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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Sep 24. 2018

3-3.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것 같아요.

타인에게 불신과 의심이 드는 분들께.

상담사례에 나오는 아래 이름은 가명이며 개인을 알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넣지 않았습니다.

글 공개에 동의해준 내담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 여기 나오는 사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똑같이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본인의 상황에 맞게 도움 받고 싶은 분들은 가까운 심리상담센터를 이용하세요 ^^




미연씨는 신경 쓰는 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고 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원시 시대부터 무리(관계와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생존에 직결되었습니다. 그러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아들러의 감정수업’에 나온 것처럼 발표불안으로도 연결됩니다. 언뜻 상관없어 보이지만 발표를 못해서 사회에서 소외될까봐 걱정되는 겁니다. 또한 직장에서의 배척은 밥벌이와 관련 있으니 민감한 게 당연합니다.





미연씨의 경우 교회가 중요한 집단이었어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미연씨의 어머니가 이단 교에 빠져 미연씨 혼자 교회에서 예배를 보러 갔었어요. 그 때도 다른 사람들의 그 눈빛이 잊히지 않았죠. 안 그래도 사람들 반응에 민감한 미연씨가 그들의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눈빛에 얼마나 실망하고 좌절했을까요? ‘그래도 교회 사람들은 날 이해해주겠지, 우리 가족에 대해 안 좋게 보진 않을거야.’ 라 믿고 일부러 예배에 갔는데 어머니의 친구 분들조차 미연씨를 피하려는 태도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의지하던 곳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교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의심이 퍼져갔을 거예요. 저는 그 상황에서도 미연씨가 할머니의 눈빛이 연상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기 때의 미연씨는 할머니에게 못 미더운 느낌, 자꾸 집안을 어지럽힌다는 못마땅한 눈빛을 쭉 받아왔을 거니까요.





상담심리학에 대상관계이론이 있습니다.

대상관계이론이 궁금하다면,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권경인 교수님께 이론에 대해 쉽게 풀이하신 책을 참고해도 좋습니다. 유아 초기에 안정적인 애착이 아니었어도 성인이 된 후 안정애착을 맺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연인이나 배우자를 통해 안정감, 신뢰감을 회복하거든요. 책을 읽고 안다는 것이 바로 실천으로 연결되진 않겠지만 자신을 이해하는 팁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대상관계이론은 풀이하자면, 아기가 엄마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또 그 치열한 신뢰와 불신의 전쟁에서 어떤 쪽이 승리하는지를 보여주는 이론입니다.


아기는 주양육자가 돌봐주는 경험을 통해 주양육자에 대한 애정과 공격성(나중에 증오와 적개심으로 발달할 수 있는)을 여러 번 느끼는데 처음에는 한 번에 하나씩 경험되지만, 경험들이 점차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집니다. 아기의 욕구가 충족될 때는 괜찮다가 불만족일 때는 화가 나는 거죠. 엄마의 젖꼭지를 일부러 무는 아기들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젖이 잘 나올 때는 사랑으로 느껴지다가 젖이 잘 나오지 않아 날 미워한다고 느끼는 거에요. 그리고 공격하고 싶을 때는 확 깨물어버리는 거예요. 일관되고 여러 차례 반복된 느낌과 경험들이 사랑과 미움 사이에 줄다리기를 합니다. 이 시소에 정확한 균형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1프로라도 사랑이 좀 더 많고 무거우면 믿음으로 가는 거고, 1프로라도 미움 쪽에 가까우면 불신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 미연씨는 사랑과 미움의 전쟁에서 화해하고 그것들을 통합해 본 경험이 다소 어려웠을 거예요.


한 사람이 미우면 전부 미운 것만 생각나고요. 통합이란 말이 어려워서 그런지 한 사람 안에 있는 여러 다양한 면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설사 한 번의 나쁜 행동을 나에게 했더라도 그 사람의 나에 대한 애정과 좋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남편과 싸우다가도 남편이 나에게 잘 해줬던 행동, 친밀했던 시기에 느꼈던 안정감, 든든함을 내 안에서 회복하는 거랍니다. 부부갈등이 있다면 신혼시절 얼마나 알콩달콩 서로를 사랑했는지 회상해보거나 청소년기의 엄마들은 자녀의 아기 때 사진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저는 어떠냐고요?

저도 미연씨와 똑같죠. 누구나 이런 마음은 갖고 있답니다.

저만 고고하고 잘난 척, 비슷하지 않은 것처럼 뒷짐 지고 있는 건 아니고요.

어떤 선생님은 집단상담을 시작할 때 그러셨어요. 누군가 죽이고 싶은 사람은 한 명씩 있지 않냐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닌데.’ 하며 거부감부터 들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더듬어보니 과거에 그런 충동이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상담하셨던 선생님도 교도소에 계신 분들 보면 아주 평범하며 몇 초의 찰나 충동적으로 한 행동 때문에 거기 계신 거라고요. ‘서늘한 신호’의 개빈 드 베커 작가는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고 설파했어요.




누구나 좋지 않은 느낌,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수 있어요.

한 순간에 알아차리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미연씨는 다른 사람에게 싫은 감정이 올라왔던 때에 그것을 자각하기 보다 저 사람이 날 싫어하지 않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은 들키지 않고 느끼지 않을 수 있었어요.

미연씨의 눈과 귀가 민감한 안테나처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가있기 때문이에요.


나쁘게 느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의미를 부여해 무조건 억누르려고 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짐을 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어떤 감정이든 이유가 있어요. 저는 미연씨가 지금까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돼요. 감정과 생각을 없는 것처럼 피하지 말고요. 미연씨가 키우는 고양이처럼 마주 하고 지켜보면 어느새 내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사랑의 그릇이 커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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