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님 결혼생활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20대 때는 결혼과 부부에 관한 책을 읽었다. 부모님이 불행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이혼하지 않고 살아가시는 모습이 의아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혼 후 내 생활이 180도 행복하게 달라질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어느 날인가는 남편과 싸웠는지 아닌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신혼집 거실 바닥을 걸레질하다 울었다. 이유는 엄마 보고 싶어서. 그 뜬금없음에 스스로 적잖이 놀랐다. 나는 그전까지 독립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머니에게 여전히 아이처럼 의존하고 싶었다. 앞으로 남편과 함께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혼자 어떻게 그 많은 책임을 감당할 것인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주저앉았다. 팍팍한 현실을 때가 타는 걸레로 마주했다.
동화 속 왕자와 공주가 만나 행복하게 산 환상은 없었다. 왜 많은 명작 동화가 주인공들이 결혼하기 직전이나 결혼과 동시에 끝나는지 알 것 같았다. 결혼 이후의 글은 더 이상 동화가 될 수 없다. 물론 결혼 이후를 보여주는 전래동화가 있다. 바로 우리의 고전 ‘선녀와 나무꾼’이나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이다.
선녀는 어떻게든 날개옷(자기를 상징, self)를 찾아 하늘나라로 돌아간다. 평강 공주는 자기(self)를 찾기보다 바보 온달을 도와 장군 온달로 만든다.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니콜(배우 스칼릿 조핸슨)은 결혼 생활 동안 평강 공주 노릇을 하다 지쳐 이혼을 통해 선녀로 역할을 바꾸려 한다. 남편인 찰리(배우 아담 드라이버)를 뉴욕의 유명한 연극감독 찰리로 만든 후 자기를 찾기 위해 LA로 떠난다.
LA에서 여성 변호사와 만나 결혼의 처음부터 현재까지를 모두 고백한다. 결혼하기 전 눈에 콩깍지는 보정과 같다. 결혼과 배우자에 대한 환상이 깨진 후에는 콩깍지가 쓰였던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은 심정이 된다. 니콜(배우 스칼릿 조핸슨)이 말한 자신의 남자에 내 인생을 건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고작 스무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다니!’ 놀라워한다.
니콜과 찰리(배우 아담 드라이버)는 8살 아들 하나를 키우는 평범한 부부다. 전형적인 뉴요커들, 찰리는 극단을 운영하며 연극 감독이다. 니콜은 배우로서 잘 나가다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반짝 스타로 잊혀져 가는 기혼 배우 중 하나가 되었다. 니콜의 희생으로 찰리의 꿈이 이루어졌다면, 니콜은 찰리에게 무얼 바랄까?
이 영화는 부부관계의 한 관계방식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부부 사이에 여러 관계방식이 있는데 이들은 이마고 부부관계 치료에서 상처받은 부부의 굳어진 관계방식 중 하나인 ‘엄격한(strict) 사람’과 ‘흩어진(diffuse) 사람’ 짝으로 나뉠 수 있다. 릭 브라운의 ‘이마고 부부관계 치료’에서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거울처럼 반사해 주는 부모를 통해 정체성의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한다. 엄격한 사람은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개성, 취향, 하는 일, 목표가 분명하다. 흩어진 사람은 정체성이 모호하다. 마치 물 같다. 어느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진다. 어떤 이는 자신이 만났던 남자친구에 따라 음악 취향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1999년도 영화 ‘런어웨이 브레이드’의 현대판 업그레이드 버전이 2019년 개봉된 ‘결혼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런어웨이 브레이드’에서 예비 신부 매기 카펜터(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결혼식 당일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도망친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자 기자 아이크 그레이엄(배우 리차드 기어)이 매기를 만나 취재한다. 그녀는 기자와 대화하며 자신의 욕구,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아 자기(self)가 없이 남자친구에게 맞춰왔다는 걸 깨닫는다. ‘결혼 이야기’는 정체성이 모호한 매기와 그레이엄이 결혼 후 다음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결혼 이야기’에서 니콜은 찰리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고 성공하게 드는 데 일조한다. 자신의 색깔, 모양, 원하는 것과는 상관없다. 그런데 아이가 8살 정도 되고 나서 자신의 경력에 있어 좋은 제안이 들어오자 내면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니콜은 남편이 상을 받고 연극이 성공할 때 진심으로 축하했고 남편 또한 자신의 TV 시리즈 출연 제의에 대해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의 반응은 자신의 기대와 어긋났고 심지어 출연료를 극단을 운영하는 데 쓰자고 말한다. 니콜은 그의 제안에 일말의 희망을 놓아버린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 이혼소송이 마무리될 때쯤 니콜은 상을 받는다. 찰리는 “니콜은 연기를 잘하니까.”라고 말한다. 니콜은 그에 대해 “감독상이야.”라고 응수한다. 니콜은 자신의 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고 찰리는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서 말한 엄격한 사람과 흩어진 사람은 어떻게 짝이 되는가? 그들의 어린 시절을 가정하자.
