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고요히 바라본다는 건

영화 벌새 - 각자도생(콩가루?) 가족의 1994년 어느 날

by 투명서재

누군가를 고요히 바라본다는 건


한 줄 평 : 각자도생(콩가루?) 가족의 1994년 어느 날


키 워 드 : 존재감이 드는 시선



영화 소개(네이버 영화 벌새)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살 ‘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




영화 ‘벌새’ 본 후 문득 고등학교 때 과외 선생님이 떠올랐다.


내가 과외를 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에도 과외를 시켜주셨다. 과외 선생님 두 분은 부부였고 남편은 영어, 부인은 수학을 가르치셨다. 어느 날, 수학 선생님께서 나에게 햄버거를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 부부와 롯데리아에서 어색하게 마주 앉은 시간, “네가 나의 청소년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짠해.”라며 입을 열었다. 메뉴판 보여주며 편히 주문하라 해도 처음엔 주문하지 못했다. 말도 못하고 위축된 나를 그녀의 남편이 답답해서인지 피식 웃었죠. 그녀는 남편에게 웃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


나는 원래 두 사람을 알고 있었지만, 둘 다 나를 보고 있는 상황이 불편했다. 햄버거 먹을 때 입 크게 벌려야 하고 입 주위에 소스 묻는 거 싫어 감자만 주문했다. 그녀는 여러 번 됐다고 하고 그것만 먹었다. 그만큼 숫기가 없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과 잠깐의 만남이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그녀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다. 그때의 분위기, 말없이 나와 마주하던 그 공간의 공기는 “나도 너랑 비슷했어. 나도 너처럼 힘든 시기를 통과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라고 조곤조곤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영지 선생님(배우 김새벽)처럼.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인 여중생 은희(배우 박지후)와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배우 김새벽)와의 대화다.


은희 :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 있으세요?


두 여자의 눈 마주침. 이 아이에게 무엇을 말할까. 스산한 얼굴의 영지, 그 침묵을 힘겹게 깨고 영지가 말한다.


영지 : 응. 많이. 아주 많이. 나도 똑같아.


은희, 영지의 말에 놀라서 묻는다.


은희 : 선생님은 그렇게 좋은 대학에 다니는데도요?


영지, 아이의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영지 :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 은희


영지 :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영지의 희고 긴 손, 그 느린 움직임, 침묵


이 대사는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불러주던 운동권 노래 ‘잘린 손가락’의 가사와 대비된다. 이 장면 속의 은희와 영지처럼 나와 과외 선생님은 침묵 속에서 대화했던 것 같다. 내가 감당할 수 없고 자기 회의감,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타인에 대한 미움을 하루에도 여러 번 경험했던 청소년기였다. 그 마음을 다 이해해주진 못해도, 최소한 나와 비슷했다는 걸 과외선생님이 말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내 눈에는 커 보이고 세상만사 다 알 것 같은 선생님이, 과외할 정도로 똑똑한 선생님도 나와 같은 시절을 거쳤구나. 그 사실만으로도. 과거에는 자기를 싫어했지만 나보다 조금 앞서 자기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걸. 나는 그 시절, 완전 혼자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선생님을 떠올리고 나니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안쓰러워했던 누군가가 있었구나. 혼자는 아니었네.’ 싶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박해영(배우 이제훈)이 형마저 죽고 외롭게 살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게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성인이 된 후 무전을 통해 이재한(배우 조진웅)이 자신을 몰래 지켜보고 돌봐준 과거를 알고 눈물을 흘린다. 당시 내가 가족도 없이 박해영처럼 불우하게 산 건 아니었다. 그래도 외로운 건 외로운 거였다. 나의 혼란스러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영화 ‘벌새’를 보고 며칠 후 설거지하다 과외선생님이 떠올랐다. 나도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안쓰럽게 보던 선생님이, 걱정의 눈초리로 보던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 영화의 배경은 나의 청소년기와 겹치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나를 위로해줬다.


영화는 1994년도 서울을 생생하게 그린다. 그 시절 나도 은희처럼 중학생이었다. 영화에는 유독 강남의 아파트와 철거 장면이 자주 나온다. 준공 연도 79년인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80년대 이후 사교육의 대표적인 현장으로 군사정권, 부동산, 학군, 출세(학연, 지연)라는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갔다.


김보라 감독은 공간과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잘 엮어갔다. 첫 장면부터 아파트 복도에서 다급하게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걸로 시작한다. 주인공 은희는 뭔가 불안해 보인다.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왼편이 은희와 언니 방, 복도를 지난 오른쪽에 주방이 나오고 방이 두 개 더 있는데 부모님 방과 은희의 오빠 방이다.


