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일기03) 사실은 어린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욕구가 결핍된 어린 내가 엄마가 되어 생긴 일

by 마음 읽는 엄마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줘 보면 어떨까요?"


상담사의 얘기를 듣고 순간 '말은 쉽죠..'라는 생각이 스쳤다. 난 그동안 아이의 오전 짜증을 잠재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었다. 챗GPT에게 질문해서 이 시기의 아이 특성에 대해 알아보기, 아침에 일어나 꼭 안아주기, 일어나자마자 배고픔을 해소할 작은 먹거리 제공하기, 기상 음악 틀기 등.

그래서 난 어쩌면 해볼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아이의 마음 들어주기’에는 소홀했다는 사실을 상담사와의 대화에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


상담사: 아이가 짜증을 낼 때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것도, 당신만의 중요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아이가 짜증을 낼 때, 어떤 감정 때문에 가장 힘든가요?


: 내가 아이에게 부족한 걸 못 채워주고 있나?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어요.


상담사: 당신은 아이의 감정을 '자신이 잘못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네요. 혹시 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해오지 않았나요?


그 순간, 내 어린 시절 속 '내 잘못일까?' 하는 자책들과 눈치 보는 내 모습이 스쳐갔다.

아이의 짜증도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

다른 사람의 지나가는 말에도 '내가 저 사람을 기분 나쁘게 했을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이가 냉랭해 보일 때에도 '내가 뭘 잘못해서 엄마 아빠가 싸웠나?'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늘 눈치 보고 내 잘못은 없는지 점검하던 어린 시절의 나.


어릴 적 우리 집은 IMF로 인해 큰 위기를 겪었고, 아버지의 알코올 문제로 부모님이 자주 싸우곤 했던 기억이 난다. 준비물을 살 때도 눈치를 봤어야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부모님의 눈치 보기와 성실한 우등생이 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짜증조차 ‘내 잘못인가?’로 연결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내가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담사: 당신은 어릴 때 마땅하게 누려야 했던 '의존 욕구'가 부족한 사람일 수 있어요. 또 언제나 내 존재를 부모님께 증명해야 했을 것이고요. 완벽하려는 노력이 어쩌면 번아웃으로 돌아온 것일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정말로 원해서 이뤄온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에 합격했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다.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육아, 요리, 재택알바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내 나름의 '증명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고, 아이의 종달 기상으로 잠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지자 번아웃으로 돌아온 것이다.


상담사의 조언을 듣고 가장 쉬운 것부터 내 생활을 변화시켜 보기로 했다.

1. 반찬은 다 하지 말고 사서 먹기

2. 재택 알바 줄이기

3. 운동 줄이기

4.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나만을 위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갖기


반찬을 사다 먹고, 회사에 일도 줄여 달라고 요청했다.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이 생기니 첫 1~2주간은 정말 행복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나는 또 심각한 우울의 굴레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서야 나는 문제의 뿌리가 ‘일의 양’이 아니라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에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의 마음조차 읽어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아이의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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