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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Sep 29. 2018

4-1. 아버지의 딸들에게.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독립하기 위하여.

애니메이션 뮬란, 아버지의 딸 : 영화 속 아버지는 딸의 여성성을 환영한다.


  고등학교 학교 야자시간이었어요.

한 친구가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던 소설 ‘아버지’를 읽다 눈물을 쏟고 말았어요. 친구가 자기는 울었다며 너는 어떨 것 같냐고 하기에 자신만만하게 “난 안 울어.” 했거든요? 그런데 웬걸. 당황스럽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화장실로 갔죠. 내가 왜 그렇게 당당히 얘기했는지 민망하더군요.  



  그 소설을 읽고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아버지’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고 보게 되었습니다. 나와 연결된 관계와 역할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걸 뺀 나머지 사람이라고 하니 이상했습니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버지 딸이었어요.  

이우경 교수님이 쓰신 ‘아버지의 딸’이란 책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어요.  

<'아버지의 딸'이란  분석심리학자들의 용어를 말한다.

아버지에게 각별한 영향을 받은 딸을 특별히 아버지의 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딸들은 형제자매 중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딸이기도 했고,

아버지와 닮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닮아가는 딸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제가 아들이 아닌 것을 아쉬워하셨지만 만혼에 늦게 태어난 첫 아이를 애지중지하셨죠. 자라면서 점점 제가 부족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셨어요. 아버지의 인정이 세상의 인정보다 더 중요했고요. 아버지 칭찬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숙제로 느껴졌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최근에 읽은 이경미 감독의 책 ‘잘 돼가, 무엇이든’에서 ‘아빠와 싸우는 일이 힘들어서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 늘 편한 길로만 도망 다닌 일이 후회된다. 그렇게 만날 도망 다니면서 나를 몰라준다고 화만 냈다. 아빠한테 나를 증명하는 일은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일보다 늘 어려웠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아니, 나 같은 사람이 여기 있었다니!!



  또 옛 기억 하나 떠오릅니다.   

  제가 대학원생 때 집에 내려가는 기차를 탔는데 아버지께서 우연히 같은 칸에 타신 거예요. 아버지는 거나하게 취하신 상태로 친구와 함께 서울 어느 장례식장에 올라오셨다가 집에 가시는 길이었고요. 나는 놀라서 “아빠!” 하고 아는 체하고 친구분께 인사드린 다음 각자 예매한 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낌새는 바로 내 옆자리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제 옆의 40대 여자가 갑자기 우는 거예요! ‘이 상황은 뭐지?’ 싶었어요. 그녀는 한참 울다가 어디론가 전화했어요.  

친정어머니였어요. 아버지는 잘 계시나, 약주는 요즘 덜하신가 하며 아버지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보고 전화를 끊었어요.


  ‘이 분은 아버지 딸인가? 아버지와 얽히고 맺힌 게 많으신가?’ 궁금했어요.


그때 우리 아버지 보고 나도 안 우는데 우리 아버지를 보고 당신의 아버지가 떠올라 울던 그녀, 아버지 사랑이 고프면서, 밀어내고 싶고, 닮고 싶으면서도, 도망치던 제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애증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딸 -물론 그 여자분이 실제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Mulan’의 주인공을 떠올리면 쉬워요.  

아버지 몸이 약하고 불편해 전장에 나갈 수 없자 하나밖에 없는 딸이 남장을 하고 전쟁터로 향하지요. 주인공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위해 남성성을 키우고 여성성은 잠시 거세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 딸들도 아버지를 모델 삼아 열심히 따라 했는데 어라, 우리에겐 그것이 없네? 싶습니다. 


다음 글은 4-2. '아버지의 딸들에게' -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독립하기 위하여 입니다.

이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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