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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May 13. 2019

여행의 이유 - 김영하, 문학동네(2019)

여행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을 줄이야, 여행에 대한 깊고 넓은 사색

완독
한줄평 : 여행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을 줄이야, 여행에 대한 깊고 넓은 사색, 삶이란 여행!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4월 17일에 초판 인쇄되었는데 30일에 6쇄를 찍었다니!
책이 출간된 후 이주만에 무려 5쇄를 더 찍는 책이 요즘에 있을까?

최근 여행 에세이는 어떤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트렌디한 여행책들이 약간 가벼운 봄바람처럼 느껴진다면 이 책은 책 속 허리케인처럼 기어이 독자의 머릿속을 휘젓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김영하라는 작가에 대해 잘 모른다.
알쓸신잡을 보며 박학다식하다, 경험이 깊고 넓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뿐..
궁금했던 게 있었다. 사생활에 대해.
부인은 어떤 분일까? 자녀를 갖지 않겠다는 신념은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책의 내용보다는 작가가, 영화보다는 감독이나 배우에게 더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소설을 읽을 땐 몰랐지만 에세이를 읽고 조금 짐작이 되었다.
유년 시절이 많이 힘드셨겠다. 그것을 힘들었다...라고 표현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홀로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았고 접해야 할 세계가 너무 크고 다양했으며
매년 낯선 환경에 던져지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속속들이 알기엔 어렸으며
그 경험이 부모나 선생님에게 알아지고 담아지고 표현되기보다 어른들은 아마 몰라서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며
그것을 아이가 몸으로 각인된 상처를 말하긴 힘겨웠을 것 같다.

한마디로 안정감
안정감이 없었을 것 같았다.
여행하듯 부유하며 지내는 것처럼
여행자처럼 관찰하다 참여했다를 반복하시지 않았을까.
나도 어렸을 때 안정감이 별로 없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어도 작가처럼 안정감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어디선가 본 구절인지는 몰라도
그저 무난한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편안한
안정적인 사람
누군가 자기에게 해를 가할 것이다, 상처를 줄 거라는 불신이 없이,
그냥 맑게 웃으며 낯선 사람을 대하며 쉽게 신뢰하며 받을 것을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표정조차 밝아서 사람을 끌어당기며 그 혹은 그녀의 인생에서 불운, 불행, 사건, 사고, 같은 단어는 아예 없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대학원 때 동기 언니가 그랬다.
집안은 언니의 탄생을 환영하고 기뻐했으며 어머니는 그 언니를 복덩어리라고 불렀다.
티 없이 자랐다. 물론 집안이 가난했는지 부유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부침 없이 보통 정도는 되었을 것 같다.
그 언니를 보고 있으면 참 부러웠다.
나도 저런 부모님을 가졌다면, 나도 저런 가정이었다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그런 생각을 가질 정도로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 부러웠다.

생은 늘 불안을 동반하므로,
그런 사람들이어도 실존적인 불안, 인생의 갑작스러운 굴곡은 있었을 것이다.

( 아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한바탕 놀다간 뒤 다시 글을 쓰려니 이건 뭐 ㅎㅎㅎ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결론은 김 작가와 나를 비슷하다고 엮고 싶은 건가. ㅋㅋㅋ
그건 아니고. 작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

두 번째로는 부인
알쓸신잡에서 김 작가의 부인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고 이유를 어렴풋이 알았다.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소설 홍보차 출판사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데 갑자기 허리케인이 불어서
당일 행사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행사를 다시 잡으려고 전화했는데 거절하셨단다.
에어비앤비로 묵었던 집에 게임기와 대형 스크린이 있었는데 게임에 몰두하느라....
한 달여..? 게임을 하고 있는데 부인이 아직도 재밌어? 물었다고 한다.
아니라고 하자 그러면 밖에 나갔다 오자고 해서 공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부인을 존경했고 작가가 뭐 때문에 부인을 아낄 수밖에 없는지 이해되었다.
배우자를 완벽히는 아니어도 충분히 알고 있으며 기다려주며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맞춰주듯 남편의 감정을 알고는 내면 아이를 성장시키는 부인 같았다.
내가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보였다.

