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의 돌과 나눈 첫 대화
2025년을 이틀 앞둔 12월 29일 새벽, 나는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오랜만에 맥주 한 캔을 홀짝이던 평범한 저녁이었다. 잠들려는 순간 방안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알코올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밤새 지속된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은 단순한 취기가 아니었다. 새벽에 깬 후부터는 제대로 걷지도, 눕지도 못할 만큼 증세가 심해졌다. 그 때부터 지옥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화장실에서 토하려 애쓰는 나를 보고 놀란 아들이 등을 두드려주었다. 결국 아들은 엄마의 심상치 않은 상태를 알아채고 구급차를 불렀다.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잠옷 바람으로 구급차에 실렸다. 차 안에서도 메스꺼움은 가라앉지 않아 앉은 채로 비닐봉지에 토해야 했다.
응급실에서는 이석증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뇌출혈이나 뇌경색의 전조일 수도 있으나 희박하다며, 원한다면 CT와 MRI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불필요한 방사선 노출이 꺼려져 사양했다. 어지러움을 진정시키는 수액만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엄마가 끓여주신 흰 죽을 먹은 후, 단골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평소 코감기, 축농증, 비염으로 자주 찾던 곳이었다. 증상을 말하자 의사는 즉시 검사를 하자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고글 같은 장치를 쓰고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이석증이었고, 생각보다 증세가 심했다. 보통은 한쪽 귀만 문제가 되는데, 나는 양쪽 모두 해당되었고 특히 오른쪽이 더 심했다.
의사는 진동하는 기구로 내 목과 귀 뒤를 치료했다. 진료실로 돌아와서는 사진을 보여주며 이석증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나는 이 병의 이름조차 정확히 몰랐다. 귓속에는 뼈와 성분이 비슷한 작은 돌들이 있는데, 이것이 약해져 제자리를 떠나 달팽이관을 떠다니면 어지럼증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과로가 원인일까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최근 몇 달간 무리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T성향이 분명한 우리 의사 선생님은 솔직하고 무표정하게 답했다. "그것보다는 노화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죠. 갱년기 여성에게 골다공증이 오는 것처럼, 귓속의 이 돌들도 뼈와 성분이 같아서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는 겁니다."
내가 적지 않은 나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막상 노화로 인한 병에 걸렸다고 눈앞에서 들으니 정말 현타가 왔다. 아.. 이렇게 나는 할머니가 되어가는 거구나! 싶었다. 몇 개월 전엔 책 읽는데 눈이 너무 침침하고 잘 안보여서 안과에 가서 검진했더니 '노안이라 그렇다, 별 다른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벌써 돋보기 안경을 써버리면 눈 노화가 더 빨라지니 최대한 견디며 참는 것밖엔 대책이 없다'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이젠 또 귀에서 이석증이라니...
조금은 참담하고 또 씁쓸한 기분으로 약국에서 약을 받아 들었다. 내일도 치료받으러 와야 한다고 했다. 완전히 낫지 않았으니 당분간 고개를 크게 흔들거나 운동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잠잘 때도 정자세로 자고, 모로 눕더라도 반드시 오른쪽 귀가 위로 가도록 누우라고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이렇게 46년이나 살아오는 동안 그 존재를 한 번도 의식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왔는데, 어제 그렇게 고통을 겪고 나서는 새삼 내 귓 속의 돌들을 계속 생각하며, 그 존재를 이렇게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는 현실이 말이다. 마치 수년 전, 내가 살던 동네 앞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역사 창문을 통해 보았던 한 늙은 소나무가, 처음으로 생생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을 때의 느낌이었다. '빛나 너는 나를 지금에서야 의식하고 알아보았겠지만, 난 네가 나를 모를 때부터 여기 있었어. 그리고 언젠가는 네가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위안을 받을 순간이 올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빛나야, 반갑다. 지금 너 참 힘들지? 그래도 나를 봐봐. 난 수백 년을 이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힘든 순간도, 기쁜 순간도 그저 묵묵히 살아왔어. 네가 지금 많이 힘들어도 그 시간들은 결국 지나갈 거야.'라고 말해주었던 그 소나무.
나는 아침부터 요가를 하며, 사랑하는 이가 보내준 죽을 먹으며, 설거지를 하며 계속 내 귓 속의 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오늘 아침에도 방 안이 핑핑 돌았다. 아, 내 귓 속의 돌들이 제 자리를 떠나 유영하고 있구나! ㅎㅎ 내 인체가, 몸 속이 그 돌들에겐 세상이자 우주일텐데. 긴 시간 그 자리에 묵묵히 버텨줘서 고맙다. 이제 힘이 좀 많이 들어서 약해진 네가 둥둥 뜨면서 나는 이렇게 세상이 빙빙 돌고 어지럽다는 게, 풋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늙어간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몸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것들이 하나씩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말을 거는 것. 그리고 비로소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내가 살아온 시간을, 조금씩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