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불신과 의심이 드는 분들께.
(미연씨는 가명이며 사례공개에 대한 동의를 구했음을 밝힙니다.)
“선생님 눈빛이 째려보는 것 같아요.”
“뭐라고요? 다시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상담이 끝나기 직전 들은 말에 내 귀를 의심했어요.
상담하면서 그런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눈빛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에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 눈빛에 누가 떠오르냐고 물으니 할머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저는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주로 주양육자)의 시선으로 응시, 조각된다는 이승욱 선생님의 ‘포기하는 용기’에 나왔던 문장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바쁘신 엄마 대신 할머니 보호 아래 어떻게 자랐는지 물어보니 워낙 어릴 때라 떠오른 게 별로 없었죠. 일관성이 별로 없는 돌봄, 불안정 애착관계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강박적으로 청소하시는 할머니께 지저분하다, 더럽히지 말라고 혼나면서 자랐다고 했어요. 저는 미연씨는 영아기 양육자와의 관계에서부터 가장 중요한 신뢰감을 경험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했고요.
처음 미연씨가 상담센터에 온 이유는 직장에서의 불편감 때문이었습니다.
직장 동료들이 자꾸 나에 대해 뒷담하고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고 느꼈습니다. 친구 카톡 프로필에 어떤 대화명만 올라와도 나에 대해 쓴 거라고 의심됩니다. 친구가 자기랑 싸워서 불편하니까 그런 글을 올린 거라고 짐작만 합니다. 동료나 친구에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중요한 건 사실 확인과 질문입니다.
직장생활에서는 일일이 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부장님, 지금 그거 저한테 하는 말씀이세요?”, 직장 동료에게 “그거 지금 내 얘기야?” 물어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친하고 가까운 사이에서는 가능합니다. 카톡 대화명 바꾼 친구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대화명은 무슨 뜻이야?” 이렇게 열린 질문이나 안부가 궁금하다는 뜻으로 물으면 답을 들을 수 있을 수 있어요. 대화하면서 친구에게 느껴졌던 오해가 풀릴 수 있습니다.
제가 “물어보면 어떻게 될까요?” 했더니 동료나 친구가 얘기할 법한 답을 해주었죠. 직장에서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관계’에 초점을 두다 보니 더 예민해지고 불편감이 가중되었습니다. 여자 동료 둘이 복도에서 있으면 무슨 얘기하는지 신경 쓰이고 결국엔 내 뒷담화한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요.
그럴 땐 몸이 긴장되어 힘이 들어가고 귀는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 부풀어 커지는 것만 같습니다.
의도적으로 들숨, 날숨에 집중하고 몸에 힘을 빼고 사실, 상황 그 자체로 보는 게 좋습니다. 보이는 것과 판단하는 것의 차이가 크거든요. 사실과 생각, 상황과 의견의 다른 점을 비교해보면 됩니다. 거리를 두어 제 삼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듯 나를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돼요. 그러면 주관적인 주인공(참여자)에서 객관적인 관객(관찰자)의 입장으로 바뀝니다.
내 안에서는 그런 작업들이 좋고요. 내면 작업으로도 안정되지 않고 실제 확인하고 싶다면, 가서 물어볼 수 있지요. 이럴 때 정색하며 “내 얘기했지?” 라든가 “남 뒷담 좀 그만해.” 라는 식의 헛다리짚는 이야기를 하면 실제로 왕따가 될 수 있습니다. 심신 상태를 자각한 다음에는 상황에 맞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해?”, “무슨 얘기하는지 궁금해.” 아니면 가서 조용히 듣다가 내가 다른 주제에 대해 묻거나 이야기의 방향을 돌릴 수 있습니다. 실제 확인은 상담 후반부에 꼭 필요할 때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적절한 자기표현과 의사를 표시하지 못 하는 중에 확인하려 들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미연씨 이야기의 공통된 주제는 ‘I'm not O.K. You're not O.K.’ 였어요.
교류분석이론을 만든 에릭 번이 관계를 맺어가는 인생태도를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그 중 하나의 유형입니다. 자신과 타인(세상)을 부정하는 편이며 삶이 무가치하고 느껴지고 낙관적인지 않은 태도로 생활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경험이 나와 타인(주양육자)을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 하고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신뢰하면 실망하니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덜 상처 받고 안전하니까요. 경험을 통해 얻은 생존전략입니다. 그러니 내가 부정적인 각본과 해석을 갖고 있는 건 내 탓만은 아닙니다.
미연씨의 현실감각도 확인해 보았습니다.
