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맘충’이라는 신조어를 처음 알았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단어가 있다는 것 자체와 엄마들이 벌레처럼 보인다는 것에 대해서요. 저는 억울합니다. 화가 납니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성별에 따른 경험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차이는 출생 이전인 원점부터 시작합니다.
김지영씨가 태어나기 전부터 1970~80년대에는 여아라는 이유로 태어나지 못한 생명들이 많았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태어날 기회조차 박탈당합니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출생시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신생아의 몸으로 기억되어 ‘자기’가 아닌 아들이 되지 못 한 ‘딸’로 살게 합니다. 중요한 걸 달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어나면서부터 수치심을 느끼고요. 남성과 여성은 그 출발점이 다릅니다. 상처를 입고 ‘0도’에서 시작한 여성의 삶과 환영을 받으며 각도 ‘3도’ 즈음에서 시작한 남성의 삶은 극복할 수도 없는 차이로 벌어집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걸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 여자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처 경험입니다. 시작부터 환영 받지 못 하는 삶은 치명적입니다. 내 존재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거절당하는 것이에요. 부모는 ‘여성’인 나를 있는 그대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아기가 세상에 처음 던져지는 그 순간에 성별을 기준으로 다시 한 번 내쳐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정신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아주 운 좋게 살아남았을 경우는 또 어떨까요? 심리치료사로서 나는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이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들었습니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죽으라고 방구석에 놓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3일 동안 목욕시키지 않았다, 부모는 실망해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등등이요. 태어나면서부터 성별에 따라 부모에게 거절당하는 경험을 한 여성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낮습니다. ‘자기’로 살기 보다는 아들이 되지 못한 ‘딸’로 살기 바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어머니께 짐이 되거나 신세 지지 않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귀한 ‘생명’이자 ‘존재’로서 감각하기 보다는 태어나게 해준 ‘조건’으로 ‘낳고 키워준 대가를 보상하는 도구’로서 딸의 역할만 남아 있게 됩니다. 낳지 못한 아들 대신 아들 노릇을 하는 거죠.
내가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보다 부모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가 우선입니다. 그녀들은 다른 자녀들에 비해 비교적 자기 앞가림을 일찍 한다든가, 집안에서 경제적, 정신적으로 기둥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여성들 중 자기를 잘 이해하고 ‘나’를 찾고, 부모에게 적절하게 분리, 독립해서 잘 살아가는 여성들도 물론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있는 이유를 깨닫고, 내가 왜 이렇게 열심인지, 자꾸 쉽게 지치는지를 알아차리는 데까지는 보통 성인기까지 몇 십 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처 경험은 보통 여성들은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인 20대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출생시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라면서 이중고를 겪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끊임없는 성차별, 이중 메시지, 이중구속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차별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는 눈빛에서부터 위협하는 말투, 압박하는 분위기, 같은 비언어적인 경험입니다. 타인에게 이해시키려 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상징물, 은유적 표현, 김치녀, 된장녀, 맘충이라는 신조어, 편가르식 언론보도 또한 무의식적인 차별을 더 공고히 합니다.
여성에 대한 정신적, 이중적 잣대는 가식을 만들어 더욱 자기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여성들에게 주는 사회의 이중 메시지는 끝도 없거든요. 이중 메시지는 여성 스스로를 더욱 구속시킵니다. 이중 구속입니다. 전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해 그러니 한 번 해봐 라고 말하는 거죠. “여자도 일을 해야지, 하지만 회사가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야.” “육아휴직이 있는데 왜 안 써. 그런데 우리 직장에서는 여태껏 휴직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이런 식입니다. 요즘 20, 30대 여성들은 남자 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고 나면, 여자 팔자는 결혼을 잘 해야 하며,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직업)이 최고라고 합니다.
결론은 공부는 공부대로, 일을 일대로 하면서 엄마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허용하는 기준은 ‘남’들보다는 잘 해야 하지만, ‘남성’들보단 못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고나 최다는 남성들 차지, 중간은 여성들 자리가 되는 구조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우리는 분명 여성인데 언제부터인가 남성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중 잣대는 처음에는 부모, 선생님, 사회가 암묵적으로 혹은 드러내놓고 표현하던 것들이 여성들 안에 내재되어 우리도 모르게 그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했던 쓸데없는 자책과 후회들로 안쓰럽습니다. 내가 여성으로서 처신이 어땠는지에 대해 수없이 복기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제일 흔하고 눈에 띄는 걸로는 신체 이미지입니다.
