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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가계도와 집안 평면도 - 자기이해의 첫 단추

대물림의 신비함 속으로.

by 투명서재

중학교 과학 시간이던가요?

가계도와 유전에 대해 공부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가족 각각 혈액형이 한 눈에 들어와 자녀들이 어떤 혈액형을 가질지 물어보는 시험 문제가 기억납니다.


기본적으로 가계도를 활용하는 분야는 건강, 의학이죠.

한 가정에 하나의 질환이 있을 경우 흔히 가족력이 있다고 하는데요. 질병뿐만 아니라 색맹, 머리숱(?) 같은 신체적인 부분이 유전되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질환까지 유전됩니다. 가장 핵심적인 증상이 대물림되거든요. 대표적인 것이 ‘중독’입니다. 도박, 술, 일로 주제는 다르지만 어느 하나의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 대를 이어 되풀이됩니다. 물론 대물림을 끊기 위해 선친이 도박중독이라 자신은 무진장 애를 써서 감정을 억압하며 조절하려는 분도 있고요. 아버지가 술 중독이라 자신은 술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으려 하는 분도 있습니다. 공허감이 있어 어느 대상이든 채우려고 하는 특성이 보이는 거고요.

대를 이어 어떤 패턴이 두드러집니다. 감정에 대한 대처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감, 불안, 상실감은 전염되기 쉬우며 자녀 세대로 이어져 내려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가계도는 집안의 혈연이나 혼인 관계 따위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가계도는 가족치료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으로 3세대 이상의 확대가족 관계를 도표화한 것입니다. 가족면담에서 수집된 복잡한 정보를 하나의 도표로 집약하여 가시화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자가 치료전략이나 가설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가계도는 가족 구성원이 자신들을 새로운 시점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치료에서 가족과 합류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공간과 시간을 통해 가족문제를 추적하도록 돕는 체계적 관점을 만들어내어 가족의 정서적 문제를 재해석하기도 하고 정상화할 수 있습니다(가족치료 p.317, 김유숙 저).


자, 이제 가계도를 그려볼까요?

가계도를 그리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3세대를 그린다는 건 시간이 좀 걸립니다.

내가 특히 보고 싶은 두 세대만 정해서 그려도 좋습니다.

남자는 네모, 여자는 동그라미 표시하고요.

관계에서 결혼은 가로 직선, 별거는 가로선에 빗금(슬래시) 하나, 이혼은 빗금 두 개를 작게 긋습니다.

사망은 X, 태아는 세모로 표시하고 입양이나 수양은 점선, 쌍둥이는 하나의 선에서 같이 가지처럼 퍼지게 그려넣어요. 보웬 가족치료에서는 갈등 관계일 때는 지그재그 선으로, 밀착일 때는 대각선 세 개로 표현합니다. 아래 보웬 가족치료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아래 그림(두산백과)은 간단히 나온 거고요.

가족 이름, 별명, 신체질병 및 정신장애, 사망원인, 출생지, 출생과 사망 연도, 결혼과 이혼 연도, 거주지, 학력, 직업 등을 적기도 합니다. 가계도는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되는데요. 진로 가계도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대를 이어 그 재능이 이어지는 경우나 그렇지 않더라도 비슷한 일을 하게 되거든요.


가계도(두산백과)

보웬 가계도 간략 설명(영문)

http://www.bowentheoryeducationcenter.org/the-bowen-theory/bowen-theory-concepts


제노프로 - 가계도 그려주는 프로그램 (영문, 한글 - 무료로 다운 받아서 쓸 수 있습니다. 학생용 버전이 따로 있습니다.)

https://www.genopro.com/download/

https://www.youtube.com/watch?v=FrczVapPdco

가계도 제작: 가계도 제작을 위한 단계별 안내(한글)



가계도의 장점은 전체적인 관계 맥락에서 개인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가족 구성원 각각의 성별, 부모와 자녀 세대의 구분, 성격, 어느 구성원과 분리되거나 친밀한지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가계도를 그리는 이유는 자기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치유로 가는 과정의 첫 단추가 자기이해입니다.

자신이 몇 번째 자녀인지, 가족 중 누구와 가장 친한지, 또 거리감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3세대 가계도를 그리면서 아버지 형제분들 중에 어느 분이 돌아가셨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어요. 부모님 세대에는 전쟁, 전염병, 등의 이유로 형제 자매를 많이 잃었고 분단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이산가족이 되어 ‘상실’의 아픔이 거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아버지께서 자라실 때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을지 짐작되어 이해가 되었습니다. 임신 중 유산이나 태어나서 사망한 경우도 중간에 기호로 넣습니다. 그렇게 해야 정확한 서열을 알 수 있으며 형제 자매의 죽음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알 수 있거든요.


6. 25 전쟁 통에 혈혈단신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가족 없이 외로워 자녀를 많이 낳았다고 하시는 할아버지, 자신은 딸만 셋이라 집안이 북적대며 사는 게 싫어 자녀를 일부러 낳지 않거나 한 명만 낳았다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남들은 다복한 가정이라 하지만, 그녀들은 말합니다. 여럿이 부대끼며 사는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가능한 출산을 조절했다고요. 내가 겪었던 힘듦을 굳이 아이에게 똑같이 주고 싶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렇게 한 세대가 겪은 경험으로 인해 다음 세대의 자녀의 명수, 성별이 많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전쟁이 한 번 훑고 지나면 희생자가 여럿 나오고요.

