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신호입니다.
몇 년 전 <심리톡톡 나를 만나는 시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글 중에 태어나 얼마 안 되어 아기를 잃은 엄마가 나옵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선생님이 아기 이름이 뭐였냐고 엄마에게 묻습니다.
아기 엄마의 가족들은 그녀를 위해 염려하는 마음에 모두 잊으라고 또 생길거라고 합니다. 한 아기가 하나의 특별한 존재로 존중받는 듯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아기가 있었던 사실을 지우고 그 존재조차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사이, 엄마 속에선 아기가 더 선명하게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기 이름을 묻는 의사의 질문을 읽고 갑자기 울컥하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 울고 나서야 제가 왜 복받쳤는지 이유를 알았습니다. 태중에 잠깐 있었던 아기의 태명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잊고 있었는데 봄이라는 태명이 스치는 순간 상실에 대한 슬픔에 접속할 수 있었어요. 나는 괜찮아졌고 내 아픔은 다른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내가 아기를 보낼 즈음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도 그 생각에 한 몫했습니다.
스무살까지 애지중지 키워놓은 성인의 몸을 가진 실체와 기껏 초음파로밖에 확인할 수 없었던 몇센티밖에 안되던, 가까스로 사람형태를 만들어가던 심장소리 약하던, 내가 만져볼수없었던 아기를
감히 비교할 수는 없었거든요. 저는 잔인한 4월 유가족들의 고통 앞에 내 감정은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애써 위안삼았습니다. 통제하기 어려운 눈물을 다 쏟고 나자 나도 아팠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저와 비슷한 경험의 내담자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 일도 아닌데 눈시울이 뜨거워져 당황했다고 합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흥분해 민망해하고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법한 사례를 들어볼게요.
지유씨(가명)가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녀오느라 상담에 좀 늦었다고 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잠깐 이야기 나눴습니다. 그러던 중 자기가 가족들과 저녁밥을 먹는데 “감기 걸려서 몸이 안 좋아.” 라고 했는데도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는 거예요. 서운하고 화가 났다고 합니다.
지유씨의 반응이 다소 과도해 보였습니다. 상담시간이 끝날 때라 저는 잠시 고민했어요. 중요한 얘기가 나와 길어진다면 흐름을 끊고 다음 상담시간에 더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짧게라도 듣고 마무리할지 고민하다 한 번 물어봅니다.
“뭐 때문에 그렇게 서운했을까요?” 했더니 잠시 생각합니다. 불현듯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 번은 아파서 죽을 뻔했었어요. 심한 감기몸살이었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누워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가 그대로 있으면 죽을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엄마, 아빠를 불렀어요. 그런데도 오지 않으셨어요.” 얘기하며 오열했습니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살펴보지 않으실 수 있지? 내 목숨만큼 중요한 게 있나?’ 하면서 부모님의 행동을 이해도, 용서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도 그 얘기를 들으며 적잖이 놀랐습니다.
아이들도 자신의 건강과 안전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최소한의 보호도 없었으니 얼마나 한스러웠을까요? 상담이 끝날 시간이 지났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억나지 않았던 묻혀 있던 그 일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거예요. 과한 감정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나에게 주는 자극보다 더 센 감정이 물밀듯 밀려오면, 정확한 이유를 몰라도 내 감정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느껴주세요. 그걸 알아차리면 또 사라집니다.
식사 자리에서 보여준 지유님 행동은 혼자 삐쳐서 말없이 밥을 남긴 채 자리를 뜹니다. 알 수 없는 불편한 마음에 회피해 버린 거죠. 십년 전 죽음에 대한 공포감, 부모님의 행동에 대한 분노감이 나도 모르게 가족을 피하게 만들었어요. ‘어차피 나는 혼자야. 아픈 건 스스로 챙긴다.’는 생각도 그쯤부터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이때부터 지유씨는 중요한 결정이어도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고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지유씨처럼 감정의 노예처럼 내가 감정에 끌려가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정황상 10점 만점에 2, 3점만 되어도 될 것 같은 짜증이나 화가 8, 9점으로 확 치솟으며 느껴져 당혹스럽거나 의아할 수 있습니다.
평소보다 과도하게 행동해서 상대방이 낯설어 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 잠깐 멈춥니다. 마음속으로 Stop! 이라고 외쳐도 좋아요.
감정은 나에게 어떤 신호를 보냅니다. 나에게 감정을 알아차리고 봐달라고요. 보통 이런 상황에서 자기 비하, 비난, 자책으로 갈 수 있거든요. 습관적으로 자기를 탓하는 말을 하기 전에 그만! 이라고 멈추고요. 자신을 채찍질하며 더한 상처를 내기보다 셀프로 쓰담쓰담하는 거죠.
‘울 상황이 아닌데 눈물이 왜 이렇게 나오지?’, 내가 원래 이렇게 무례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하고 스스로 물어보면 됩니다.
이유를 찾다보면 타당한 근거가 나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이유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기억나진 않지만 저 무의식 깊은 곳에서 상처가 건드려지거나 자기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라도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하나의 가정은 그동안 감정을 많이 참았다, 억압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감정이 널뛰고 기복이 심해질수록 자기 편을 들어주세요. 내가 먼저 내 편이 되고 나면 그 다음 행동은 현명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감정을 더 잘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공감이 잘 되는 사람은 매번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다른 이에게 그걸 요구하지 않습니다.
평소 자기와 자주 대화하고 어떤 욕구와 충동도 편들어주면 타인이 내 편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집니다.
질문 1. 최근 강한 감정을 느꼈을 때는 언제였나요? 어떤 상황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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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감정이 자극되었던 건 어떤 것 때문인가요? 누군가의 말, 행동, 태도일 수도 있고 음악이나 글에서 자극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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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어떤 감정이 느껴졌나요?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많이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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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만약 내가 타인이라면, 내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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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내가 듣고 싶은 그 말을 자신에게 하는 건 어떨까요? 여기에 써보세요. 원하는 행동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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