신경증과 정신증을 구분하는 기준은 현실감각입니다. 우리 앞에 물이 있을 때. 물이 반밖에 없네, 반이나 있네 하는 지각 차이는 누구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물이 아니라 다른 것 예를 들면 주스나 콜라로 지각하는 것은 심한 왜곡입니다. 미연씨 경우 현실감각은 있지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자꾸 자신의 각본대로만 다른 사람의 반응, 의도를 예상했어요.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자주 사용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방어기제 중 투사를 씁니다.
가장 힘든 사람의 가장 손쉬운 방어기제로 볼 수 있습니다.
제일 많이 쓰이는 예는 술 마시고 길 걷다 마주 오는 취객 무리들이 째려보았다는 이유로 싸워 경찰서에 가는 경우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과 불쾌감을 던져서 상대방이 먼저 의도적으로 나를 공격했다고 느끼는 거예요.
방어기제는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입니다. 투사는 내 안에 좋지 않은 것, 소화하기 힘든 것을 다른 사람이라는 스크린에 비추고 쏴버립니다. 불편한 것을 상대방에게 던지면 그것은 더 이상 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것이 되어 투사하는 동안만큼은 편안해집니다.
그런 투사가 있을 때마다 저는 일단 다른 사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돌려보라고 제안했어요. 일례로 ‘저 애는 나를 싫어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반대로 ‘내가 저 애를 싫어하나?’ 하고 느껴보는 겁니다. 내 안에 먼저 불편감, 싫다는 느낌이 올라왔기 때문에 자꾸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어떤 사람이 싫어진 후부터 매직아이처럼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미연씨가 솔직하게 이야기해줬죠. 그 친구는 이래서 마음에 들지 않고, 그 동료는 어떤 이유로 싫은지 말이에요.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요? 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상담에서 제가 강조했던 건 주어를 ‘나’로 바꾸라는 것이었어요. 그가 날 싫어해, 그녀가 내 욕을 해. 라는 문장에서 주어를 나로 스위치하자고요. 내가 그를 싫어하고 내가 말은 못 해도 속으로 그녀를 욕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내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질투, 적개심, 증오감을 알아차리는 게 먼저고 그게 더 중요합니다.
미연씨가 신경 쓰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고 그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원시 시대부터 무리(관계와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생존에 직결되었습니다.
미연씨의 경우 교회가 중요한 집단이었어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미연씨가 어머니가 이단에 빠져 혼자 교회에서 예배를 보러 갔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그 눈빛이 잊히지 않았죠. 안 그래도 사람들 반응에 민감한 미연씨가 그들의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눈빛에 얼마나 실망하고 좌절했을까요?
‘그래도 교회 사람들은 날 이해해주겠지, 우리 가족에 대해 안 좋게 보진 않을거야.’ 라 믿고 일부러 예배에 갔는데 어머니의 친구 분들조차 미연씨를 피하려는 태도에 상처 받았습니다. 의지하던 곳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교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의심이 퍼져갔을 거예요. 저는 그 상황에서도 미연씨가 할머니의 눈빛이 연상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기 때의 미연씨는 할머니에게 못 미더운 느낌, 자꾸 집안을 어지럽힌다는 못마땅한 눈빛을 쭉 받아왔을 거니까요.
이쯤에서 저는 어떠냐고요?
저도 미연씨와 똑같죠. 누구나 이런 마음은 갖고 있답니다.
어떤 선생님은 집단상담을 시작할 때 그러셨어요. 누군가 죽이고 싶은 사람은 한 명씩 있지 않냐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닌데.’ 하며 거부감부터 들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더듬어보니 과거에 그런 충동이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상담하셨던 선생님도 교도소에 계신 분들 보면 아주 평범하며 몇 초의 찰나 충동적으로 한 행동 때문에 거기 계신 거라고요. ‘서늘한 신호’의 개빈 드 베커는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고 설파했어요.
누구나 좋지 않은 느낌,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수 있어요.
한 순간에 알아차리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나쁘게 느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의미를 부여해 무조건 억누르려고 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짐을 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어떤 감정이든 이유가 있어요. 저는 미연씨가 지금까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돼요. 감정과 생각을 없는 것처럼 피하지 말고요. 미연씨가 키우는 고양이처럼 마주 하고 지켜보면 어느새 내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커질 거예요.
멀리 있지만 응원합니다!
질문 1. 이 글을 읽고 싫어하는 누군가가 떠오르나요? 있다면 누구인지 이유는 무엇인지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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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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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다른 사람을 못 믿겠거나 의심이 든다면 언제부터였을까요? 계기가 있다면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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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싫어하는 사람을 상상해본 후 다른 누군가가 떠오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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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싫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뭘까요? 나이, 성별, 인종, 신체적인 특징, 말투, 성격, 습관, 행동 등 다양할 수 있어요. 내가 일관되게 꺼려하는 점을 적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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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 5번에 적은 특성이 내 안에 있는지 살펴보세요. 혹은 자신의 그런 면이 두드러지게 보일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회상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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