여성들이 건강한 몸에 자연스러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뚱뚱하고 못 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남성이, 사회가 주는 필터에 걸려 거울도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합니다. 성희롱이나 추행을 당할 경우 내가 뭘 실수하거나 잘못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 소설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82년생 김지영씨는 한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의 경험을 대변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뿌리 깊고 무의식적이며 일반화되어 있는 성차별 경험들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소설을 읽고 감정이 정화될 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는데 너도 그랬어? 하며 주위 여성들과 공감하게 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하는 안도감과 함께 건강한 분노감을 느낍니다. 그 때 내가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게 당연했구나 부당한 게 맞았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나만 혼자 꽁꽁 끌어안고 아파하기 보다는 그 상처를 직면하고 표현하고 같은 여성들끼리 연대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동안 말하면 손해 보고 나만 이상한 여자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숨겨왔던 것들도 이제는 솔직하게 공개하고 말하자는 거예요. 변화의 싹을 틔워주어서 김지영씨에게, 작가 조남주님에게 고맙습니다.
여성에 대한 평가절하, 무시, 홀대, 혐오라는 심각한 수준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직면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보면 불편하고, 알면 머리 아프고, 실천하려 하면 더욱 더 막막하기 때문이죠. 그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요. 갈 길이 먼 걸 알기에 한 발 내딛기 어렵잖아요. 여성들에게 이 소설은 알고 있으나 다시 확인한 세계입니다. 실제로 소설을 읽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남성들에겐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그녀들만의 세계입니다. 남성들은 반발합니다. 무의식 속에만 있던 것을 왜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하느냐는 것이죠. 실제 강남역 추모 현장에서 지나가는 남성이 왜 굳이 논란거리로 만드느냐고 했고요. 남성 지배의 역사이므로, 마치 군주에게 불복종하는 하녀들을 보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강남역 10번 출구 포스트잇>에 쓰인 내용입니다.‘남자가 사는 한국과 여자가 사는 한국은 다른 나라인 것 같다. 의도적인 무시는 동조와 마찬가지다. 한국 남자는 눈을 뜨고 현실을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여태 당신들이 살았던 한국은 반쪽짜리다.’ 남성의 시선으로 이중적인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나를 보며 다짐했습니다.
첫째, 민감하게 알아차리자.
성차별과 이중 메시지는 어찌나 정교한지 웬만해선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마치 ‘트루먼 쇼’에서 짐 캐리가 자신이 드라마 세트에 갇혀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처럼 말이에요. 남성 여성 모두 어찌 보면 직면이 시작이고, 그게 가장 어려울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사회가 원하는 여성으로서의 나와 내가 원하는 여성으로서의 나는 다릅니다. 따라서 이 차이를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표현하고 연대하자.
경험의 차이를 공론화하는 것이 연대의 시작입니다. 나도 그랬어. 너도 그랬니? 처음엔 이게 전부입니다. 쉽게 생각하자는 거예요.
우리는 여성들끼리 힘을 합치는 방법을 배우지 못 했습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꽁꽁 숨겨놓고 혼자 그 많은 상처들을 삭히고 곪게 만들지 않았나요? 내가 우리가 누군가에게 보낸 시선, 행동이 성차별인지, 역차별인지에 대해서요. 예를 들면 여성들이 많은 직장에서 남성 한 명만 있으면 험한 일은 당연히 그의 차지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저자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가 말한 것처럼 이것은 그저 사소한 일이지만, 때로는 사소한 일이 가장 아픈 법이니까요.
질문 1. 여성으로 받았던 차별적인 시선, 성추행이나 폭력의 경험에 대해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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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성차별을 경험했을 때 어떤 감정, 생각이 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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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성차별을 당했을 경우, 나는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반응을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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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3번의 반응을 한 뒤,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나 생각을 떠올려보세요. 자책하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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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내가 여성으로서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에 대해 변화시키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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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 여성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필요하다면 어떻게 연대하는 게 좋을까요?기존의 모임, 연대되어 있는 조직을 찾아보거나 새롭게 만든다면 어떤 게 필요할지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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