목차
추방과 멀미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61p.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함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프로그램은 어서 이 편안한 집을 떠나 그 고생을 다시 겪으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디로든 떠나게 되고, 그 여정에서 내가 최초로 맛보게 되는 달콤한 순간은 바로 예약된 호텔의 문을 들어설 때이다. 벨맨이 가방을 받아주고 리셉션 직원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평생토록 나는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1) 낯선 곳에 도착한다. 두렵다. 2) 그런데 받아들여진다. 3) 다행이다. 크게 안도한다. 4) 그러나 곧 또 다른 어딘가로 떠난다.

-> 작가가 이런 이해를 스스로 하고 있다는 것이 글쓰기의 힘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반복한다고 이해되었다.

오직 현재 81~82p.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 몇 년간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연구한 아난다 언니가 모임에서 한 말, 많은 책을 읽었는데 책에서 말하는 공통점은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살아라.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 여행은 그렇게 만들어준다.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p.89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초기 인류가 어떤 존재였을지, 우리가 어떤 이들로부터 진화해왔을지를 알 수 있다. 인류는 걸었다. 끝도 없이 걷거나 뛰었고, 그게 다른 포유류와 다른 인류의 강점이었다. 어떤 인류는 아주 멀리까지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그린란드나 북극권까지 갔고, 몽골에서 출발한 어떤 그룹은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더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마야와 잉카, 아즈텍 문명을 일구었다.

-> 이 대목에서 충격이었다. 초기 인류의 사냥 방식이 사냥감의 냄새와 흔적을 따라 뛰고 또 뛴다. 목표를 무리에서 고립시키면서 추적을 계속한다. 땡볕 아래에서 그들은 무려 여덟 시간이나 영양을 쫓는다는 것이었다.(88p.)
뛰면서 먹잇감을 구하고 걸으면서 진화했다니! 그렇다면 초기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은 걷기와 뛰기였을 것이다. 그에 비해 현대인은 전혀 걷거나 뛰질 않으니 산책과 마라톤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겠다.
나도 걷고 뛰어야 할 텐데!!

p.92

그리고 끝없이 이동하는 인류의 운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도 모른다. 피곤하고 위험한 데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여전히 인간은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니, 인터넷 시대가 되면 수요가 줄어들 거라던 여행은 오히려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 티브이가 나왔을 때 라디오 없어진다고, 비디오 나왔을 때 영화관 없어진다고 했다. 그럴 리가!! 아무리 가상체험이 발전한다고 해도 직접 체험과 비교할 수 없다. 여행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며 '여행'이라는 개념보다는 세계에서 여러 나라에서 떠돌며 거주하는 것이 '일반화'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거라고 본다. 우리가 앞으로 직업을 여러 번 바꾸며 몇 개씩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사는 지역 또한 그리 될 거라고 예상된다.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세계는 계속 흐름, 순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돈, 자원, 물류, 사람, 심지어는 쓰레기까지도 이리저리 흘러 떠다닌다. 그러니 앞으로 인류는 변화와 이동을 당연시할 것이다. 정체된 것은 위험해질 소지가 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p.109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 학교 입학 시 자기소개서에 여행을 좋아한다고 썼다. 실제로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나를 객관화할 수 있어서라고 썼다. 일상생활할 때는 잘 모른다. 그런데 떠나 보면 내가 있던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고 지냈는지 문득문득 떠오른다. 아,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구나, 나는 이런 걸 원했구나. 오히려 타지에서 깨닫게 된다. 생존에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해결하다 보니 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겠다.
여행이 편치 않을수록 현재를 살 것, 나는 학생 시절 무전여행, 배낭여행을 해보지 못했다.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며 몽골 여행이 생각났다. 덜덜 떨며 자던 게르의 밤과 우리가 납치되는 줄 알았던 공포의 밤 ㅎㅎㅎ
지금은 추억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땐 심각했다. 나는 그 순간에만 현존했다.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p.148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여행 다니며 받았던 도움과 배려는 다른 여행자에게 베풀면 된다는 것, 여행자들에 대한 선의와 베풂이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향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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