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도취란 미운오리와 백조 그 중간 어디쯤
발레학원에는 통거울이 있다. 전면 혹은 전면과 측면, 혹은 여기에 삼면이 거울로 된 곳도 있다.
발레 초보때는 거울을 볼 새가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발레용어에 동작들을 따라 하려면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보아야 했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면 그 후에는 잘하는 회원의 동작을 곁눈질 해야 했다. 내 모습이 어떤지 내 동작이 맞는지는 쳐다볼 겨를조차 없었다.
사실 거울을 외면할 때도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왜 이리 발레학원만 오면 미운오리새끼가 생각나는 것인지 고고하고 우아한 전공생들 옆에서 나이 들어 발레 한답시고 따라 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내가 이거 배워 뭐 한다고 이렇게까지 고생을 한담.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나의 모습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갈 즈음부터는 거울을 보게 되었다. 동작이 맞는지 제대로 턴아웃이 되어 있는지 어깨는 내려갔는지 따위의 체크를 하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전과는 다른 태가 나는 나의 모습을 감상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희한하리만치 발레에 집중하는 나의 모습은 나의 그 어떤 모습보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바라기 보고 있노라 하면 선생님은 곧바로 알아차리시고 “거울보지 말고 시선처리 하세요! ”하며 정신을 번뜩 차리게 만들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자아도취라니 게다가 전공생의 백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하면서 그 모습에 취하다니 너무나 우스꽝스럽다.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발레는 삶과 너무 닮지 않았나 싶다. 살면서 아등바등 초보티를 벗기 위해 전 속력으로 앞도 바라보지 않고 달리다가 시간이 흐르며 자기를 관찰하고 그러다 가끔 자아도취에 정작 시선을 둬야 할 곳 마음을 줘야 할 곳을 잊지는 않았었나 싶기도 하다. 거울을 보는 나, 미운오리와 백조 그 중간 어디 즈음의 나. 나는 오늘도 발레를 하고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겠지만, 거울만 뚫어져라 보는 미운오리가 아닌 자신의 몸짓에 온전히 집중하는 그런 백조 한 마리가 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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