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넘어서는 시간:합평

서툰 문장을 기우며 배운 글쓰기

by Readraw

립 책방에서

서 모임하며

립 출판한 이야기

“책을 읽는 자리에서 출발해, 쓰기와 그리기, 출판과 전시로 이어진 여성작가 읽기 모임 기록입니다.”


합평(合評) :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함.




릴레이 검수, 그리고 총천연색 원고


첫 합평 전 날 밤, 편집을 맡은 나는 멤버들의 글을 하나로 모았다. 덕분에 날것의 글을 먼저 읽는 기쁨을 누렸다. 서툴지만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문장 사이로, 나처럼 밤새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을 여덟 명의 얼굴이 글자 위로 겹쳐 보였다.


드디어 합평 시간.

"하나로 모은 우리 원고 어떠셨어요?"


내 질문이 허공에 흩어졌다. 모니터 너머로 시선들이 바쁘게 굴러갔다. 누군가는 이미 식어버린 찻잔을 만지작거렸고, 누군가는 다 읽은 원고를 괜히 처음부터 다시 스크롤했다. 우리는 읽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내밀한 고백 위로 서슬 퍼런 비평의 칼날을 세우는 법은 누구도 배워본 적 없었다.


"음, 저는 다 좋았어요. 문장이 참 좋더라고요."


누군가 먼저 조심스럽게 '좋다'고하자, 기다렸다는 듯 비슷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맞아요, 저도 읽으면서 울컥했어요. 그냥 다 좋던데요." "고칠 게 있나요? 이대로도 충분한데."

'좋다'는 무해한 단어가 촘촘히 쌓였다. 진심 어린 글에서 감응을 얻은 마음과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배려가 뒤섞여 안전한 벽이 되고 있었다.


나는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싫어서, 적당한 거리 뒤에 숨는 쪽을 택했다.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으려 주위를 살폈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떼지 않았지만, 방 안을 감도는 공기는 더없이 부드러웠다. 그 밀도 높은 적막 속에서 조용히 화면을 보던 책방지기 '버찌'가 조심스레 운을 뗐다.


"여기 글에 들어간 '나'를 다 빼고 그다음에 정말 필요한 곳에 넣어보면 어때요?"
"'우리'와 '나'가 너무 혼재되어 있어요. 시점을 통일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이 제안은 우리 모임이 '기록'을 넘어 '출판'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문턱이 되었다.

이후 중심을 잡아준 건 논술 선생님인 멤버 ㄱ이었다.

"안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인자한 선생님 얼굴로 돌아온 그녀는 주술 호응이 어긋난 문법적 오류와 '~인 것 같다'는 모호한 표현을 다듬었다.

합평이 끝난 뒤 멤버들이 ㄱ 옆에 마치 숙제 검사를 기다리는 초등학생처럼 총. 총. 총 줄을 섰다.






한 명에게 이 짐을 다 짊어지게 할 수 없었으므로 우리 다운 방식으로 교정 교열을 해보기로 했다.

바로 '릴레이 검수'. 수정한 부분을 체크하고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지독하게 비효율적이며 정성스러운 방식이었다. 덕분에 원고 마감일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각자 지정한 색깔로 의견을 달다 보니 원고는 블루, 핑크, 레드, 브라운... 여러 색으로 물들었다. 무지개처럼 번진 아홉 개 시선이 헐거운 문장을 조각보처럼 촘촘히 기워나갔다.


무채색 활자 사이에 드문 드문 색채를 띈 원고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음이 복잡해진다. 누군가에게는 이 과정이 일상을 침범하는 피로였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부채였을지도 모른다. '내 열정이 타인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이 감정을 적확하게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 나는 자꾸만 썼던 문장을 지우고 멈춰 선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모임을 만든 모임장과 늘 응원을 보내던 책방지기, 그리고 밤늦게 원고에 자기만의 색깔을 입히던 멤버들까지 그 안에는 분명 애정이 있었다는 걸.


여러 수정을 거친 원고 파일과 릴레이 검수 원고 일부








문장 뒤에 숨지 않는 법


나는 이미 충분히 고쳤다고 생각했다. 타인 글을 읽기 전까지는.

릴레이 검수가 진행되는 동안 묘한 부끄러움에 사로잡혔다. 내밀한 가족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 ㅇ의 문장과 개인적인 아픔을 솔직히 고백한 ㄷ의 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작가처럼 세련된 기교는 없어도, 서툴고 거친 그 문장은 흙당근처럼 투박하고도 향긋했다.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싶어졌다. 매근하게 씻어 어쩐지 손이 안 가는 세척 당근 같은 글 말고, 흙에서 갓 캐내어 생명력이 느껴지는 흙당근 같은 글 말이다.


'나를 감춘 채 타인에게 가닿을 수 있는 문장은 없다.'


결국 썼던 글을 전부 엎고 새로 쓰기 시작했다. 어려운 단어와 추상적인 비유를 가차 없이 지워내고, 그 자리에 감춰두었던 내 이야기를 채웠다. 마지막 합평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멤버들 앞에서 새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소설 『모순』을 읽고 주인공 안진진과 아버지 서사에 오래 머물렀었다. 새로 쓰며 책을 읽은 소감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던―여전히―초라한 나를 꺼내 놓았다.

'여자는 이대 나와 시집 잘 가면 된다!'
참으로 시대착오적입니다만, 어린 제가 늘 듣고 자라던 말입니다. (...)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가닿고 싶던 제 무의식이 안진진 아버지를 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 그림도 글도 결국 나를 만나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여성작가 읽기 모임' 친구들에게 문장 뒤에 숨지 않으며 용감하게 나를 직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 제 안은 가벼워질 테고, 그렇게 여백이 생긴 공간 속에 타인들을 초대하여 더 풍성한 '내'가 되려 합니다."
- 여성작가 읽기 모임 첫 책 『우리가 읽고 쓴 것』 중 -


수정한 마지막 원고를 다 읽은 뒤 나는 조금 놀랐다.

"나도 똑같은 말 많이 들었는데."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말했어요."


내가 느낀 쾌감은 글을 잘 썼다는 우월감이 아니었다. 보잘것없는 내 진심이 타인과 닿았다는 확인, 그 연결이 주는 안도감이었다. 용기 내어 나를 비웠을 때 비로소 타인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는 역설을 그제야 이해했다.


하지만 고백 뒤엔 여지없이 부침이 찾아왔다. 진솔함을 가장한 문장 사이로, 여전히 누군가의 박수를 갈구하는 인정 욕구가 흙탕물처럼 배어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이 어리숙한 욕망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관조하고 다시 비워내는 지루한 싸움일지도 모른다.


비워내야 할 건 문장만이 아니었다. 이제 이 총천연색 고백은 내밀한 기록을 넘어, 손에 잡히는 물성을 가진 ‘책’으로 엮여야 했다. 마음의 군더더기를 깎아내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이제 종이 위 여백을 설계하는 편집 디자인으로 이어진다.


*이제 실제 책 형태로 엮어내기 위해 홀로 여백을 깎아내던 '편집 디자인'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read.r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