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관과 밀크 스콘

영화 기생충 - 견고한 계급 안에서 숨쉬기

by 투명서재

명품관과 밀크 스콘


영화 기생충


한줄평 : 견고한 계급 안에서 숨쉬기



남편 : “나 여기 롯데타워몰 지나갈 땐 명품관 화장실 써. 사람도 없고 깨끗해.”


나 : (웃으며) “내가 이번 달 월급 줄 테니, 여기 와서 사고 싶은 거 하나만 사.”



우리가 롯데타워몰 명품관 앞에서 나눈 대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명품관 매장이 아니라 화장실만 간다는 말을 듣고 남편이 짠했다. 농담처럼 말은 그리 했지만, 진짜 명품 구입할까봐 속으로 쫄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영화 '기생충'을 본 후 떠올린 질문이 맴돌았다. ‘나는 기정(배우 박소담)일까? 근세(배우 박명훈)일까?’ 이번 경우는 근세였다.



사실 남편이 그 말을 꺼내기 전부터 명품 매장의 이름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외국어로 쓰인 브랜드, 반짝이는 가방, 세련된 옷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찰나였다. ‘나는 명품을 좋아하는가?’라고 스스로 물었을 때 답은 ‘No’다. ‘내가 처음부터 명품을 좋아하지 않았나?’ 생각해봤다. 내가 욕망한다고 한들, 가질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기호’의 영역에서 명품을 제외한 건 아닐까? 어쩌다 하나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내가 욕망대로 채울 수 없는 것이라면 애초에 그 욕망의 크기를 작게 만들 수밖에 없다. 영화 속 근세가 기본적인 욕구, 먹고 자는 것만 해결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가끔 사장 가족이 길게 외출하는 날에는 말끔히 씻고 부인과 함께 거실에서 춤을 추면서 어쩌다 한번 욕망이 해소되면 다시 사그라든다.



나의 욕망도 그랬다. 별로 원하지 않는다 여겼지만, 만약 내가 그런 여건이 된다면? 나는 욕망의 끈을 단단히 동여매지 않고 맘껏 풀어버릴 수도 있으리라.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쇼핑백 여러 개를 들고 가격표를 보지 않고 카드를 긁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 가는 길, 새로 생긴 스콘 가게에 들렀다. 속으로 반지하 정도의 욕망은 쉽게 채우자며.



영화 ‘기생충’에서 근세(배우 박명훈)가 기정(배우 박소담)만 죽인 이유를 추측해보자. 자신의 의식 안에서 올라오는 계급을 탈환하여 올라가고 싶은 욕망을 거세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지하에 계속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 가졌던 삶의 충동, 생기를 없애야만. 만약 근세가 무언가 다르게 살려는 욕구로 그 집에서 나가거나 부인(배우 이정은)과 함께 다른 일을 도모한다면 그는 다시 실패, 혹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계급의 구조는 영화 ‘기생충’ 속 잘 지어진 집의 콘크리트처럼 튼튼하다. 웬만해서는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 근세 부부가 찬양했던 북한의 이데올로기는 그들을 살게 한 동아줄이자, 꽁꽁 묶어놓은 덫이었다. 기정은 그것을 타파하고 그들과 협력하려 했으며 같은 계급에서 공간을 공유하며 살려 했다. 기정이 그들에게 아침 식사를 갖다주려 하면서 엄마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지 한 번 얘기해보겠다는 대사에서 드러난다. 그런 기정을 근세가 죽인다는 설정은 참으로 현실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에서 말한 것처럼 근세 부부가 그토록 원하지만 두려운. 계급 상승을 기정이 노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박사장보다 기정이 더 위협적이다. 밥그릇은 하나, 뺏기지 않아야 살아남는다. 원래 자신들의 자리였던 지하를 지키기 위해 자기가 질시하는 기정의 모습을 없애야 했다. 그래야만 지하라는 계급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므로.



그렇다면 우리는 근세의 모습일까, 기정의 모습일까? 자본주의에서 어떻게든 상위로 올라가기 위해 기를 쓰는 중일까, 아니면 근세처럼 그 시스템 안에서 체념한 듯 최대한 적응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사는 중일까? 그 시스템이 없는 것처럼, 유유자적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현대판 법정 스님의 무소유나 헨리 데이비스 소로우의 월든처럼 말이다. 그들은 마치 어항 속 물고기가 물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보이지 않지만 위력이 대단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간혹 숨이 막힌다.



견고한 계급의 계단에서 자신의 냄새에 질식하지 않고 숨이라도 자유로이 쉬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 영화는 관객에게 눈을 크게 뜨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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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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