자신이 맺힌 한, 트라우마를 가능한 피하거나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세대간에 이어집니다. 이렇듯 가계도로 인해 한 번에 자녀 수, 서열, 형제 자매간 경쟁, 성별의 비율이 파악됩니다.


가계도만 봐도 아픔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요.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시절, 여성은 탄생 자체가 어려웠고 태어났더라도 성장하며 차별을 경험해왔습니다. 부모님 세대에서 딸만 셋, 넷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시어머니의 구박, 그 시어머니도 어린 시절 당했던 서러움이 줄줄이 딸려 나와요. 작가 심윤경의 아름다운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초반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동생이 계집아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조산소에서 장장 네 시간을 울고 악다구니를 한 할머니는 자기가 산모이기나 한 양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안방에 그대로 널려 있는 화투짝들을 보자 눈에 핏발을 세우고 끝까지 신중하게 떼어보았다. “사흑싸리 껍데기! 육시랄하게 복도 없는 지집년이 나왔구나!”’ 주인공 동구의 할머니도 육시랄하게 복도 없이 배우지 못한 한, 여성으로 존중 받지 못 한 삶을 절절히 살아봤기에 고통을 저리 신랄하게 표현합니다.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는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추 달고 나왔다며 아기 때부터 전라로 사진 찍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죠. 자라면서 고추 좀 보자며 성추행에 가까운 주위 어른들의 장난을 받아 내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이라는 성별이 주는 배역이 자신의 정체감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떤 배우가 자신의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 할 때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입고 있는 옷이 맞지 않을 때 진심으로 벗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피부처럼 붙어 잘 떼어 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두려울까요? 자신은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나에게 이름 붙여진 ‘3대 혹은 4대 독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가문의 영광과 무게를 함께 지게 됩니다. 자신이 바르게 자라야 동생들도 잘 자란다며 진정한 자기의 정체성보다는 집안의 독자 역할이 자기인 줄 알고 살아갈 수 있어요.


가계도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생존 기제, 가족역동이 드러납니다.

마치 장기판에서 장기가 움직이는 것처럼 나는 단지 기호가 아니라 생생한 상호작용을 하는 개체이자 매개체가 됩니다. ‘말’이라는 장기가 하는 기능처럼 나 또한 가계도 안에서 어떤 기능, 역할을 반드시 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 자주 싸우시면 자녀들 중 하나가 부부갈등에 삼각관계로 낍니다. 그 자녀는 장남, 장녀일 수도 있고 가장 어리거나 심리적으로 취약한 아이일 수 있어요. 어떻게든 부부갈등을 줄이고자 애쓰거나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소통, 화해의 메신저로 어떤 역할을 합니다. 부모 중에 한 분이 계시지 않거나 아프거나 우울할 땐 자녀 중 하나가 부모 자리에 대신 올라가 차지합니다. 딸이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 하면서 집안일을 하거나 아버지의 정서적인 결핍을 채워주기도 합니다.


가족 안에서 남성끼리, 여성끼리 편을 먹기도 하고 아버지는 딸 편을 어머니는 아들 편을 들기도 합니다. 가족역동이 그려지면서 누가 누구와 소통이 잘 되는지, 닮았다고 생각하는지, 부모-자녀 사이의 연결고리는 누구인지가 드러납니다. 흔히 장남 장녀로서 책임감을 맡고, 막내로 귀염둥이, 애교를 부립니다.


가계도 외에 또 하나 그려볼 것은 집안 평면도입니다.

(Willard B. Frick 저, '자기에로의 여행‘ 참고)

우리나라는 아파트의 나라라 아파트 평면도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죠.

옛날 가옥이라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집을 직접 묘사하는 데 의미가 있고요.

열 살 이전에 내게 중요했던, 내가 살았던 집 평면도를 그려보는 거예요. 다 그리고 난 다음에 조용히 앉아 각 방의 구조, 풍경, 소리, 냄새를 회상해 봐요. 그 방과 관계된 경험, 느낌을 되살려 보세요. 어린 시절 가족 분위기가 떠오르고 내가 공간마다 느꼈던 감정이 다릅니다.


집안의 관계가 드러나지요. 내가 가족 중 누군가와 편하고 친했다면 그 방에 자주 머물렀을 거고요. 누군가와 불편했다면 둘이서만 식사하는 시간조차 별로 없었을 거예요. 원한다면 평면도를 완성한 후 다음 질문에 답을 써보세요.





질문 1. 이 집에서 누구와 함께 살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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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였어요? 뭐 때문에 좋아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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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비밀스런 공간은 어디였나요? 당신에게 중요했던 그 공간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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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가장 불쾌하거나 불편한 것으로 기억되는 방이나 장소는 어디였나요? 뭐 때문에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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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당신의 집에서 주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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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 이 집에 살고 있었던 동안 가장 중요한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이 경험은 얼마나 뜻 깊은 것이었나요? 그것으로부터 뭘 배웠을까요? 그것이 당신의 발달,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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