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한 사람을 위한 가벼운 전환!
중학교 때였을까요?
장소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학급 모두 하루를 보내고 오는 시간이었어요.
밤에 불을 꺼놓고 친구들끼리 진실게임을 했습니다. 친구 한 명이 저한테 “너는 우유부단해.”라고 합니다. 그 때 저는 어휘력이 부족했는지 ‘우유를 부단히 마시라’는 말인 줄 알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어요. 나중에 사전을 찾고 어물어물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성이 없다는 뜻임을 알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내담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결정과 실천입니다.
첫 면담에서부터 자신은 ‘결정장애자’라며 자가진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되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들이 이어 예상되니 결정하기 꽤 어렵죠? 어느 내담자는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자신의 모습을 한심해 하기도 안쓰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요. 타인의 욕구는 기가 막히게 잘 알지만, 내 욕구가 뭔지 모르겠답니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yes or no가 딱 반반이에요.’ 하며 난감해하던 내담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애매모호함의 극치를 어떻게 견딜까요?
이럴 때 저는 쉽게 말해 메뉴부터 직접 고르라고 합니다. 사소한 것부터 자기가 원하는 데로 선택해보게 합니다. 중국집에 갈 경우 짜장, 짬뽕부터 정하라고 합니다. 중요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덜한 것부터요. 작은 것부터 결정하기 시작하면 큰 것도 쉬워집니다. 설령 짬뽕 먹고 배탈이 나도 선택에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게 없습니다. 뒷감당이 어렵거나 책임질 능력이나 자신감이 없기에 망설이게 되는 거죠. 사실 그럴 만한 내면의 힘이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자아강도,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게 우선이고요.
물론 중요한 것을 결정하는 건 언제든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이든 장단점이 있고 그것이 내 인생을 확 바꿔버리는 결정은 드뭅니다. 선택이 힘들고 이미 고른 선택지를 매번 후회하는 내담자와 상담을 종결하는 날이었어요. 유감스럽게도 화재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는 순간적인 판단이 생사를 결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의 선택이 생사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다소 중요할 수는 있어도 도박판의 마지막 패처럼 인생 뒤집기를 할 만한 결정적인 것은 별로 없거든요. 설사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내가 그 때 그 사람과 결혼했어야 했구나.’, ‘내가 그 직장에 들어갔다면 인생이 달라졌겠다.’라고 생각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죠. 하지만 그걸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아닌 것도 아니고요. 다른 것을 선택해서 잃은 것뿐만 아니라 얻은 것도 있어요. 이미 지나간 길이라면, 잃은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얻은 것을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다른 시각으로 봐야 힘을 얻을 수 있지, 이미 지나간 것을 아무리 붙잡고 집착해봐야 소진만 됩니다.
가성비와 효용을 따지는 무조건 지름길로 가려는 우리의 습성을 조금 버리면요.
굽이굽이 인생길, 꽃 보고 열매 따먹고 다시 돌아 나오기도 하는 곡선 같은 산책길처럼. 그런 선택을 하면 좋겠습니다. 이게 안 되면 다른 걸 하지.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도 가봐야지. 마음을 가볍게 먹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계산하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價性比)에 마음 심(心)을 더한 것으로 가성비는 물론이고 심리적인 만족감까지 중시하는 소비 형태를 일컫는다. 가성비의 경우 가격이 싼 것을 고르는 경우가 많지만 가심비의 경우 조금 비싸더라도 자신을 위한 것을 구매한다.(시사상식사전, 박문각)’ 가심비의 기준은 ‘나’의 만족입니다. 타인이 보기에, 사회적으로 좀 모양 빠지는 결정이어도요. 소확행의 붐도 한 몫 했고요.
박찬욱 영화감독의 가훈은 ‘아님 말고’ 였어요. 짐작하건데, 그 의미는 뭔가를 할 때는 최선을 다하고 그게 안 되면, 깨끗이 포기하는 게 지혜라는 겁니다. 오죽하면 기도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달라고 했겠어요?
선택에 따른 불만과 후회가 항상 따르는 사람들은 이 선택을 해도 내 삶에 큰 영향은 없다는 걸 염두해 두고 결정하세요. ‘혼자 잘 해주고 상처받지 마라.’에서 유은정 작가가 제안한 것처럼 뽑기를 해봐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제비뽑기라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요. 종이에 쓴 선택지를 보고 드는 처음의 직관적인 느낌이 답일 수 있거든요. 우리는 좌뇌 영역인 논리, 이성, 합리성에 몰두하여 결정하는 일에 상대적으로 우뇌를 쓰지 않거든요. 장단점을 써놓고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점수 매기느라 미처 느끼지 못한 나의 직관(집단 무의식이나 개인무의식)을 활용해보세요.
핵심은 너무 무겁게 아무런 손해를 보려 하지 않고 계산적으로만 선택하는 것도 욕심이라는 것이지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 과정에 의미를 두면 그리 억울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금은 쓰이지 않을지라도 후에 돌이켜보면 나에게 피가, 살이 되는 경험이 많으니까요.
질문 1. 결정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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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어떤 것을 결정해야 하나요? 가장 고려하는 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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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선택을 마친 후 후회하는 편인가요?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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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선택의 장단점을 써보세요. 내 가치관, 우선순위, 중요성, 시급성을 따져서 점수로 매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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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선택지에 단어를 써놓고 직관적인 느낌이 어떤지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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