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와 교육

'공포'와 '다급함' 본능에서 벗어나서 내 눈 앞의 아이를 바라보는 것

by 책빛나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가 자녀교육에 던지는 질문


얼마전 김포에서 함께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한스 로슬링 가족이 함께 쓴 <팩트풀니스(Factfulness)>를 읽고 이야기 나누었다. 2018년 출간 이후 이미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 답게, 어려울 수도 있는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면서도, 깊은 통찰을 주는 역작인 것을 이제서야 확인했다. 작가의 헌신적이고도 대담한 삶에 존경심이 우러나왔고, 특히 책의 부제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라고 한 것도 신선해서 좋았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13가지 문제에서 인간의 평균 정답률은 16%, 침팬지는 33%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표현하여 이목을 끈 작가의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박수가 나왔다. 우리는 왜 침팬지를 이기지 못하는가?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일수록 세상의 참모습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본능 때문에, 세상이 나날이 진보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인간들의 모습을 명확한 데이터와 통계로 증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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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나는 교육의 관점에서도 이 책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본능은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과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공포에 반응하는 '비합리적 본능'이 있는데, 많은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침팬지보다 낮은 정답률'로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책에서 언급하는 첫 번째 오류는 '간극 본능'이다. 세상을 '우리'와 '그들',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로 나누려는 본능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사람들은 아이를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나누고, 늘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두려워하고 다급해 하는 학부모의 본능을 잘 이용한 마케팅이 실제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가 보여주는 세상은 양극단으로 나누어진 모습이 아니라 완만한 중간층이 두터운 모습이다. 아이의 성장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는 각자 저마다의 속도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포 본능'과 '다급함 본능'을 잘 활용한 사교육 시장의 고전적인 마케팅 문구가,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고등학교 가서 입시에서 폭망한다", "지금이 골든타임", "이대로 방치하면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이 커진다"와 같은 말들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 부모들은 내 앞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이성적 판단이 마비되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사교육 사업을 시작했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의 너무 치열한 입시경쟁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런 언어를 써야한다고 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불편함이 늘 있었다. 우리는 모두 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 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아이에게 잔소리를 해야 할까? 공부는 대학 입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평생 지속해야 하는 것이 공부다. 나는 어린이가 배움 그 자체의 즐거움을 알길 바란다. 그러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한다. 아이가 책을 좀 늦게 읽는다고, 문해력이 조금 낮다고 해서 인생이 무너지진 않는다. 오히려 부모가 느끼는 그 다급함과 공포가 아이의 호기심을 꺾고, 공부를 내가 아닌 '부모'를 위해 억지로 해야 하는 것으로 만든다.


책에서 로슬링은 우리에게 '사실충실성'을 제안한다.


“이 책에 나오는 데이터는 독자가 결코 본 적 없는 마음을 치유하는 데이터다. 정신적 평화를 얻는 데이터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은 겉보기만큼 그렇게 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의 성장도 마찬가지다. 문해력이 낮아 보이는 초등학생도, 스스로 흥미를 발견하고 동기가 생겨서 노력을 한다면 자신만의 속도로 결국은 성장한다. 겉으로는 책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도, 자신의 관심사와 눈높이에 맞는 책을 만나면 독서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문제는 우리가 '간극 본능'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간극 본능은 세상이 둘로 나뉜다는 생각이다. '우리'와 '그들',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문해력이 높은 아이와 낮은 아이. 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아이들은 중간 어딘가에 있으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로슬링의 표현을 빌리자면


"크기 본능과 부정 본능은 세상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예방접종을 받는 아이의 비율은 88%,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85%다. 초등학교를 나온 여자아이의 비율은 9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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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도 생각보다 더 잘하고 있다. 너무 극적인 실패 사례에만 주목하며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그 다음으로 학부모들이 쉽게 빠지는 또 다른 본능은 운명 본능이다.


"운명 본능은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무언가가 지금의 그 상태인 것은 피할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이유 때문이며, 그래서 그것은 늘 그 상태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우리 아이는 원래 책을 안 읽어요."

"이 아이는 공부 체질이 아닌가봐요."


이런 말들 속에 운명 본능이 숨어 있다. 하지만 변화가 느리다고 해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가 유럽을 따라잡고, 이슬람 사회가 서서히 변화하듯, 어린이도 그렇게 변화하고 성장한다. 다만 그 변화가 눈에 확 띌 정도로 극적이지 않을 뿐이다.


사실충실성: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


나는 책빛나 독서교실을 시작하며 이런 교육철학을 세웠다.

첫째, 남과의 비교가 아닌 아이 자신의 성장을 본다.

로슬링이 말한 '크기 본능'을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가 3개월 전보다, 6개월 전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본다. 또 작은 발전도 발전이다.

둘째, 배움 그 자체의 가치를 믿는다.

"사실충실성은 건강한 식이요법이나 규칙적 운동처럼 일상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배움도 마찬가지다. 대입을 위한, 성적을 위한 일회성 과업이 아니라, 평생 지속되어야 할 삶의 방식이다. 그런 자세를 어릴 때부터 만들어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다.

셋째, 공부는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1등을 차지하는 경쟁력이 아니라,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이다. 타인과 세계에 기여하고, 결국은 인류의 희망을 실현해낼 수 있는 용기와 근력이다.

넷째, 독서는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가성비 높은 수단이다.

책 읽기는 단지 학교 성적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로슬링이 데이터로 세상을 정확히 보는 법을 배웠듯이, 우리 아이들도 책을 통해 세상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문학을 읽으며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과학책을 읽으며 자연에 대한 경이로운 호기심을 키우고, 역사책을 읽으며 인간과 사회를 깊이있게 이해한다. 이런 좋은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영상 매체에 방임함으로써 놓치게 하는 것은 정말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침팬지를 이기는 법


한스 로슬링이 제안하는 '사실충실성'을 교육에 대입하면, 아이의 현재 상황이 '문제'라고 단정 짓기보다, 아이에게 더 좋은 기회를 주기 위해 조금씩 눈높이를 맞추는 배려가 아닐까? 세상은 생각보다 괜찮고, 우리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해낼 것이다. 우리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문해력이 낮다면 그 아이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한 권 건네주는 것, 자기 의견을 말하기 힘들어한다면 비난 대신 따뜻한 '하브루타' 독서 대화로 물꼬를 터주는 것.


책빛나독서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늘 다짐한다.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직선 위에 세우지 않겠다고 말이다. 문학을 향유하며 삶의 지혜를 얻고, 과학을 배우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위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런 아이가 스스로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설계해 나갈 때, 비로소 교육은 '공포'가 아닌 진정한 '배움'이 될 수 있다. 사실충실성으로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고, 공포가 아닌 호기심으로 배움을 시작하는. 그런 교육을 함께 만들어나갈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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