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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면 안 되나요?

건강한 자기애의 발달

by 투명서재

* 한 사람의 상담사례가 아닙니다. 상담 외에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편집,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요즘 가장 핫한 건 뭘까요?

제 생각으론 유투브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은 기발한 동영상을 올려 이목을 끕니다.

유투브는 자신의 모습이나 목소리를 담거나 자기가 보여줄 대상을 영상으로 찍거나 타인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현재 유투브를 대체할 만한 도구는 없습니다. 그것만큼 자기를 과시, 타인과 연결, 정보가 공유될만한 매체가 없다고 보입니다. 좋은 콘텐츠가 있어도 확산이 중요한데 유투브가 확산의 중심에 있는 거죠.

유투브는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가 비춰보는 현대판 호수가 되었습니다. 자기애적 사회에 화두입니다.

서점가 신간들의 제목도 직접적이든 은유적이든 '나'가 들어있어요. 바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소확행이 유행하는 이유도 자기애적인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상담했던 한 내담자는 고급음식점, 호텔 레스토랑을 다니며 SNS에 사진을 올리고 음식 평이나 식당의 분위기를 전하곤 했어요. 가장 예쁘게 나온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요. '자기애적 사회에 관하여' 의 크리스틴 돔벡은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르시시스트 성향'이라고 너무 쉽게 낙인찍는다. 특히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에 대해 그런 경향을 보인다."며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이상향을 설정해둔 뒤, 그에 못 미치고 내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않는 사람을 모두 '나르시시스트'라고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어요.


한쪽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야단이고 다른 한쪽은 자기애적인 부류를 향해 비난하는 형국입니다. 모두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듯한 분위기에서 악플이나 질투어린 답글로 서로를 자기애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모양새처럼 보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자기애가 어느 정도는 있죠. 자기애가 없다면 생존할 수 없겠죠? 우리는 '나' 라고 생각되는 신체, 정신, 이미지에 집착하며 자신을 제일 우선시합니다. 자기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을 거예요. 다치거나 아픈 몸을 돌보고, 조금이라도 배고프면 음식을 챙겨먹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발달시켰습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보다 과장된 이미지의 자기만 인정하는 '자기애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명품 옷을 입은 내담자를 본 첫 인상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어려운 만큼 방어가 세고 자존감이 낮은 편이었습니다.


그는 명품 브랜드 매장의 직원이었어요. 영어 애칭이 있는 그는 만나는 고객마다 미소로 대하고요. 가끔 열리는 명품 바자회에서 피같은 월급의 상당한 액수를 들여 자사 브랜드 가방이나 옷을 구입하곤 합니다. 근무시간에는 제 때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전립선 쪽에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지만 원래대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사회경제적인 수준이 높은 사람들만 상대하다 보니 자꾸 사람을 보는 눈이 높아짐을 느낍니다. 고객들이 자신을 무시, 하대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늘 같은 고객에게 높은 대우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기본적인 존중만을 바랍니다. 돈이나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고객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나 욕지기가 나오지만요. 나도 모르게 고객이 보는 잣대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매장 밖 커피숍이나 음식점에서 나도 모르게 불평, 불만을 하고요. 어떤 때는 고객에게 당한대로 갑질하는 자기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VIP에게 당하는 욕설이나 성추행은 이제 그리 충격적이지도 않고요.


이렇게 몇 년 견디다 오게 된 상담실에서 그는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내담자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뭔가 필요한 게 있어 요구하면 돈이 어디있냐, 우리 집에는 먹고 죽을 돈도 없다는 말이요. 은연 중에 돈이 최고라는 신념이 생겼습니다. 돈이 있어야 편하고, 사람 대접을 받는 경험이 몸에 새겨졌습니다. 돈 없이 어떻게 존중 받는지 체험해본 적이 별로 없었어요.


내담자는 자기애 발달 과정에 상처가 있었어요.

어머니는 결혼 전 성폭행을 당한 경험으로 수치심, 죄책감이 많았습니다.

어머니의 우울증과 수치심은 내담자가 자기애를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받아야 할 공감과 자기이상화를 하기 어렵게 만들었어요. 예민한 청소년기에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웠던 것도 긍정적인 정체성을 만드는 데 영향이 있었고요. 내담자는 유행하는 브랜드 운동화를 사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반복하는 '돈 없어 안 된다'는 말을 다시 확인해야했어요. 내담자에게는 '돈'과 '브랜드'가 자기를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습니다. 그것들이 없는 자신은 텅 빈 것처럼 느껴졌어요.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닉스 청바지를 입고 싶어서 짝퉁을 사고, 브랜드 지갑을 중고로 사기도 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많은 친구들이 입는 옷이나 운동화를 갖고 있지 않으면 나만 소외되는 것처럼 느껴지죠. 이러다 따돌림을 당하는 게 아닌가 두렵기도 하고요. 자기도 그 친구들 사이에 있어야 인정 받을 수 있고 또래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거든요. 아이들이 다 갖고 있는 그것이 없으면 왠지 자신도 투명인간처럼 없어지는 것 같죠.
내담자는 맨 얼굴로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후질근한 모습으로 나가는 건 절대 못 한다고 했어요. 내가 명품으로 치장하지 않으면 남들이 나만 봐줄까? 그러면 저 사람들이 지금처럼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줄까? 말이죠.


