나기도 하고, 선생님의 우아한 백조의 팔을 따라 하는 나의 팔은 싸이의 나 완전 새됐어의 그 새가 떠올랐었으니까.
발레를 시작한 지 삼 년 정도가 지나고 그렇게 바라던 발레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초기에 학원에서 공연연습을 하던 전공생과 취미생들을 보면 어찌나 대견하고 멋져 보이던지 나도 시간이 조금 흐르면 공연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설렘과 기대 같은 게 있었다.
공연을 준비하며 먼저 선생님은 솔로로 할 것인지 그룹으로 할 것인지를 정하라 하셨다. 솔로보다 군무에서 묻혀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라는 생각에 당연히 그룹을 선택했다.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과 묶여 연습할 작품은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 음악은 너무나도 멋지고 웅장한 느낌이 드는 왈츠음악. 베니스 카니발이 생각나는 그런 섹시하고 멋진 무대가 생각나는 그런 음악이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고 우리는 맹연습을 하게 되었다. 수업시간 전, 그리고 주말 등을 이용해 안무를 맞췄다. 하지만 나는 출장 등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성실한 단원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을 터, 출장지에서도 잠을 자면서도 나는 머릿속으로 동선과 안무를 그렸다. 내가 이렇게 무엇엔가 빠져 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잘하지도 그리고 잘할 수도 없는 발레라는 취미가 가진 매력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추웠던 그해 겨울
발레공연 팸플릿에 들어갈 프로필사진을 찍고
의상을 고르고 그렇게 공연날을 기다렸다.
공연당일,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공연장 대기실에 모인 취미생들이 모였다. 팀마다 리허설을 하고, 단체공연도 준비했다. 모두가 흰색 레오타드를 입고 나와하는 공연이었는데 나의 눈은 그야말로 wandering eyes 다른 사람들을 보며 따라 하느라 정신없이 굴러다녔던 나의 눈동자.
단체 공연이 끝나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무대에 서고 음악이 나오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본분이 독수리인걸 알지만 백조와 무대에 선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그리고 그 감격에 겨운 나의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던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러한 감정에 빠져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내가 뭘 했는지 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후딱 끝난 공연. 우리 넷은 내려와 기어이 눈물을 보였다. “우리가 해냈다.”
공연이 아니라 한 편의 재롱잔치를 본 남편은 나에게 꽃다발을 안기며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했다. “넌 무대 몇 발자국 왔다 갔다 하는데 돈을 얼마나 쓴 거야 도대체.”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느낀 감정은 해내었다는 그런 성취감이었으니까. 회사원 사업가 교사 모두 다른 일을 하는 우리. 일상에 치여 회사생활에 치여 사는 백조의 날갯짓을 흉내 내는 독수리였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그런 독수리였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