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영화 500일의 썸머-두려움을 이기는 용기 있는 선택

by 투명서재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한 줄 평 :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 있는 선택


키 워 드 :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바람(want)과 두려움(fear)


소개


톰(조셈 고든 레빗)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의 새 비서인 썸머(조이 디셔 넬)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썸머도 톰에게 마음을 열며 두 사람은 사랑을 시작하게 됩니다. <500일의 썸머>는 구속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썸머와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은 끊임없이 충돌하며,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법한 평범한 연애 이야기를 실연한 톰의 기억의 흐름으로 그려냅니다. 그러니까 <500일의 썸머>는 "산산이 조각난 사랑의 잔해 앞에서 추억을 곱씹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위즈덤하우스 중에서)



사랑 그놈, 참 얄궂다. 사랑이라고 믿으면 배신당하고 사랑을 믿지 않으면 사랑이 찾아온다니!


미스터트롯이 한창 인기 있을 때 정동원이 부르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보았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가사가 귀에 감겼다. 눈물의 씨앗이라니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안쓰러웠던 톰(배우 조셉 고든 래빗)이 떠올랐다. 실연당한 톰에게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었다.


영화 초반에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톰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전까지는 행복할 수 없었다. 영화 ‘졸업’을 잘못 이해했다. 썸머는 미시건 주에 태어났고 부모 이혼 뒤 두 가지에 집착했다. 썸머는 검은 긴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을 자를 때마다 무덤덤했다는 것이다(나중에 머리카락은 상징이 된다. 머리카락을 다 기르기 전에 자른다는 건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무덤덤하게 끝낸다는 말과 동의어로 들렸다.) 이런 나래이션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감독은 굳이 "이 영화는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나래이션 마지막에 위의 문장을 덧붙인다. 영화는 처음부터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사랑을 말한다. "자, 내가 이야기 들려줄게. 이거 사랑 얘긴지 아닌지 봐봐."라고 장난치는 것 같다.


썸머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깊이 있는 관계가 어렵다. 톰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자, 처음부터 친구로 지내자 한다. 톰은 둘의 관계가 깊어지고 사랑을 느낄수록 헷갈린다. 그러면 썸머는 왜 톰과 썸타는 걸 넘어 가깝게 지내게 되었을까? 썸머의 욕구과 두려움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썸머는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아.”라고 말은 하지만 정말 내면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원하지 않았을까? 썸머도 찐연애를 하고 싶지만, 부모의 이혼과 이전 연애 경험으로 인해 친구로 지내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이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청춘들은 썸탄다, 삼귀는 단계에서도 할 거 다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선을 긋는다. 예를 들면 조금이라도 관계에 대해 책임져야 할 때, 둘 중 한 명이 관계의 정체성을 규정지으려 하거나, 타인이 둘의 관계를 확인할 때, 혹은 둘 중 누가 진짜 연애 상대를 만나면 바로 ‘썸’으로 둔갑한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연애하는 데 드는 시간과 체력, 돈은 낭비하고 싶진 않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상처로부터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싶다.


그렇다면 썸머도 이름대로 썸만 탄 건가? 영화 속 썸머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진 않다. 썸머는 톰과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두려움이 그 욕구보다 훨씬 컸다. 썸머는 자신의 사랑은 없다는 전제를 톰이 깨주길 바라고 상처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톰은 그녀가 말하지 않는 이상 그 속(욕구와 두려움)을 알아챌 수 없다.


그러면 톰의 욕구와 두려움은 뭘까? 톰은 썸머의 친구라는 전제를 깨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썸머와 친구 사이가 아니라고 하는 순간, 썸머가 자기를 떠날 것 같았다. 하지만 톰은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관계의 정의를 더 확실하게 하고 싶어 한다. 둘은 조금씩 변해간다. 썸머는 연애 초반에 링고 스타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톰은 호응하지 않았다. 연애 후반에 톰이 썸머에게 링고 스타 일범을 보여주자 시선을 피하며 썸머는 가게에서 나간다. 연애 초반에 이케아에서 톰 했던 농담을 연애 후반에 썸머에게 다시 하자 그녀는 자리를 피한다.



썸머는 현실에서 점점 톰과 거리를 느끼고 자신이 가진 딜레마인 사랑에 빠질수록 두려워지고 현실의 차가운 바닥에 서서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나눌 수가 없다. 초반 나래이션에서 힌트인 영화 '졸업'을 보고 잘못 이해한 톰에 반해, 중반에 영화 ‘졸업’의 한 장면을 보며 썸머는 눈물을 흘린다. 그때 톰이 영화관에서 나오며 썸머가 뭐 때문에 혹은 어떤 장면에서 눈물 흘렸는지 물었다면, 둘 사이는 어떻게 됐을까?


"우리 뭐하는 거야?"라는 톰의 질문에 톰은 썸머의 사랑이라는 대답을 듣고 싶지만 들을 수 없다. 둘은 사랑인 듯 사랑이 아닌 걸 하고 있었고 톰에게 썸머는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너였다. 썸머는 사랑이라는 환상이 깨지고 먼저 땅에 닿은 자신보다 허공에 떠서 현실을 부인하고 싶은 톰의 마음을 알기에 서로 터놓고 얘기할 수도 진솔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둘은 한 남자가 끼어들어 "네가? 이런 매력적인 여자의 남친이라고?" 하는 듯한 질문에 톰이 주먹으로 그 남자를 치고 나서 썸머는 더이상 어중간한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결단을 내린다. 사랑은 없다고 단언하던 썸머는 새로운 남자친구가 그 책 내용이 뭐냐고 물어보는 그 순간에 사랑에 빠져버리고, 사랑을 확신하던 톰은 썸머의 그만 만나자는 말에 접시가 바닥에 부딪혀 깨지듯 현실이라는 땅에 내동댕이쳐버린다.



그러면서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 카드의 문구를 제작하는 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사랑해, 고마워, 당신이 있어 행복해.” 같은 문구들이 그냥 말로 하면 되는 걸 왜 굳이 남이 쓴 글이 있는 카드로 전달해야하는지 자신이 하는 일이 비겁한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건 바로 자신에게 하는 말이자,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다. 갑자기 사랑의 환상 껍데기, 콩깍지가 벗겨지자 썸머의 사랑스러운 눈빛, 미소도 온통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연락해.' 라는 썸머의 문자는 톰에겐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그러다 우연히 이전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한 그 둘은 다시 예전의 연인처럼 춤추고 즐거워한다.

그는 일말의 희망을 느끼고 그녀에게 다시 가까이 가지만, 그녀는 이미 프로포즈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에서도 현실을 직시하고 직장을 관둔다. 자신이 구체적으로 뭘 원하는지, 다른 핑계를 대며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이별로 인해 직면되었다.



그는 건축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자신의 꿈이던 건축가에 한 발짝 다가간다. 톰과 썸머가 연애 중에 했던 말이 있다. 썸머가 톰에게 왜 건축 일을 하지 않는지 묻자, 어차피 짓고 허물 건물을 짓는 일을 하기보단 지금 이 일(카드문구 만드는 일)이 더 낫다고 말한다. 그 대사는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수 있음에도 사랑에 빠지는 보편적인 모습을 대신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사랑은 계절처럼 돌고 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는 한여름의 독감 같은 사랑을 앓고 운명은 없다고 혼잣말하며 한 여성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제안한다.


그녀는 "Why not!"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Autumn”


와우! 누가 썼는지 시나리오 한 번 잘 썼다!!!




ps. 썸머가 좋아하는 링고 스타 앨범을 톰이 들어서 보여주자 외면하는 썸머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500일의 썸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