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감독의 피해자를 향한 결연한 태도
영화 세계의 주인, 연출의 세계
윤가은 감독의 피해자를 향한 결연한 태도
연출비법은 숫자 3?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윤가은 감독의 돋보이는 연출은 겹겹이 쌓이다가 결국 터져 나옵니다.
윤감독은 작정한 것 같습니다.
피해자를 불쌍하게 바라보거나 과보호하지 않겠다!!
'피해'라는 말을 분리해서 그 사람만 직시하겠다!!
있는 그대로 일상을 담담히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겠다고.
감독은 고요한 불쇼를 하듯, 끝까지 관객을 울리지 않겠다고 단단히 선언하는 듯합니다.
그런데도 영화 마지막에는 관객의 눈가에 조용히 눈물이 번져갑니다.
1. 사라지게 하는 마술
주인의 남동생은 누나와 엄마에게 자주 마술을 보여줍니다.
“여기 봐봐!” 하며 손안의 것이 사라지는 마술을 보여주고, 학예회에서는 관객들에게 “당신들의 걱정을 사라지게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 작은 아이가 진짜 사라지게 하고 싶은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2. 세차장 씬의 압권
제가 뚜벅이 시절에는 세차장 내부로 직접 차를 몰고 들어가는 경험이 없었습니다. 처음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낯섦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하나의 동굴, 미지의 세계로 입장하는 느낌이었죠.
영화 속 세차장 장면은 크라이맥스이자 진정한 백미입니다.
기계식 대걸레가 차창을 문지르며 차가 이동하는 순간, 엄마와 주인은 몸부림쳐도 어쩔 수 없이 함께 빨려 들어가는 듯합니다.
이미 무너진 세계에서 서로의 상처가 부딪히고 비벼지는 느낌, 주인의 울부짖음이 세차장의 소음을 뚫고 치솟을 때, 우리는 단숨에 그녀의 마음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주인이 엄마에게 느껴온 원망, 가해자는 부재한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 터져버리는 분노, 가족에게 느끼는 미안함, 그 모든 감정이 단 한 장면 안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 소용돌이는 늘 주인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다가 때때로 폭발합니다. 그럴 때조차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 하는 피로함, 어디에서도 마음껏 소리칠 수 없는 피해자의 현실이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사회의 안전 장치와 보호 체계가 없다면, 단 몇 분 남짓 세차장 같은 좁은 공간에서만 겨우 감정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그 가족은 각자 흩어져 자신의 고통을 조용히 여미며, 서로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만약 이 사회 전체가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공감해주었다면?
그 넷이 그렇게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가며 버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그 사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출처 : 영화 세계의 주인 - 네이버 영화 정보 포토
3.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누가 여자아이를 아프게 했을까?"
cctv에 찍힌 동영상으로 누군지 알게 되면서 바로 연결되어 아이가 어린이집 원장(주인의 엄마)에게 똑같이 행동하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이때 눈물이 또르르......ㅠㅠ
주인의 용기가 소녀에게, 소녀의 용기가 엄마에게 전해진 듯했습니다.
4. 충격적인 키스신 세 장면
영화 초반부터 화면에 가득차게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놀라긴 했어요. 윤감독이 이 장면을 세세하게 세 번이나 보여준 건 어떤 이유일까 생각하니까 의미 있더라고요.
주인이 얼마나 사랑을 원하고, 자기 삶을 귀하게 여기는지, 피해로 인해 손해보고 싶지 않았는지 말이에요. 나의 이 빛나는 시절에서 어떤 '좋음'도 놓치고 싶지 않은지 절절하게 전해졌습니다.
5. 미스터리한 쪽지 세 개
"누가 주인에게 쪽지를 보냈을까?"
관객은 추리소설처럼 누가 쪽지를 썼을지에 집중합니다. 첫번째 두번째 쪽지까지는 주인의 이중적인 모습에 뭐가 진짜 모습인지 다그치는 듯한 내용 같습니다. 도무지 어떤 어조로 말하는지 헷갈립니다.
하지만 마지막 쪽지에서 빵 터뜨립니다. 세번째 쪽지 내용을 듣고 눈물이 주르륵 ㅠㅠ
6. 사과의 수미상관
사과가 나오는 장면은 세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교무실에서 두 장면, 교실에서 한 장면입니다.
수미상관 격은 영화 초반과 후반 교무실에 놓여진 사과를 바라보는 주인의 씬인데요. 영화 속 암시로는 사과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트리거로 나옵니다.
사과를 바라본 후에 주인의 태도가 사뭇 달라집니다. 초반에는 오버액션으로 트라우마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하지만, 후반에는 담담히 사과를 바라봅니다.
사과를 바라보는 주인의 마음이 바뀌었다!
7.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의 친구가 자신의 폰으로 주인을 찍는 장면
우리가 ‘피해’ 앞에서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그게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영화 '벌새'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 은희가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던 그 순간도 떠오릅니다.
누군가를 고요히 바라본다는 것, 판단 없이 응시한다는 것, 그게 이해이자 사랑이 아닐까요?
ps. 윤가은 감독은 숫자 3을 좋아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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