엄격한 사람은 자기 이미지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양육자에 의해 조정, 만들어진다. 거울로 치자면 있는 그대로 비워주는 부모가 아닌 만들어주는 부모다. 예를 들면 자녀의 어린 시절부터 자녀의 욕구와 상관없이 “너는 피아노를 좋아하니까 나중에 피아니스트를 하면 좋겠다.”라고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다. 자신의 색, 모양, 틀이 원래 있었는데 양육자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격이다.
양육자가 거울처럼 자기 모습을 비춰주지 않고 관심이 없거나 방임되었을 경우 흩어진 사람이 된다. 거울이 없으니 자기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누군지, 어떤 모습인지, 뭘 바라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혼란스럽다. 예를 들어 양육자가 우울한 상태라 자녀가 공주 옷을 갈아입고 다가와 "엄마, 나 공주가 됐어!" 라고 말할 때 텅빈 눈동자로 아무 반응이 없는 경우를 보자. 양육자의 사정이나 상황에 따라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반복되면 자녀는 자신이 마치 투명인간처럼 느껴진다. 자기가 공주가 되고 싶은 환상, 양육자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담아질 눈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바람을 모르기에 다른 사람에게 구체적인 요구나 주장하기 어렵다. 엄격한 사람과 비교하자면 흩어진 사람은 자신의 색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다른 사람의 색깔이 덧칠해지는 격이다. 자신의 개성, 취향, 가치관이 분명해지기 전에,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중요한 주변인이나 상황에 따라 바뀐다.
둘이 짝이 된다면 어떨까? 엄격한 사람은 흩어진 사람이 답답하고, 흩어진 사람은 엄격한 사람이 야속하다. 엄격한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기 취향도 모르고 주장도 못하는지 의문이다. 흩어진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걸 모르겠는데 자꾸 물어보거나 정해주면서 침해하는 엄격한 사람이 서운하다.
이 둘은 모두 발달과제가 있는데 실천하기는 꽤 어렵다. 엄격한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한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말이다. 엄격한 사람은 흩어진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한다. 흩어진 사람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느끼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익힌다.
그러니 영화 속 니콜은 자신이 LA에 살며 다시 일하고 싶다고 더 적극적으로 외치고 요구해야 했다. 찰리는 니콜이 뭘 원하고 어떤 삶을 살기 바라는지 더 관심을 가지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그들은 자신의 발달과제를 간과했기에 좀 더 성숙한 사랑 단계로 진입하지 못 했다.
여기까지 읽고 싱글 독자는 어떤 마음이 들까?
결혼해서도 자기를 성장시킬 바에는 결혼 없이 혼자 크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빙고!?)
사랑이 신비한 일은 누구나 자기를 크게 성장시킬(도 닦게 만드는)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우선 자기부터 성숙해지는 게 길이다.
이런 교훈적인 결론은 꼰대 같지만 말이다.
ps. 영화 속에서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깨달은 니콜의 표정,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 찰리, 그리고 엄마를 향해 누워 있는 중간의 아이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그들의 자세와 거리로 여실히 보여준다. 맨 위의 사진에서도 화면을 지하철 봉으로 나눠놓는 것으로 이들이 사이가 좋지 않으며 이미 심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