카메라는 굳이 화면을 반반 잘라 보이게끔 벽을 가운데 놓고 왼편에는 주방, 오른편에는 은희 방문 쪽을 보여준다. 아파트 벽으로 가족 단절, 분열을 의미하는 듯하다. 가족은 한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고통 속에 빠져 다른 곳을 응시한다. 저녁 식사 시간에도, 싸우고 난 다음 날에도, 외삼촌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잘린 손가락'이라는 운동권 노래를 불러주는 영지 선생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할 때는 손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한다. 그래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다면서. 은희는 영지 선생님 말을 듣고 자신의 손가락을 가만히 움직인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피를 본 격렬한 싸움 다음 날도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부모, 은희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엄마, 은희가 말하는 콩가루 집안에 콩가루 하나 하나가 각자 위태로워 보여, 누구 한 명이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처절하게 외로워서 각자도생한다. 영화 속 가정은 중산층이라는 꽤 안정적인 경제 공동체를 이루고 살지만, 정서적으로는 연결이 끊긴 위기의 가족이다.


아버지는 춤을 배우고, 어머니는 구멍 난 스타킹을 신고 잔다. 오빠는 은희를 때리고 언니는 남자친구와 밤을 지새우며 논다. 은희는 가장 약하기에 가족 누구에게 표현할 수도, 스트레스를 풀 수도 없다. 은희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남자친구에게 기댈 수도, 배신한 친구에게 말할 수도, 그 시절 유행했던 X 동생을 원망할 수도 없는 사이, 영지 선생님에게 안긴다.


은희의 그 미칠 것 같은 불안, 외로움, 혼란스러움은 거실에서 윤복희의 '여러분'이라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는 거실에서 쿵쿵 뛰는 동작과 한문학원에서 잘리고 자신의 방에서 날뛰던 장면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김보라 감독은 인물의 다양성을 보여주려 애썼고 영지 선생님이라는 유일하게 어른처럼 보이는 사람도 이상화하려 하지 않았다. 감독은 그 누구도 가해자, 피해자 구도로 읽히는 걸 원치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은희의 언니와 오빠, 은희 모두 각각의 현실적인 사정, 다양한 면이 있는 걸 보여준다.


아버지는 같은 아파트 주민에게 고춧가루로 타박을 듣고, 어머니는 바람난 남편을 감내하며 어린 시절 오빠 공부시키느라 똑똑한 자신은 정작 학교를 다 마치지 못한 설움도 참아낸다. 은희 언니는 공부도 잘하는 것도 없어서 아버지의 구박에, 오빠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기대에 부담을 느낀다. 은희 친구는 은희에게 "너는 너만 생각하더라." 그러고는 바로 장난을 건다. 아빠에게 맞는 그 친구도, 은희도, X 동생도 자기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는 게 힘들다.


어쩌다 우연히 발견하는 깨진 전구 조각처럼, 우리는 깨진 조각들이지만, 원래 한 가족이었지 하는 우연한 깨달음이 스친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그 사건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이 가족에게는 딸이 살아온 날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의미가 없다. 그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깨우친다. 하루 만에 그들 모두 으쌰으쌰 한순간에 뭉쳐진 건 아니지만, 그 위기로 인해 서로를 조금씩 응시하기 시작한다.



‘아, 여기 있구나. 나를 위해 감자전을 부치는 엄마가, 식탁에서 먼저 찌개 국물을 뜨는 아빠가, 저녁 먹다 말고 뜬금없이 우는 오빠가, 멍하니 은희를 바라보는 언니가, 마지막 장면에서 친구들을 둘러보는 은희가.’



존재감을 알아차리자 은희는 ‘조금씩 날개짓을 줄여도 되겠구나. 내가 외로워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1초에 19~90회 정도의 날개짓하는 벌새처럼,

하루 살기도 힘겨웠던 은희의 안간힘도 좀 뺄 수 있기를.

그래서 어른이 된 은희가 행복할 수 있기를.



벌새선생님.jfif


ps.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은희와 영지 선생님이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장면이다.

참 신기한 일은 내가 과외선생님과 롯데리아에서 어떻게 앉아 있었는지, 어떤 모습이었을지가 마치 속도를 늦춘 영상처럼 생생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 '좋은 어른'인 선생님이 각인되어 있었다. 과외 선생님,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실지 모르겠지만 고마웠어요!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벌새

이전 04화부모가 좋음을 강조할 때 일어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