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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하 Sep 30. 2023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딸을 어떻게 피말리는가(1)

우리 엄마는 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됐을까

며칠 전 '프리퀄'이라는 매거진을 만들었다. 프리퀄이란 본편보다 앞선 시점의 속편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트라우마들을 극복하고 마음을 다잡은 이야기들이 본편이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은 '속편'취급을 할 예정이다. 이 매거진은 나의 고통스러운 부분을 봉인한 상자 같은 존재로 생각하려고 한다.

해당 제목으로는 할 말이 매우 많아 여러 번에 나눠서 써보려고 한다.

*저는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전문가가 아닙니다. 저의 경험담을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거나 일반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ex 아, 가정환경이 좋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으면 다 저렇게 나르시시스트가 되는구나 같은 생각) 각 개인의 상황과 경험은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글을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건강한 나르시시즘이 필요한 것 같다. 요즘 같이 서로서로 비교하고 남보다 잘나지 않으면 좌절감에 빠져버리는 정서의 시대에 약간의 나르시시즘은 '진통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 '나는 사랑받아야만 하는 존재야!'라는 믿음은 상대가 나를 함부로 하는 것을 막아주며 상대에게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 또한 나르시시스틱 한 면모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남을 이겼을 때 느껴지는 우월감과 자기애는 때때로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고통을 견딘 것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라고 본다.


 그런데 나의 엄마는 대단한 성취 혹은 성취와 무관한 무조건적 사랑으로부터 오는 자기애를 느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듯하다.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가 아들을 낳기 위해 낳았다가 실패한 결과물 같은 존재였다. 엄마는 자매가 매우 많다.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은 '저 집엔 딸이 많아 늘 시끄럽다.'며 흉을 봤다고 한다. 그 자체로 고유성을 존중받으며 자랐다기보단 n번째 실패작 같은 존재라 본인의 생일도 여태 의심한다. 이렇게 자식이 많은데 우리 엄마(외할머니)가 내 생일을 기억할까? 하는 생각인 것 같다. 한 번은 '엄마가 왜 보고 싶고 그리울까? 그런 느낌이 뭘까?'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AI뤼튼에게 마리오네트 조종하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그려주었다.

 가정 내에서도 존재감이 확실치 않았는데, 다른 집단에서도 그랬다. 엄마는 성적도 그저 그랬다. 외모도 그저 그렇다. 성격면에서도 유머러스하여 비타민 같은 존재도 아니었고 공감능력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 친구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존재도 아니었다. 은사님 이야기나 학우들과 즐거웠던 이야기를 푼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짝사랑의 대상이 되거나 러브레터 주고받으며 몰래 연애한 썰도 없다. 자주 했던 이야기는 돈이 부족해 준비물을 사지 못하면 학교에 가지 않고 버텼다거나 n시간을 걸어 학교에 갔다는 것이다.


 연애 면에서도 그렇다. 연애를 거의 안 해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썸 비슷한 것은 있었어도. 아빠와 연애를 할 때도 근사한 선물을 받거나 설레는 데이트 같은 것은 안 해봤다고 한다. 연애 때 아빠는 엄마가 일 하는 중인데도 김밥을 사 오라고 하고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로부터 시집살이를 겪었으며 아빠는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이 강해 의지가 되지 못했다. 나는 첫째 딸인데 보통의 첫째 딸들은 엄마를 향한 공감능력이 좋아 감정소모를 하면서까지 지지해 준다고 하는데 ('감정쓰레기통'으로 살았다며 후회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바른말을 딱딱하여 엄마를 불편하게 만드는 타입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굉장히 안쓰럽고 불쌍한 사람이 맞다. 지금 시점에서도 연봉이 높거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지도 않다. 결혼한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고 있다. (나는 정말 이것에 여러 번 분노했다. 아니 다 똑같은 사원이지 결혼하고 애가 있는 여자라고 해서 '우리가 너를 고용해 준 거야.' 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 불가능하다.) 뭐 자업자득이긴 하나 큰 남동생은 외현 나르시시스트에 가까운 아빠가 본인의 자존심을 세워줄 존재로, 내현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자기가 무시당하는 것을 막아 줄 존재로 키워졌기 때문에 대단히 비뚤어져서 되려 엄마를 괴롭게 하고 있다.(카푸어의 인생에 대한 글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 창피스러워서 못할 수도......)

 

 외현 나르시시스트들은 '내가 제일 잘났어!' 하는 느낌인데 내현 나르시시스트들은 뭐랄까...... 도저히 우월감, 자기애를 느껴보거나 자존심을 세울 영역이 나타나지 않아 표적을 정하고 그 표적을 괴롭히면서 그걸 얻어내는 사람인 것 같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 대고 있는데, 딱 한두 뼘짜리 발받침대만 있으면 숨을 쉴 수 있는데, 그 용도로 쓸만한 것이 보이지 않아 나를 발받침대로 쓴 느낌이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의 마음은 늘 시기, 질투, 분노로 차 있다는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시기 질투하여 깎아내려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나에게만 벌어진 불행은 아니며 이런 유형의 부모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 보편적이지 않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왜 부모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시절부터 그랬는지는 후속 편에 적어두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같은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너무 예전이라 자세한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엄마에게 친구들이 한 짓들을 조목조목 얘기하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그거 다 너를 질투해서 그런 거야.' 하며 정서적인 위로도 해주지 않고 해결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이 나를 질투한다고 전혀 느끼지 않았고(분명 만만하게 보고 무시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뉘앙스로 전달하지도 않았을 텐데, 우리 엄마는 밑도 끝도 없이 계속 '그건 다 너를 질투해서 그런 거니 그냥 참아라.'라고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이 느꼈던 감정이라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정말 아무 조치도 취해주지 않아 나는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글이 길어져서 다음 글에 이어서 쓰고자 한다. 다음글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이 어떤 생각으로 자식을 괴롭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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