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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Oct 01. 2018

아이들에게 더 많은 여성 서사를,

페미니스트 엄마의 동화책 고르는 법

 “동화책 읽어주기”는 양육자들에게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랜 기간동안 권장되는 양육법 중 하나다. 책만 있다면 시도해볼 수 있어 상대적으로 품이 덜 들면서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효과도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책 육아’는 아이에게 말과 글자를 익히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양육자와의 정서적 교감, 창의력 개발 등을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나 역시 우연한 기회로 임신 중에 동화 읽기를 시작했던만큼 동화책 읽기가 아이와 나에게 각별한 기억이 되었으면 했고 아이가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동화책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참 좋은 책인데, 아이에게 그냥 보여주기에는 찝찝한 부분들이 꼭 하나씩 있었다. 주인공의 대부분이 남자아이인 설정, 여자아이는 소꿉놀이를 하고 남자아이는 공놀이를 하는 장면, 여자아이는 분홍색 치마를, 남자아이는 파란색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며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 이 모든 이야기들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도 당연하지도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동화책 역시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성혐오'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아니, 제 1 독자들인 어린이들의 피드백이 여의치 않은 상황, '지나가는 시기'의 콘텐츠라는 특성 때문인지 오히려 어떤 장르보다도 업데이트가 느렸다. 그리고 혼란이 시작됐다. '내 아이에게 대체 어떤 책을 보여줄 것인가?'  




 올해 초에 트위터에서 ‘2018_여성작가’라는 해쉬태그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여성 작가의 책을 읽는 캠페인이었고 나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아주 새로운 독서를 시작하게 됐다. 올해 9월까지 읽은 책이 60권 정도 되는데 그 중 다섯권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 작가의 책으로 채운 것이다. 굉장한 ‘편독’이지만 분명 의미있는 시도였다. 이전까지 내가 매해 평균적으로 남성작가의 책을 여성작가의 책보다 2.5배 가량 많이 읽어왔다는 것을 알게됐다.

 사실 나는 '위대한 고전'이라 일컬어진 책들을 읽으며 '글쎄?' '어째서...?'라는 생각을 꽤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대학 때 고전들을 다시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카잔 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등등. 나는 그 책들을 읽으며 자주 헤맸다. 도대체 저 주인공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다. 개츠비는 대체 데이지한테 왜 저러는걸까? 아니 그것보다 닉이 더 이상하다 이상해 디나이얼 게인가?? 개츠비를 좋아하니?? 개츠비가 어디가 위대하다는거야??? 대충 그런 식이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었다. 읽던 책을 도중에 그만두는 건 아무래도 찝찝하고 여튼 좋은 책들이라니까. 뭔가가 있겠지. 그래 뭔가가 있을 거야. 저 사람들이 그러는 이유가 있겠지. (열심히 읽음) 아니 근데 아무래도 이상한데?? 왜 그러지. 내가 이상한가?? 내가 동양인이라서 이해를 잘 못하나?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가? 내가 21세기 사람이라 그런가? 아!!! 번역이 이상한가???(그리고 나는 <위대한 개츠비> 원전을 읽겠다며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날린다...)

 이제는 안다. 그 추리가 엉망이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고는 어쩌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올해 여성작가의 글들을 읽으면서 절감한 건 내가 여성이면서도 ‘여성 서사’에 익숙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나는 당분간은 이렇게 읽기로 했다.



 아이들에게도,
아니 아직 어떤 편견도 없는 아이들이야말로
더 많은 여성서사와 더 다양한 여성캐릭터가 필요하다.

 이 연장선상에서 아이의 책을 골라보기로 했다. 동화는 비교적 여성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장르라 '여성 서사'의 기준을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작가의 성별을 따지기보다는 동화 속 주인공의 성별이 무엇인지, 등장인물들의 성비는 어떤지, 여성 캐릭터들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는지,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가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는지 등을 기준으로 아이의 책을 고르고 있다. 양육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아이가 접하는 모든 이야기를 내가 컨트롤하거나 고를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완벽한 동화책을 찾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세대의 여성 양육자들이 그 어떤 세대보다도 아이들에게 사회가 강요하고 답습해온 성역할을 대물림하지 않길 원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성별 따위를 이유로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에 제약을 두지 않고 자신이 지닌 가능성 하나하나를 펼쳐나가며 성장하기를 바라는 이들이라고. 무엇보다 여자아이들이 더 많은 롤모델을, 더 많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기를. 남자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경청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고 믿는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더 많은 여성 서사를!"

이 모토로 동화책을 고르고 읽는 일상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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