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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Oct 11. 2018

동화책 버전의 백델테스트

일단 집에 있는 동화책들을 한 번 펼쳐보세요.

그래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동화책을 고를 것인가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백델 테스트였다. (역시 전직 씨네필다운 발상임미다.)



백델 테스트 Bechdel Test (http://bechdeltest.com)

1985년 미국 여성 만화가 '엘리슨 백델'이 할리우드의 영화들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구성한 테스트로 다음과 같다.  

 1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2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3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아주 투박하고 낡은 계산법처럼 보이지만 당장 최근에 본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여전히 이 테스트가 유효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의외로 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영화가 별로 없다는 것을, 그만큼 우리가 접하는 서사들에 여성이 제대로 된 모습으로, 제대로 된 비중을 할당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영화사에서 이 테스트를 두고 말이 많았는데 가장 대표적이었던 것이 "그럼 이 테스트를 통과하면 페미니즘 영화냐"라는 종류였다. 물론 그렇지 않다. 이것이 어떤 영화가 충분히 여성주의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앨리슨 백델이 이 질문을 마련한 이유도 그게 아니다. 그녀는 당시 헐리웃 영화들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여성의 모습ㅡ그러니까, 이름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여자가 남자 아닌 다른 얘기를 하는ㅡ을 다루는 데 관심이 없는지 폭로하고자 했다.

 내가 동화책 버전의 백델 테스트를 생각해낸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나는 동화책이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냥 현실을 반영하란 말이다. 현실을! 왜 여전히 운전은 남자만 하고 엄마는 자꾸 요리하고 아빠는 출근하는가! 왜 남자아이들은 펭귄(뽀로로)으로도 버스(타요)로도 주인공을 하는데 여자아이들이 주인공이기만 했다하면 공주야!!! 지금 전세계에 현존하는 공주가 몇 명인줄은 알고들 하는 얘기에요???

 



 우선 '여성서사'라고 칭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의 기준을 정해야 했다. 나는 최소한 '자연스러운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화책들을 원했다. 그런 책들을 필터링 할 수 있도록 아래의 몇 가지 질문을 설계해 일종의 화이트리스팅을 한 다음 그 목록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는지를 더블체크하는 식으로 책들을 추렸다. 완전무결한 리스트는 없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여성서사'라고 부를 수 있음에도 어떤 기준들에서는 자격 미달인 책들도 있었다. 최대한 많은 기준들에 부합하는 책들만을 골랐지만 몇 가지 미진한 구석들이 있더라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성 평등이라는 목표에 크리티컬한 이슈를 제기하지 않는 한 제외시키지 않았다.

 이런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여름께부터 업데이트하고 있는 나의 '동화책 고르는 기준'은 우선 아래와 같다. 다음 회차부터 각각의 기준을 만들게 된 이야기와 이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나와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등장인물들의 성비는 어떤가요? :
2 주인공의 성별은 무엇인가요?

3 클래식은 영원한 것   
4 믿고 보는 작가
5 우리 곁의 더 많은, 더 다양한 여성들
6 성 역할은 가짜라는 걸 알려주세요  
7 남자도 여자도 아닌  
8 미러링, 그 위대한 전략
9 어린이를 위한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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