더 깊게 들어가면, 수치심이라는 핵심감정은 어머니로부터 온 것입니다. 어떤 내담자들의 수치심에 대한 근원적인 원인은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났거나 학대, 방임 등 뿌리 깊은 상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을 공유합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상실의 슬픔을 겪고 있을 때 그림검사에서 집을 온통 비가 와서 빗물이 새는 걸로 표현했습니다. 엄마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부모의 정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닮죠.


그렇다면 나를 내세울 수 있는 학력, 재력, 직위, 등 외적인 조건 없이 어떻게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와다 히데키가 하인즈 코헛의 자기심리학을 쉽게 풀어 쓴 '잠시만 기대겠습니다'에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코헛은 자신이 자신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상대'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자신이기 위해서 필요한 상대. 이 '상대'를 코헛은 '자기대상'이라 불렀다.'>


코헛은 건강한 자기의 탄생을 위해 자기대상(보통 주양육자)이 떠맡게 되는 두 가지 숙제가 있어요.

첫째는 아이의 과대주의, 과시주의 욕구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칭찬 받고자 하는 대상을 칭찬하는 것보다 인정 받으려는 욕구 자체를 인정해주는 거예요.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에서 봤던 장면입니다. 한 아이가 엄마를 보자마자 자신이 수업 시간에 만든 작품을 보여줍니다. 엄마는 그것을 보자마자 "응, 이건 쓰레기니까 여기에 버리고 가자" 하며 선생님께 주고 나옵니다. 그 아이의 표정은 뭔가 아쉬워하며 당황스러워했어요. 이럴 때 건강한 자기애를 위해서는 예를 들면 "엄마 만나자마자 이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구나. 정성스럽게 만들었네." 하는 거예요. 과대포장된 과자처럼 아이에게 허풍이나 허황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잘 하고 싶은 마음, 부모나 중요한 사람에게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욕구를 알아주는 거예요.


둘째는 부모(주양육자)를 이상화시키는 아이의 시도를 수용하고요. 이상화된 대상으로서의 아이를 '과도하게' 실망시키지 않으며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 부모를 세상에서 가장 크고 좋은 존재로 인식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의 글과 말 속에는 부모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것들이 많습니다.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아빠는 세계에서 가장 멋지고 힘센 남자로 여깁니다. 그런 존재를 통해 나온 자기이기 때문에 자신 또한 '별 중의 별', '꽃 중의 꽃'처럼 최고 존중 받아야할 귀한 존재로 연결시킵니다. 정혜자 선생님의 '놀이의 언어'에 나오는 유아기 상징적인 말은 자신의 존재감을 발달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정색하며 "엄마는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아니야.", "아빠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야." 하며 산통을 깰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과도하게'를 강조한 이유는 아이가 생각하는 이상과 좀 멀어도 괜찮기 때문이에요. 꼭 부모가 수퍼맨이나 왕비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이상화된 부모 이미지에 가깝게 일관된 언행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는 거예요. 아이가 한 약속을 지켜서 신뢰감을 주고 아이가 바라는 모습대로 외모를 꾸미고 허용 가능한 부탁이면 들어주는 거죠. 저는 치마를 입기 싫어도 아이 어릴 때 엄마가 치마를 입길 원하면 종종 따라주었습니다.


스스로를 관찰하면 어떤가요?

자기애가 좀 부족한 편인가요? 아니면 자기애가 넘쳐 다른 사람의 반응에 자주 실망하게 되나요?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수용하는 것,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남에게 과대포장해서 보여주지 않는 것

이것이 자기애의 첫 걸음입니다.




질문 1. 어린 시절 부모가 나에게 해주었던 인정, 칭찬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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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칭찬을 듣고 들었던 기분이나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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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했던 시도, 전략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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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3번의 답변에 써있는 행동을 지금도 하고 있다면 어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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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내가 그렇게 할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예상한 반응이었을 경우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을 경우 모두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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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 나를 잘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성별, 사회경적인 지위, 외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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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7. 6번의 답변이 모두 없다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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