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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희영 소설『페인트』를 읽고

by 책빛나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모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희영 작가의 소설 『페인트』는 이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흡입력 있게 읽히는 소설이다.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국가가 설립한 NC센터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자신을 입양하려는 예비 부모를 면접하고 선택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다.


주인공 제누301은 열일곱 살이다. 열세 살부터 4년 동안 '페인트(parent's interview, 부모 면접)'를 치러왔지만, 진심으로 자녀를 원하는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복지 혜택만을 노리는 예비 부모들, 자격 없는 어른들 앞에서 제누는 냉정하게 15점이라는 점수를 매긴다. 스무 살까지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면 홀로 센터를 떠나서 자립해 살아야 하고, 사회에는 그런 NC 출신 아이들에 대한 거대한 차별마저 존재하고 있다.


NC센터,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책을 읽으며 NC센터 같은 시스템이 현실에 필요한가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아동학대나 방임, 부모의 무관심 또는 무능력으로 고통받거나 중요한 성장기에 피해를 입는 아이들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안타깝고 어두운 뉴스를 접할 때마다, 차라리 국가가 체계적으로 아이를 키우고 적합한 부모를 매칭해주는 시스템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스템의 문제도 보인다. NC센터 출신이라는 낙인, 사회의 차별과 편견 같은 것들. 나는 제누가 페인트를 진행하며 느끼는 이런 생각들이 매우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손 많이 안 가는 성격, 얌전하고 착한 아이 하나 데려다가 어서 정부 지원금 받고, 결혼도 빨리 시켜서 연금도 안정적으로 타 먹고 싶어.'
이 간단한 말을 사람들은 꽤나 길고 지루하게 늘어놓았다.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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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계속 질문하게 된다. 부모 자격이란 무엇일까? 재산이 많으면? 인품이 훌륭하면?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책 속 인물들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를 낳은 부모님은 사랑이 있었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이런 대사들은 현실의 가족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 또한 내 아이에 대한 어떤 죄책감 같은 것이 늘 있다. 아이가 항상 음식을 제대로 소화를 못하고 장도 예민한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체중이 너무 적게 나가고, 그냥 보기에도 비쩍 말랐고 키도 3년 전부터 1센티미터도 크지 않았다. 남들은 폭풍처럼 키가 큰다는 성장기에 키가 크지 않자, 나는 늘 전전긍긍하며 키 크는 기능성 식품, 약 등을 알아보았지만 아이는 그런 행동 자체를 극도로 싫어했다. 한약을 장기 복용해봤자 돈만 날리고 효과도 없었으며 본인도 맛없는 약을 먹느라 스트레스만 받았다고 했다. 제발 자신의 키에 집착하지 말라 한다. 그리고 죄책감 좀 갖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엄마의 그 죄책감이 자신을 옭죄는 것 같아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했다. 또 얼마전 수능을 마치고 나더니 슬슬 알바를 찾아서 돈을 벌어볼까 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아이가 안쓰러웠고, 돈 벌 생각을 하게 만든 것도 엄마의 무능력 같아서 그놈의 죄책감이 또 올라왔다. 나는 아이가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좀더 의미있는 경험과 공부에 시간을 쓰길 바랐다. 나는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엄마가 인정을 해주지 않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간섭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일과 관련해서 주변 지인과 대화를 하다보니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표현들이 오히려 아이에게 강요와 억압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 고등학교 졸업 즈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생활도 배우고 경제 관념도 익힐 수 있는 좋은 계기인데, 굳이 그걸 못하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정말 부모 노릇이란 게 정답도 없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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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교환, 그 사이 어딘가

그런데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정말 순수한 사랑만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책을 읽으며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과 마주했다. 페인트에서 프리포스터(예비 부모)의 경제적 형편을 점검하는 장면을 보며, 나는 현실의 부모-자녀 관계에도 어느 정도 경제적인 교환이나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자녀가 노동력이었고, 노후 보장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자녀 양육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 대비 실질적 '편익'에 대한 보장은 매우 불확실하다. 더군다나 무한경쟁 사회에서 자녀가 스스로를 책임지고 부모까지 부양할 만큼 성공하리란 보장도, 과거에 비해 더더욱 낮아진 것도 사실이다. 저출산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책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제적인 계산이 작동하는 현실.

『페인트』는 이 불편한 진실을 SF적 설정을 통해 드러낸다. 만약 NC센터 같은 시스템이 있다면?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고, 아이와 부모가 서로를 선택한다면? 어쩌면 그것이 현대 사회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하나의 상상적 해법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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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책의 마지막 부분은 가장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NC센터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아이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할까, 아니면 당당히 드러내야 할까?

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는 동성애자의 경우가 먼저 떠올랐다. 그들은 낙인과 편견 속에서 자신을 감추거나, 아니면 용기 내어 드러낸다. 그런데 사회가 쉽게 변하지 않는데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책은 쉬운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제누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 과정 자체가 성장이고, 그것이 진짜 '페인트'—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색칠해나가는 과정—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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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자녀도 '되어가는' 존재

이희영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완벽한 자녀도 없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들어가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페인트』는 청소년 소설이지만, 부모들에게 더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과연 좋은 부모인가? 나는 아이에게 어떤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모든 부모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질문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좋다. 쉬운 답 대신 깊은 고민을 남기는 책, 읽고 나서도 오래 마음에 남는 책. 『페인트』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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